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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는 왕과 마시지 않는 독재자들

  • 입력 2017.11.15 10:20
  • 기자명 문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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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요르단스 작 :  ‘술 마시는 왕’ 1640, 브뤼셀, 벨기에 왕립미술관
▲ 그림 1. 요르단스 작 :  ‘술 마시는 왕’ 1640, 브뤼셀, 벨기에 왕립미술관

플랑드르(벨기에)의 화가 야코프 요르단스(Jacob Jordaens, 1593-1678)는 17세기 플랑드르 바로크 시대의 중심 화가의 한 사람으로 1620년경부터는 예술가로서 완숙의 경지에 올라 다양한 그림을 그려 미술사에 남는 걸작들을 창작하였는데 그중에서 공현축일(公現祝日)과 관계되는 흥미 있는 종교화를 여러 장 그렸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현축일이란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온 세상 사람들 앞에 ‘공식적으로 나타난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가 제30회 탄생일에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공증(公證)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나 영국 등 서방교회에서는 이 축제일을 3인의 동방박사가 아기예수를 탐방하여 그들에게 아기예수를 소개한 날을 ‘주님이 나타난 날’이라는 의미에서 주현절(主顯節, epiphany)이라고 하며, 이 날이 탄생 후 12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12일제(祭)라고도 한다.

주현절도 다른 기독교 축일들이 그러하듯 이교도들의 문명의 축일로 되었다. 옛날 로마인들은 동짓날 축제로 사투르누스(농경의 신)제라는 것을 올렸으며, 이 날 행사의 특색은 갈레뜨(Gallet)라는 빵을 먹는 것으로 그 속에 하얀 색 또는 검은 색의 잠두콩(fe`ve)을 넣어 구운 다음 빵을 잘라서 나누어 먹는데 잠두콩이 든 부분을 차지한 사람이 그 날의 왕이나 여왕으로 뽑혀 축제를 주재하였다는 것이다. 플랑드르에서는 이 축제방식을 주현절에 적용하여 축연을 왕이 주재하는 형식을 취하였다고 한다.

▲ 그림 2. 요르단스 작 : 그림 1의 부분 확대 :  왕은 장인, 여인은 부인, 화가는 연주
▲ 그림 2. 요르단스 작 : 그림 1의 부분 확대 :  왕은 장인, 여인은 부인, 화가는 연주

화가 요르단스의 ‘술 마시는 왕’ (1640)이라는 그림은 진짜 왕이 술을 마시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전술한바와 같이 세 사람의 동방박사가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러 온 것을 기념하는 주현절의 축제를 묘사한 것인데, 즉 큰 케이크 속에 숨겨 만든 콩 한 알을 차지한 사람이 ‘주현절 축제의 왕’이 되어 축연을 주재하게 된다. 그래서 ‘콩의 왕’이 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르단스가 살았던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요란스런 잔치를 치렀던 것으로 보인다. 백파이프로 음악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먹고 마시며 흥겨워하고 있다. 사람들은 가운데 왕으로 분장한 사람을 중심으로 양쪽에 동일하게 배분되었지만 그들은 한 가족이거나 가까운 친구들이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왁자지껄 흥겹게 노는 것이 플랑드르 전통이다.

작품은 화가의 익살스러운 필치로 생기 넘치는 장면을 보여주는 유쾌하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표현한 그림으로 왕이 술잔을 들어 축연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왕이 마신다.”라고 외치면 모두가 “왕이 마신다.”를 복창하며 소리 지르고는 술 마셨다는 것으로 마치 우리네 건배하는 식으로 술 마시는 순간을 묘사하였는데 이런 식으로의 건배가 여러 번 있어 더러는 취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왕의 좌측에서 술잔을 높이 들어 무언가를 소리쳐 마치 심장이라도 튀어나올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좌측 아래에는 소리 지르는 사람보다 더 취한 사람이 있다. 자기 앞에 있던 술은 모두 다 마셔 빈병이 되었으며 몸을 거느리질 못해 의자의 손잡이를 잡고 소리 지르다가 술병을 올려놓았던 쟁반을 쓰러트리며 마치 폭포수가 떨어지듯이 마신 술을 토해내는 사람도 있다.

화가의 더욱 익살맞고 재미있는 표현은 그림 좌측위의 담뱃대를 들고 소리 지르고 있는 사람의 입술표현이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은 마치 바닷물이 파도치는 것 같은 파도가 일고 있는데 윗입술의 파도는 오른쪽으로 아랫입술의 파도는 왼쪽으로 파도쳐 위아래 입술의 신경이 완전히 마비되어 그야말로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입술표정을 연출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있다.

▲ 그림 3.  요르단스 작 : 그림 1의 부분 확대 : 아기 기저귀를 가는 화가의 부인
▲ 그림 3.  요르단스 작 : 그림 1의 부분 확대 : 아기 기저귀를 가는 화가의 부인

또 납득이 잘 가질 않는 장면은 그림의 오른쪽에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는 여인이 있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축연을 벌리고 있으며 특히 명색이 왕이 술 마시는 앞에서 아기의 기저귀를 간다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으로서는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런데 그 여인의 표정과 몸짓을 보면 아기의 기저귀 가는 것보다 왕을 향하여 소리치는 것이 더 기분 좋을 정도로 술에 취해서 아기가 울어대니 하는 수 없이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표정들로 보아 플랑드르의 주현절 축제는 밤늦게까지 진행되여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하고, 자기 앞에 놓인 술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마시는 그야말로 인심 좋은 흥청망청 마시고 노는 축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화가가 이러한 과음장면을 축제그림에 넣은 것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즉 과음은 인간의 격을 떨어뜨리고 적어도 잠시 동안은 이성을 상실하게 하고 길게는 그를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것이 범죄는 아니며 그로 인해 범죄가 생기는 것은 드문 일이다. 술은 인간을 바보로 만들기는 해도 악한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진심과 솔직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일반에게 알리고 싶었던 심정에서 과감하게 표현한 것 같이 생각된다.

실은 그림의 주인공인 왕은 아담 반 노르트(Adam van Noort)라는 화가로서 요르단스의 스승이자 장인으로 장인은 요르단스의 장래를 보고 딸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기 기저귀를 갈고 있는 여인은 그의 딸 카타리나로서 술이 어느 정도 취하기는 하였지만 그 아기는 할아버지가 항상 귀여워하는 손자이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비록 왕관을 썼다 해도 그 앞에서 일상과 같이 기저귀를 갈고 있다는 것으로, 또 왕의 뒤에서 백파이프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린 화가 자신인 것이다. 이러한 그림의 표현으로 보아 이 주현절 축하연은 화가 자신의 집에서 가족일동이 친구 또는 주변의 사람들을 초청한 모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왕의 머리위쪽에 붙은 현판에 “공짜 밥 주는 데서 손님 노릇하는 것처럼 좋은 게 어디 있겠소?”라고 쓰여 있는 것을 그림에 나타낸 것을 보면 이 장소는 분명 화가의 집 이거나 아니면 장인의 집인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집은 인심 좋은 너그러움이 넘치는 집임을 표현하고 있다.

17세기 본건시대의 사회도덕관에 사로잡혀 내일의 고뇌를 앞당겨하고 오늘의 만족을 내일로 미루는 것에 익숙해 있던 플랑드르인들이 주현절이라는 명분으로 모여 정감이 오고가는 한 때를 즐기는 장면을 화가는 재치 있는 필지로 익살스럽게 표현한 그림이다. 특히 술 마시는 왕의 너그러운 정감이 넘치는 표정은 극적인 어울림의 모임의 분위기를 완전히 살리고 있다. 

▲ 그림 4.  요르단스 작 : 그림 1의 부분 확대 : 현판에 쓰인 글씨
▲ 그림 4.  요르단스 작 : 그림 1의 부분 확대 : 현판에 쓰인 글씨

이렇게 너그러운 ‘술 마시는 왕’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저자의 머리에 떠올리는 것은 지난 날 동료교수가 자기 제자들과 술 마실 때마다 술 마시면 사람이 너그러워져야 하며, 그것이 몸에 배야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술 마시는 모임을 <너그 모임>이라 한 것이 생각난다. 사실 술 마시고 너그러워진다는 것은 술 마시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강조 되여야 할 과제이다. 술은 잘 조절해 마시면 더할 나위 없이 몸에 좋지만 지나치게 잘못 마시면 몸만 해치는 것이 아니라 신세마저 망치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주도라는 것이 있어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웃어른들이 함께 술을 마시며 주법(酒法)을 가리켰던 그 표본이 <너그 모임>인 것 같다.

동시에 독재자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표한 찰스 퍼거슨(Charles W. Ferguson)의 <독재자는 모두 금주가다, Dictators Don’t Drink>(Harpers Magazine, June, 1937)라는 논설이 떠오른다.

즉, 스탈린·히틀러·무솔리니와 같은 독재자들은 마치 전도사처럼 행실이 바른 이상적인 덕행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 이들이 술을 마시지 않고 독재 할 것에만 전념하였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긴 논설을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