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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 Crime]그림경매와 맞물리는 그림도난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짧고 격정적인 삶을 사는 동안 화가로서 온당한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또 주위 사람들로부터는 철부지 시골뜨기로, 세상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자로, 맹목적인 고집쟁이로 냉대 받는 속에 생을 마쳤으며, 그의 그림이 인정되고 그의 인간성이 이해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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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1889, 낙찰가 2,475파운드(약 580억원에 해당,1987)

그는 인생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를 화폭에 담았고 자기 자신의 생사관을 그림으로 뚜렷하게 표현했으며 또 이러한 생각을 동생 테오에게 편지로 고스란히 알려서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어 그의 그림과 인간성을 평가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반 고흐의 그림에 대한 이해가 점차 높아짐에 따라 그 그림에 눈독을 들이는 도둑도 생기기 시작 했다. 반 고흐 그림이 처음 도난당한 것은 1988년 5월 20일의 일로 암스테르담의 시립미술관에 소장되었던 반 고흐의 ‘카네이션’과 세잔느의 정물화 ‘병과 사과’ 그리고 네덜란드의 화가 요한 발톨드 용킨트의 ‘느베르의 비리아드 명인의 집’이라는 세 점의 그림이었다.
이 미술관은 암스테르담 구시가지의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지 만서도 바로 옆에는 국립미술관, 반 고흐 미술관 등의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미술관들이 있으며 그 주변은 식당이나 호텔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어 미술 펜이나 관광객의 발길이 끊어질 날이 없어 번화가가 되어 있었다.
도둑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 왔을 때 경보장치는 소리를 내며 울렸지만 관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이 미술관의 1975년도에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야간 경비원을 고용할 수 없었다고 하며, 도난당한 3점의 그림을 시가로 따지면 5천2백만 불(당시의 환율로 환산하면 6백5십억 원에 해당)로서 이 피해액은 당시로서는 사상 최고의 미술품도난사건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록은 7개월 만에 네덜란드 국내의 다른 미술관에서 일어난 반 고흐 그림의 도난사건으로 깨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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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1889, 낙찰가 5,390불(약 720억원에 해당,1987)

제2의 도난사건은 1988년 12월 12일에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반 고흐의 그림 ‘직조공’, ‘감자를 먹는 사람들’, ‘마른 해바라기’등 3점이었는데 피해액은 7천2백만 불 내지 9천만 불(약 8백8십억 원내지 1천1백억 원 추산)이라 했다.
이 미술관은 헤레나 크뢸러 뮐러 여사가 소장 했던 미술작품을 위시해서 19세기에서 20세기 초의 회화와 조각 작품 그리고 반 고흐의 작품은 약 300점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미술관인데 도둑은 밤 9시경에 창문을 부수고 침입하였으며 이때 경찰에 직결되어 있던 경보장치가 작동해 경찰은 이 현장에 7분 만에 도착하였는데 이때는 범인들은 일을 마치고 도망하고 없었다. 관내에는 수위가 있었는데 도난경보기는 울리지 않아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1988년에 들어서서는 5월과 12월에 거쳐 반 고흐의 그림이 두 번씩이나 도난당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즉,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해인 1987년에는 런던과 뉴욕에서 있은 미술품경매에서 반 고흐의 ‘해바라기’와 ‘아이리스’가 사상최고에 가격으로 낙찰 되었던 것이다. 즉 3월 30일에는 '해바라기'가 2,475 파운드(약 580억 원에 해당)로 런던의 크리스티즈 경매장에서 일본인(安田火災海上保險)에게 낙찰되었으며 이 가격은 과거의 최고가격의 3배 이상이나 되는 가격으로 일본인의 재력을 과시하였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자기네의 회사 창립과 ‘해바라기’가 완성된 시기가 같기 때문에 회사 창립 100주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이 그림을 고가인줄은 알면서도 최고가를 써넣어 낙찰시켰다는 것으로 세계를 깜작 놀랄게 하였다.
그런데 최고가의 기록은 같은 해 11월 11일에 깨지고 말았다. 즉 뉴욕의 사자피즈 경매장에서 반 고흐의 그림 ‘아이리스’가 5,390 불(약 720억 원에 해당)에 오스트랄리아의 실업가 아란 폰드에게 낙찰되었다. 폰드는 반 고흐 그림의 열렬한 수집가로 ‘해바라기’가 일본인에게 낙찰 되었을 때 5천만 불(약 7백억 원에 해당)의 웃돈을 얹어 줄 테니 자기에게 도로 팔라고 제의 하였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번에도 혹시 다른 이에게 낙찰될까봐 대금을 써넣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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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셰 박사의 초상'1890, 낙찰가 8,250만불(약1,250억원에 해당,1990)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의 그림이 도둑맞은 것은 ‘아이리스’가 매각 된지 반 년 뒤의 일로 반 고흐는 네덜란드 태생으로 국내에는 그의 작품이 많이 있으며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는 약 300점이 있으며, 국립 반 고흐 미술관에는 약 700점(유화 200점과 드러윙 500점)이 소장되어 있다. 경매로 그의 그림이 믿을 수 없는 고가로 팔린다는 보도에 접한 범인들은 자기네 주변에 있는 그의 그림이 돈뭉치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즉, 그림의 암시장에서는 정상 판매가의 약 1/10 정도이라는 것이 당시의 시세였다고 해도 워낙 고가의 낙찰가였기 때문에 그림을 훔치기만 하면 떼돈 번다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시립미술관의 경우는 범행 수주일 후에 암시장에 나온 그림을 구매인으로 가장한 형사에게 체포되어 그림은 고스란히 미술관으로 되돌아왔으며, 그 7개월 후에 있었던 크뢸러 뮐러 미술관의 도난사건의 경우는 범인들이 그림을 암시장에 내놓은 것이 아니라 미술관에 사들이라고 요구하여 왔다. 그러면서 훔친 그림 중에서 ‘직조공’을 미술관에 돌려보내며 나머지 그림의 값으로 2백50만 불을 요구 하였다. 동 미술관은 국립이기 때문에 의회의 구입동의를 요청하였으나 그런 돈을 지불할 수 없다는 결의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미술관 자체에서 마련한 돈으로 범인들과 교섭하다가 실패하였으나 89년 7월 13일에 범인 4명이 일망타진되면서 그림은 고스란히 미술관으로 돌아왔다.
다음해인 1990년에는 반 고흐의 그림이 경매에서 또 사상최고의 가격을 개신하는 일이 벌어졌다. 즉 5월 18일에 뉴욕의 크리스티즈에서의 경매에서 그의 그림 ‘가셰 박사의 초상’이 8천2백50만 불(약 1천2백50억 원에 해당)에 낙찰되었는데 낙찰자는 일본인 사이또(齊藤予英 大昭和製紙 名譽會長 지금은 故人)이었다.
이 그림의 최고가가 갱신된 지 1개월 후인 6월 중순에는 네덜란드의 남부에 있는 노르토 파란반드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반 고흐의 초창기의 그림 3점이 도난 되었는데 그중 2점은 1994년에 돌아왔다고 한다.
1991년 4월 14일에는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국립 반 고흐 미술관에 총을 든 두 남자가 침입해서 경비원에게 경보장치의 스위치를 끄게하고는 그의 그림 20점을 강탈해가는 대규모의 사건이 야기되었다. 범인들이 타고 도망갔던 미술관의 차가 바로 가까이에 있는 역 앞에서 발견되고 그 차안에는 20점의 그림이 고스란히 있어 찾을 수 있었다. 후에 범인 4명이 검거되었는데 이들 중 2명은 전과자이었으며 두 명은 경비회사에서 파견 나와 있던 현직 경비원인데 역 앞에서 만나 다른 차에 싣고 도망가기로 했는데 그 차가 고장이 나서 오지 못해 기다리던 범인들은 그림을 그대로 놓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 고흐 그림의 연속적인 도난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의 그림의 시장가격 상승과 관계되는 것으로 작품에 대한 투기와 수집가들의 광적인 수집욕의 발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 인터폴의 통계에 의하면 ‘아이리스’와 ‘해바라기’의 경매가 있은 다음 해인 1988년 1월에서 8월까지 그 사이에 미술작품 도난사건이 9천 건이나 일어났다는 것이며 1985년에 6천2백건과 비교하면 경매가의 상승은 미술품도난사건을 부추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현대사회에 있어서 미술작품을 둘러싼 상업행위와 이의 절도사건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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