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전이(轉移)

  • 입력 2017.12.14 15:46
  • 수정 2017.12.14 15:54
  • 기자명 전현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치료 시간에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는 일상적인 만남에서 일어나는 인간관계와는 다른 특수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환자에게 치료자에 대해서 전이 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이는 정신분석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전이는 환자가 어렸을 때 부모나 주위 중요한 사람에게 가졌던 감정, 태도 등을 치료자에게 가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환자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전이가 일어났을 때 환자는 치료자가 자신으로 하여금 그런 감정을 실제로 유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치료자는 환자를 치료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환자는 치료자가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 전이와 부정적 전이
전이는 긍정적 전이와 부정적 전이가 있습니다. 긍정적 전이는 치료자에 대해서 가지는 우호적인 감정입니다. 치료자를 믿고 치료자를 이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전이는 치료자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게 합니다. 치료자가 자신을 무시한다든지 돈만 벌려고 한다든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긍정적인 전이든 부정적인 전이든 전이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는 알고 그것을 치료에 이용해야 합니다.

치료자-환자 관계는 무의식을 건드리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치료자가 하는 말이 환자의 무의식에 바로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어떤 환자는 치료 시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이상해요. 여기서 선생님이 제게 하는 말은 그래도 실천하게 돼요. 밖에서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라 하면 하지 않는데, 선생님이 말하면 그대로 하게 돼요. 참 이상해요.”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정신치료에서는 치료자와 환자 사이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의 입장과 시각에서 상황을 검토합니다. 물론 현실을 무시하거나 왜곡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느낄 때 ‘아, 이렇게 하는 것이 나에게 진정으로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들이 치료자가 하는 말을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이 되지만 앞서 말한 전이도 작용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유로 치료 시간에 주요한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를 환자에게 하면 환자의 마음속에 그 이야기가 새겨져 살아가면서 환자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환자에게 내가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이나 들었던 것 중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이 이야기는 동료 정신과 의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한국 근대의 대표적인 선승인 경봉 스님이 참선을 하는 스님에게 자주 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 돌부처 이야기
이야기의 시대 배경은 아마도 조선시대인 것 같습니다. 한 비단 장수가 비단을 짊어지고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비단을 팔았습니다. 비단 장수에게는 짊어지고 다니는 비단이 전 재산입니다. 그래서 비단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하고 철저히 챙겼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비단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을 넘게 되었습니다. 언덕을 넘다가 용변이 마려웠습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 멀리까지 봤지만 사람의 인기척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단을 풀숲에 풀어놓고 조그만 인기척이라도 바로 알 수 있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들어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용변을 보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비단이 없어진 것입니다. 바로 사방을 둘러보고 이쪽저쪽으로 뛰어가 봤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단이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전 재산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관가를 찾아갔습니다.
관가를 찾아가 원님에게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듣던 원님이, 사람이 아니라도 그 광경을 본 것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비단 장수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그 자리에 뭐가 있었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잘 모르겠다”고 하니 원님이 “그래도 뭔가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 있을 테니 잘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때 비단 장수의 머리에 돌부처가 떠올랐습니다. “원님, 그 자리에 돌부처가 서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원님이 관아 관졸들에게 돌부처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돌부처가 수레에 실려 관가 마당에 끌려 왔습니다. 원님은 돌부처에게 “네 눈앞에서 이 사람의 비단이 모두 없어졌다. 이 사람에게 비단은 전 재산이다. 네가 말하면 이 불쌍한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 보아라. 네가 본 일을 그대로 말만 하면 된다. 말해라”라고 엄숙하고 진지하게 말했지만 돌부처는 묵묵부답으로 서 있기만 했습니다. 원님은 한참을 기다린 후에 언성을 높여서 말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를 증인 신분으로 대우해 줬는데 계속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이제부터는 너의 사실을 은폐하는 죄인으로 다루겠다.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형틀에 묶고 말할 때까지 곤장을 치겠다.”
그래도 돌부처가 묵묵부답이자 원님은 관졸들에게 돌부처를 형틀에 묶고 이실직고할 때까지 곤장을 치라고 말했습니다. 돌부처는 형틀에 묶인 채 곤장을 맞고 원님은 큰소리로 마치 사람에게 말하듯이 돌부처에게 계속 말하라고 하는 일이 관가 마당에서 벌어졌습니다. 비단 장수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렇게 해서 일이 해결되겠나 싶었지만 다른 수도 없고 원님이 워낙 진지하게 일에 임하니 혹시 무슨 깊은 뜻이 있나 해서 그냥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마을에 알려졌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 관가 담에 붙어 이 광경을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에 퍼져 온 마을 사람이 관가로 몰려와 담에 올라가 관가 마당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지켜보고는 웃기 시작했습니다.
“원님이 이상해졌어. 실성한 모양이야.”
관가는 이내 웃음판이 되어 시끌시끌해졌습니다. 그러자 원님이 엄숙한 얼굴과 목소리로 “나는 이 억울한 비단 장수의 잃어버린 비단을 찾아주기 위해 죄인인 돌부처를 심문하는 중이다. 이제부터 웃어서 신성한 공무를 방해하는 사람은 잡아서 옥에 가둘 것이니 웃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원님의 말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계속 웃었습니다. 그러자 원님은 관졸들에게 명령해 웃는 사람들을 모두 옥에 가두었습니다. 옥에 갇혀서도 사람들은 원님이 이상하다는 말만 하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자 사람들은 심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마을 분위기도 심각해졌습니다.
이런 와중에 원님이 이방에게 마을에 방을 붙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집에 있는 비단을 한 필 가져오면 옥에 갇혀 있는 사람을 풀어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옥에 갇혀 있는 가족의 수만큼 비단을 가지고 관가로 왔습니다. 관졸들이 가져온 비단을 자세히 기록하고 해당되는 사람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옥에 있던 사람들이 다 풀려나가자 원님은 사람들이 가져온 비단을 모두 관가 마당에 쌓아놓고 비단장수에게 비단을 찾아보라고 말했습니다.
옛날 비단에는 표시가 있어 자신의 비단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비단 장수는 비단을 찾았습니다. 원님은 기록을 보고 그 비단을 가져온 사람을 잡아오라고 하여 그 사람으로부터 비단을 훔친 경위를 자백 받았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경봉 스님은 참선하는 스님들에게 참선하면서 길이 안 보인다고 포기하지 말고 원님이 돌부처 붙들고 비단 찾아주듯이 화두를 잡으라고 하셨답니다. 조금 해 보고 길이 안 보인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경봉 스님의 가르침이 돌부처 이야기 속에 잘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렵다 싶으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 이 이야기의 메시지입니다.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1874~1965)도 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포기하지 마십시오!”라는 한 마디만 하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개그맨이었고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심형래 씨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실패는 없다. 다만 성공할 때까지 하지 않았을 뿐이다.”

돌부처 이야기에서 원님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잡아서 해결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소한 이제는 더 해도 가능성이 없다는 정도까지는 노력하고 그 시점에서 돌부처 이야기를 떠올려 조금 더 노력한다면 우리가 처음에 의도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