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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내나라 이야기

  • 입력 2017.12.18 15:15
  • 기자명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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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한 나의 남편은 옛날이야기의 명수였다. 세 아이들을 기르면서 그는 ‘심청전’, ‘장화홍련전’, ‘춘향전’, ‘흥부놀부전’을 늘 얘기했다. 한 걸음 나가서 ‘서유기’, ‘삼국지’ 등도 중요한 레퍼토리였다. 막내가 태권도 2단을 따게 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가끔 생각해본다. 세 아이들은 ‘콩쥐팥쥐’ 얘기를 ‘신데렐라’보다 훨씬 일찍 외웠었다.

가끔 등산을 가면서 그는 또한 고교선생님들의 별명도 모두 얘기해 주었다. 우선 무슨 이야기에나 강조를 하려면 ‘호되게’라는 첨가어를 넣었다는 ‘호되게 선생님’, 그는 학생들이 말을 안 듣고 떠들면, 본인이 종아리를 걷고서 채찍으로 본인을 벌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제자를 잘못 기른 스승 자신이 먼저 벌을 받아야 된다면서.

아빠가 떠난 이후에도 성장한 아이들은 가끔 ‘옛날이야기’를 들먹거린다. 첫째가 며칠 전에 북한 문제를 논하다 말고 ‘흥부놀부전’을 기억해 내었다. ‘북한은 항상 놀부인가요?’ ‘잘 모르겠네. 생각 좀 해보자’라고 말한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통 대답이 막막하다. 본래 이야기야 얼마나 간단하고 멋들어진가. 돈 많고 심술궂은 놀부와 가난했지만 심성 착한 흥부의 얘기는 ‘과정’이 클라이맥스이다. 이 ‘과정’ 안에는 제비의 부상, 부러진 다리의 의학적 치료, 남쪽에서 물어온 씨앗, 그 씨앗에 싹이 트고 박이 열리는 봄, 가을이 한 폭의 드라마처럼 담겨져 있다.

이야기는 ‘듣는’ 재미 이외에 ‘보는’ 재미도 큰 몫을 한다. 그 뿐이랴! “스르렁 스르렁” 박을 써는 톱질 소리를 듣다보면 향긋한 박내음까지도 코에 스쳐오는 듯하다. 그러나 박력 있는 ‘과정’의 종말은 너무나 간단하다. 부자가 된 흥부가 파산선고를 하게 된 놀부를 도와서 행복하게 “잘 산다”이다. 아무 갈등이 없다. 하기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듣던 서너 살짜리 나이에 먹는 것과 노는 것 이상으로 다른 갈등이 무엇이 있으랴. 그러기에 요즈음 세계인을 겨냥해서 일간지나 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북한의 지도자’를 대할 때마다 심정이 착잡해진다. 더욱이 나와 같은 성씨인 김씨다. 우리 아이들이 지적한대로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10명중 7명이 맞는다는 흔한 성씨이다. 세계인의 이목 속에 당당하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나의 성이 연상되고 싶다. 그런데 반대로의 모습으로 매일 매일 우리의 눈앞에 확대되고 있다. 괴로운 일이다. 한번 떠난 조국은 결코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해주며...

‘모국’ 질문하는 아이들의 답변 궁색
‘당당한 모습’ 기대... 희망만이 해답

오래전 읽었던 LA타임즈에는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 지도자’얘기가 실려 있었다. 1942년 백두산에서 탄생했다고 신화화되어 있지만 사실은 러시아에서 태어났을 거라는 것이다. 6살 되는 해에 형제 한 명이 물에 빠져 죽었고, 그 다음 해에는 엄마를 죽음으로 잃었다는 것, 그리고 이런 것들이 성격 형성에 지장을 주어서, 말 더듬는 병과 비행기에 대한 공포증들도 관계가 있으리라는 것 등등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우선 내가 태어난 고향, 평안남도 ‘개천’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갓난아기 때부터 피난민으로서의 과정이 시작되었으니까. 박이 열린 것은 분명하다. 세 아이가 주렁주렁 매달렸으니. 그런데도 이야기는 도저히 금방 끝날 것 같지 않다.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천만의 혼돈스러운 얘기들이 있다. 게다가 흥부, 놀부는 도대체 누구에게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 것인지 혼돈스럽다. 그래서 딸에게 이 글을 띄운다.

해가 떠오르는 동쪽에 어느 아름다운 나라가 있었노라고. 그 나라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고, 예술을 사랑한 배달자손이었다고. 사랑과 미움의 혼돈 속에서 그 후예들은 가슴 아픈 동굴을 지나가고 있다고. 그리고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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