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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初心)

  • 입력 2018.01.09 14:27
  • 기자명 전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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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돌부처 이야기처럼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자주 해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심초심(禪心初心)’이야기입니다. 선심초심은 정신과 전공의 시절에 읽었던 책의 제목입니다. 영어 제목은 ‘Zen Mind Beginner’s Mind’인데 우리말로 ‘선심초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선사인 스즈끼 순류(鈴木俊隆,1905~1971)가 쓴 책입니다.

스즈끼 순류는 많은 제자들을 가르쳐 봤더니 어떤 제자는 깨닫고 어떤 제자는 깨닫지 못했다고 책에서 말합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깨닫는 제자는 스즈끼 순류에게 처음 올 때 가진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깨닫지 못하는 제자는 처음의 그 마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스즈끼 순류는 처음 자기를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내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가르침은 단 하나다. 그러면 그대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라고 늘 말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처음 내린 결정, 즉 처음 먹은 마음이 가장 옳습니다. 그 결정을 계속 밀고 나가면 그것을 이룰 수 있고 그것이 우리에게 최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초심을 유지하는 그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꾸준히 하면서 그 일을 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 생깁니다. 그러면 다음에 무슨 일을 하든 그 시스템을 활용하니, 모든 일이 수월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 하나만 하고 있을 때 굳이 다른 일을 안 하더라도 그 속에 다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처음에 마음 먹은 일을 성취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또 필요한 일을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에 내린 결정을 여러 가지 이유로 바꾸거나 버립니다. 그래서 새로 또 시작합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중간에 계획을 수정할 때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처음에 옳은 결정을 해놓고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중도에 그만두면 일도 쌓이지 않고, 일을 하는 노하우도 쌓이지 않고,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시스템도 구축되지 않습니다. 나는 가능하면 처음에 가진 마음을 잃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마음을 바꾸고 싶은 유혹이 들때 선심초심을 떠올리며 처음에 가진 마음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흔들리는 마음의 마지막 비상구, 초심
진료실에서 보면 환자도 처음 올 때는 환자 자신을 위해서 최선의 판단을 하고 옵니다. 치료를 받으러 오는 동기는 다 다르지만 공통된 것은 이대로는 안 되고 변화를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처음의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알코올 중독 환자는 술 때문에 부인이 집을 나가자 술을 끊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진료실을 찾아왔습니다. 상담과 약물치료를 통해 몇 주간 술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처음 가진 술에 대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이럴 때 항상 선심초심 이야기를 해 줍니다.

어떤 알코올 중독 환자는 술로 인해 직업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가족 간에도 갈등이 많았습니다. 술을 끊고 인생을 새로 시작해야지 하면서도 번번이 술에게 지곤 했습니다. 이 환자에게 선심초심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부적처럼 지니고 다닐 수 있도록 종이에 써 달라고 했습니다. 이 환자는 이 글귀를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술을 끊겠다는 자신의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종이를 보고 술에 대한 유혹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혹 종이를 잃어버리면 다시 써 달라 하여 지니고 다녔습니다. 다른 환자들도 정신치료를 받던 중에 꾀가 나고 회의가 들 때, 선심초심 이야기가 자신들을 잡아 주는 힘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위의 경우와는 달리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바른 법으로 열심히 해서 좋은 변화가 있는 경우에도 선심초심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런 환자에게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계속 그대로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중요한 변화는 계속 일어날 겁니다. 처음 가진 마음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이것이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합니다.”며 앞서 말한 ‘선심초심’ 이야기를 해 줍니다.

우리는 처음에 낸 마음을 쉽게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처음에 가진 마음의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쉽게 마음을 내고 쉽게 그 처음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습관이 되고 시스템이 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사람들과 쉽게 약속하고 쉽게 어기듯이 우리 자신과 쉽게 약속하고 쉽게 어깁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우리가 믿지 못하게 됩니다. 조그마한 것이라도 처음에 낸 마음을 그것을 성취할 때까지 가지고 있고, 그 마음이 흔들릴 때 그것을 이겨내는 경험을 하면 처음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그렇게 처음 마음을 계속 가지는 것이 우리 속에 자리 잡을 때, 우리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살아가면서 놓치지 않고 추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