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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 노래한 대중가요 ‘홍시’

나훈아 작사·작곡, 취입한 사모곡(思母曲)…2005년 발표 이후 인기, 가사가 길지만 부르기 쉽게 반복적 내용, 멜로디 단순하게 이어져

  • 입력 2017.11.15 10:20
  • 기자명 왕성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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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땜에 울먹일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회초리 치고 돌아앉아 우시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바람 불면 감기들세라
안 먹어서 약해질세라
힘든 세상 뒤쳐질세라
사랑땜에 아파할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울 엄마가 보고파진다 

나훈아 작사·작곡, 나훈아 노래인 ‘홍시(紅枾)’는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곡이다. 홍시를 보자 저 세상으로 떠난 어머니가 생각난다는 사모곡(思母曲)이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엄마와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며 눈시울이 뜨끈해지는 사람들이 적잖을 것이다.

감이 제사상에 오르는 설, 추석 등 명절이나 기제사날, 어버이날에 들으면 가슴에 와 닿는 대중가요로 평소 잊고 있었던 ‘효(孝)’를 생각하게 만든다. 더욱이 노래소재가 된 홍시는 가을이면 집이나 밭 주변의 감나무에 빨갛게 익어 매달려 있는 계절과일이어서 노래를 듣다보면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주렁주렁 매달린 홍시는 계절의 정취와 풍성함을 느끼게 해준다. 홍시는 글자그대로 붉은 홍(紅), 감 시(枾)자로 생감의 떫은맛이 없어져 단맛이 강해지고 말랑말랑해진 것을 말한다. 물렁물렁하다고 해서 연시(軟枾), 연감이라고도 부른다. 우리 조상들은 늦가을에 감나무에서 감을 따고 ‘까치밥’이라며 몇 개의 감을 남겨뒀다. 홍시가 되면 까치가 먹으라는 따듯한 배려이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길조(吉鳥)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나훈아 New Free Style’ 음반에 실려
‘홍시’는 나훈아가 가요계 데뷔 40주년을 앞둔 2005년 ‘나훈아 New Free Style’ 음반에 ‘사내’, ‘또래야’, ‘아리수’ 등과 함께 실린 그의 자작품 중 하나다. 1989년 ‘갈무리’, 1993년 ‘어매’, 1999년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등에 이어 수년간의 공백을 깨고 꾸준히 음악작업을 해 히트곡을 낸 2000년대 그의 첫 발표작으로 볼 수 있다.

어머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홍시’는 전형적인 트로트 곡이다. 노랫말이 좀 긴 편이지만 부르기 쉽게 반복적인 내용으로 멜로디가 단순하게 이어진다. 몇 번 듣고 따라 부르다 보면 금방 익힐 수 있는 가요다.  

나훈아 노래를 살펴보면 ‘고향’, ‘어머니’에 대한 곡들이 많다. 지방출신이라 그런지 자작곡을 만들면서 태어나고 자란 고향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자주 담아낸 것이다. 1971년 그가 부른 ‘감나무 골’(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도 감(홍시)과 고향, 연인과 연관 있는 노래다. ‘산 제비 넘는 고갯길 산딸기 피는 고갯길~’로 나가는 가사가 푸근하면서도 정겨운 맛이 물씬 난다.

홍시에 얽힌 효도 얘기도 꽤 많다. 효성이 지극한 자녀가 부모를 위해 구해 드시도록 한 먹을거리에서 빠지지 않는 게 홍시다. 관련전설, 민담, 설화, 고담, 야화 등이 많다. 경북 김천 봉산면 곤천리에 전해져오는 ‘홍시 전설’을 들으면 가슴이 찡해온다. 그곳엔 집성촌을 이루며 살던 밀양 손 씨 집안의 이름난 선비효자가 있었다. 중병에 걸린 늙은 어머니가 엄동설한에 홍시를 먹고 싶어 했다. 끼니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아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눈 덮인 선계산에서 홍시를 구하려고 사흘간 헤맸지만 헛걸음을 쳤다. 낭패스러워 울고 있자 갑자기 토끼가 나타났다. 그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토끼발자국을 따라가자 양지 바른 곳에 홍시가 달린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곳에서 딴 홍시를 드신 어머니는 병석을 털고 일어났다. 그 후부터 마을사람들은 감나무가 있던 골짜기를 신령스럽게 여겨 ‘신령골(神靈谷)’이라 부르고 있다. 부산에도 ‘동지섣달에 호랑이 도움으로 홍시를 구한 효자’ 얘기가 전해져오는 등 전국 여러 곳에 비슷한 전설들이 많다.

감나무는 장수식물이다. 수명이 200~250년쯤 된다.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경남 의령에 가면 국내 최장수 감나무가 있다. 정곡면 백곡리에 있는 것으로 450년이 넘었다. 토질, 공기, 물 등 환경이 좋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지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나훈아, 무대카리스마 보통 아닌 만능음악인
‘홍시’ 노래를 만들어 부른 나훈아(본명 최홍기)는 트로트, 팝송, 록, 힙합 등 어떤 장르의 곡도 잘 소화해내는 대형가수다. 대중을 사로잡는 무대카리스마가 보통이 아닌 만능음악인이다. ‘하늘이 준 음색’이라할 만큼 간드러지게 꺾이는 목소리가 팬들을 사로잡는다. 우리 나이로 70살이 넘었음에도 자기만의 색깔로 노래를 잘 녹여내 인기가 많다. ‘가수의 왕(歌王)’, ‘트로트 제왕’으로 불리며 ‘고향역’, ‘영영’, ‘무시로’, ‘갈무리’, ‘잡초’ 등 수 많은 히트곡들을 쏟아냈다. 

1947년 2월 11일 부산시 동구 초량동에서 선원이자 무역상이었던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나훈아는 부산 초량초등학교, 대동중학교, 서울 서라벌예술고를 나왔다. 그는 1965년 서울로 와 ‘약속했던 길’로 취입했으나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공식데뷔는 19살 때인 1966년으로 대중가요 ‘천리 길’을 불러 이름을 알렸다. 이어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음악기초를 다져 1971년 취입한 ‘가지마오’가 크게 히트했다. KBS음악대상(1972년), MBC 10대 가수 특별가수상(1981년), 제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특별상(1996년) 등 각종 상을 휩쓸며 탄탄대로를 걷게 돼 오늘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개인사는 그리 평탄치 않다. 결혼과 이별, 헛소문까지 숱한 화제의 인물이 됐다. 공연 중 피습, 3번의 이혼, 10여 년간의 칩거는 대중들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3번 이혼 등 우여곡절 많은 삶, 올해 신곡 발표
지난 7월 KBS-2TV ‘연예가 중계’에서 11년 만에 가요계로 돌아온 나훈아의 우여곡절  삶이 소개됐다. 인기가수로 잘 나갔던 그는 1972년 공연 중 괴한으로부터 얼굴에 78바늘을 꿰맬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다. 팬이 악수하러 올라오는 줄 알고 손을 내미는 순간 갑자기 흉기로 공격당한 것이다. 이후 연예계활동을 잠시 멈추고 1973년 일반여성과 결혼했으나 3년 만에 갈라섰다. 그러나 그에게 새 사랑이 찾아왔다. 7살 위인 영화배우 김지미 씨와 1976년 결혼식을 올렸다. 많은 화제를 뿌렸지만 둘은 6년 만에 헤어졌다. 그는 이듬해인 1983년 14살 아래 여성과 세 번째로 결혼, 또 한 번 눈길을 모았다.

그 후 그는 방송출연을 자제, 2006년 ‘가수데뷔 40주년 공연’을 끝으로 칩거에 들어갔다. 2007년 3월 특별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취소하고 자신의 기획사(아라기획)까지 문을 닫은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폭력조직 관련설’, ‘투병설’, ‘신체훼손설’ 등에 휘말렸다. 이에 그는 2008년 1월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루머에 대해 해명한 뒤 다시 칩거생활을 이어갔다. 2011년엔 아내(정수경)가 이혼소송을 내 법원이 지난해 10월 청구를 받아들이자 부부생활을 정리했다.

이처럼 많은 얘깃거리를 가진 나훈아는 올 들어 음악 삶을 다시 시작했다. 지난 7월 신곡을 내놓는 등 옛 인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11월 3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사흘간 콘서트를 여는 그의 행보에 기대가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