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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중화 원장의 두물머리 사진 한 장

  • 입력 2018.01.11 14:44
  • 기자명 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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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 고중화 작가는 이비인후과 후배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진 작가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몇 년 전 두물머리에서 찍은 나무 사진의 인상이 너무 강렬하여 시 한 편을 쓰게 되었는데, 얼마 전 그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송년 선물로 보내왔다. 올해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강한 메시지와 가장 멋진 스토리가 들어있는 선물인 셈이다.사진 속 나무는 강변에서 물안개 속에 잠겨 외로이 떠 있는 모습이다. 몇 년 전 처음 보았던 사진은 흑백이었다고 기억되는데, 이번 사진에서는 전체적인 배경을 옅은 보라색으로 처리하였다. 아마도 실제의 풍경을 내면의 풍경으로 전환하기 위한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이 세상에 없는 꿈속의 풍경 같은 배경 속에 홀로 서있는 저 나무는 어쩌면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해 본다. 어디로든 자유로이 갈 수 없는 나무. 그렇다고 든든한 뿌리를 내렸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물안개 위에 떠 있는 나무. 강물은 아주 가까이에서 바다를 향해 유유히 도도히 흘러가겠지만 강물로 걸어 들어가 함께 흐를 수도 없는 나무. 흘러가는 강물 소리는 들리지만 주변 상황에 대해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더욱 답답한 나무.

이 사진이 강한 인상을 준 이유는, 내가  이 나무에 내 모습을 비추어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모습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런 절대 고독 속의 한 그루 나무의 모습이 초라하거나 처량해 보이지 않고, 처연한 감동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계간 예술가’라는 잡지의 송년회에서 박찬일 시인이 니체 철학을 강연하면서 시간 앞에 유한한 인간이 신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기꺼이 죽어 주리라’하는 삶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나무의 모습에서‘기꺼이 고독해 주리라’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모두 고독하고 시간 앞에 제한적인 존재로서 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작은  행복을 만들려고 애쓰고, 사소함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으며 살아가는 모습도 귀한 것이라 여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만들어 낸 이미지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전해야 하는 점에서, 모호성에 의지하는 열려있는 감상 대상이라는 점에서 시와 사진은 많이 닮았다. 두 예술의 차이점을 굳이 부각해 보자면, 사진은 더 선명한 이미지를 전해주는 대신 시각 이미지가 주는 의미를 독자가 스스로 창출해야하는 반면, 시어로 제시되는 이미지를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해야 하는 것이 시를 읽는 독자의 몫이라는 점이다. 좋은 사진을 통해 시 한편을 얻은 경험을 이렇게 독자 여러분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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