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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시론]섣부른 보장성 강화 국민고통보험 될 수 있다.

  • 입력 2006.11.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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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건강보험료를 6.5% 인상한다는 정부의 방침을 두고 항간에 말이 많다. 보건복지부는 당초 건강보험료 6.5% 인상을 추진했었으나 기획예산처는 내년 보험료 인상을 3%로 계산해 국고 지원금을 배당해 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다시 보험료 인상 타령을 하다니!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로 5,000원 내던 보험료가 10만 원으로 뛴 사례에서 보듯이 집 한 채 가진 서민은 이제 보험료 거부운동까지 거론하기에 이르렀다.정부의 인상 방침에는 고령화 사회를 맞아 보장성 강화와 기존의 저부담 저급여 체계를 적정부담 적정급여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많은 시민은 이러한 보험료 인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6%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보험료 인상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정부가 건강보험료를 올리려는 것은 건보 재정수지가 악화됐기 때문인데, 왜 건보 재정에 빨간 불이 켜지게 되었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아직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건보 급여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누적흑자가 이른 시일 내에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사회의 21세기적 재앙으로 불리는 고령화, 저출산 현상으로 노인층에 대한 급여비는 증가하지만 보험료를 내는 인구는 줄어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에 보건복지부의 로드맵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에 7,000여억 원의 추가 건보 재정을 투입할 예정이다. 여기에 16세, 40세, 66세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이른바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제도’ 등 신규 사업까지 합치면 추가부담은 1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보험료 인상이 필요한 경우는 보험급여 확충을 위해 추가 재원이 필요하든지 또는 적자 재정을 벌충하기 위해서다. 전자의 경우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 이용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민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후자는 보험료 저항을 각오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관리운영비가 2000년 7.1%에서 2003년 3.6%로 감소했지만 대만 1.8%, 일본 2.1%에 비해서 여전히 높으며, 2005년만 해도 관리운영비가 7,589억 원이 넘는 건보공단에 대해 ‘군살’인력은 없는지, 조직의 생산성은 향상되고 있는지, 불투명한 지출은 없는지, 수십조 원의 보험료가 잘 관리되고 있는지, 적자재정을 메우기 위해 보장성 확대라는 가면을 씌운 예는 없는지, 피보험자들의 의문은 그칠 줄을 모른다. 정부는 보험재정이 부족해지면 단골 정책 메뉴로 부당청구 방지를 빙자한 보험실사 강화, 보험심사 강화, 각종 약제비 절감 방안, 약제비 환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료계에 대해 압박을 가하고, 일부 언론에서는 일부 의료인의 모럴헤저드를 전체 의료계의 도덕적 해이인양 크게 보도하여 마치 의료인들 때문에 보험재정이 어려워진 것으로 보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해야 언론이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수입을 늘리는 것이 여의치 못할 때는 새나가는 곳을 틀어막고 씀씀이를 줄여 수지를 맞추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정부는 건보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우선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고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신규사업은 중단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정형근위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의료급여환자의 모럴해저드도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급여 재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등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의료급여 환자의 과잉의료소비로 인해 의료급여 재정이 해마다 악화, 지난 7월 현재 병의원 등 요양기관에 지불해야하는 의료급여 비용도 2,394억 원이나 지불 하지 않고 있다. 병의원은 의료급여비 지급이 무한정 늦어져도 환자의 진료를 중단할 수 없어 운영난을 초래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의료급여 재정과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상존 함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 및 지자체 의료급여 담당공무원과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급여 담당자들은 2003년부터 해마다 1억5천여만 원의 예산으로 100여 명씩 10여 일 동안 호주, 영국, 프랑스, 이태리 등으로 외유성 공로출장을 갔다 왔다. 특히, 지금까지 이를 방치한 채 관리를 소홀히 해 심각한 재정위기를 초래한 정부와 지자체의 담당공무원이 외유성 공로출장을 다녀온 것은 공무원들의 심각한 모럴해저드가 아닐 수 없다고 정형근 위원은 지적했다. 특히 올해 상반기 급여비 증가율이 사상 최고치인 18.7%를 기록했지만 정부는 그 원인 파악에도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그동안 대외적으로 급여비 상승이 보장성을 강화한 당연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건에선 “(급여비 급상승이) 자연증가로 인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원인 분석 및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적혀 있어 아직 원인 파악이 안 돼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서비스 중심 혁신조직으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단행된 가운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고 한다.이와 함께 경영환경변화에 따른 정책지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연구센터를 ‘건강보험연구원’으로 확대 개편하고, ‘국민의료비 통계센터’를 설치해 건보 급여 뿐 아니라 비급여 전체를 포괄하는 43조 원 국민의료비의 동태적 분석을 정확히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하니 기대를 걸어본다.지난 달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급여제도의 부실 운영을 통렬히 자책하는 반성문 ‘의료급여제도 혁신 국민보고서’를 통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큰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느낀다”고 정책 실패를 자인했다. 장관이 국민을 상대로 정책 관련 보고서를 직접 만드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더구나 정책 실패에 대해 장관이 책임을 다른 곳에 떠넘기지 않고 자인하고 나선 것은 용기 있고 참신한 행위로 주목할 만하다.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피보험자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하여 상당히 높은 수준의 본인 부담금을 부과하고 있으며, 의료 공급자의 과잉진료나 과잉청구를 줄이기 위하여 강도 높은 진료비 심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자와 보험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하여 어떠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년이면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이 땅에 태어난 지 30주년이 된다. 우리의 이 제도를 배우기 위하여 17개국에서 온 35명의 전문가가 사회보험 수련을 받고 돌아갔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낮은 보험료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이 정도 수준의 보험급여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해 했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급여비 통제 방법에 대하여 배우고 싶어 한다. 보장성 강화를 원한다면 최소한 적정부담, 적정급여, 적정수가의 틀을 갖추어야하며 의료계에 일방부담을 주는 보장성 강화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또한 건강보험재정 능력을 벗어난 대안 없는 보장성 강화는 유보돼야 한다. 적정부담, 적정급여에 대한 보험수급자, 정부 및 의약인 간에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을 두고 매번 시끄럽다. 특히 내년에는 대선이 있고, 정부가 선심성 복지정책을 남발하는 유혹에 빠지게 될 위험이 큰 상태에서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재원 조달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국민건강보험은 국민연금보험과 같이 ‘국민고통보험’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