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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에 드린 가락 우리 소리와 마주하다

  • 입력 2018.01.12 15:52
  • 기자명 진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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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민락 (與民樂)
- 장     르 : 한국음악(조선시대 음악), 아악곡(雅樂曲)
- 구     성 : 전체 10장으로 구성, 현재는 7장까지만 전한다.
- 악기 편성 : 향피리, 대금, 해금, 거문고, 가야금, 아쟁, 소금, 장구, 좌고 등 복수편성

송구영신(送 : 보낼 송, 舊 : 옛 구, 迎 : 맞이할 영, 新 : 새 신)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이라는 뜻으로, 설레임으로 시작한 한해가 저물어 가는 아쉬움 속에서 되새겨 본다. 저물어 가는 한 해는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신년 계획은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미련은 더 큰 회한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러나 과거 선조들은 한 해를 두고 지난날을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새로이 가다듬었으니 이는 곧 송구영신이다.

이는 중국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 초기의 대학자이자 시인인 서현(徐鉉)의 ‘한등경경루지지(寒燈耿耿漏遲遲) 송구영신료불기(送舊迎新了不欺)’<찬 겨울밤 등불은 깜빡이고 물시계의 시간은 더디어 가건만, 옛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는 일은 속임(어김)이 없구나>라는 시구(詩句)에서 유래되었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자세
핫이슈들로 바빴던 정유년 한 해가 지났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우리가 되짚어 볼 만한 선조들의 자세가 있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자세가 그러하다.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다’라는 뜻으로,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로, 《맹자(孟子)》에서 유래되었으며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한 말이다. 맹자는 인의(人義)와 덕(德)으로써 다스리는 왕도(王道)정치를 주창하였는데, 그 바탕에는 백성을 정치적 행위의 주체로 보는 민본(民本) 사상이 깔려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예악(禮樂)사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공자의 예악(禮樂)사상에서 ‘예’는 배려, ‘악’ 즐거움·음악 뜻하며, ‘가난하거나 지위가 낮으면서도 인생을 즐겁게 살 줄 알고, 부자거나 지위가 높으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예의를 지키면서 깍듯하게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높은 경지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실천하기 힘든 덕목인 악(樂·즐거울 악)과 부자들이 실천하기 힘든 예(禮·예도 예)를 합하여 예악(禮樂)사상이라 하였다. 악(樂)이라는 글자에는 즐거움이라는 뜻과 함께 음악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하는 즐거움이란 음악을 뜻하기도 한다. 즉, 예악사상은 즐거운 음악과 함께 남을 배려하는 예를 중시하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유교를 중시했던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도덕사상을 펼치기 위한 수단으로 춤과 노래를 중요시했다.

앞서 나온 바와 같이, 맹자에서 유래된 ‘여민동락’의 자세와 공자의 ‘예악’ 사상을 되짚어 볼 때 좋은 리더의 권위와 힘은 권력자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화된 소유나 향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리더에 대한 구성원들의 진심 어린 지지와 존경에서 시작한다.

밖으로만 보이는 권위를 내려놓고 구성원들과 함께하는 리더는 외면을 꾸미는 권력자와는 비교할 수 없다. 내면이 건실하고 마음으로 따르는 조력자(co-agent)들이 많은 리더에게 외면적으로 보이는 권위는 중요하지 않다. 비로소 이러한 리더만이 진정으로 ‘여민동락’을 이루어 낼 것이다.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여민동락을 맹자가 이상 정치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던 숨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종대왕의 ‘여민락’ - 더불어 즐기다
우리나라에서 예악형정의 정치를 펼친 성군은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이다. 그러나 한글창제와 조선의 최성기를 이루게 한 정치적 업적 이외에 음악사적으로도 위대한 공적도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조선이 갖추어야 할 음악 정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음의 시가를 표기할 수 있는 정간보(井間譜)의 창안과 아악(雅樂) 정리, 악서 찬정, ‘여민락(與民樂)’, ‘보태평(保太平)’, ‘정대업(正大業)’과 같은 음악 제정 또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정간보는 우물 정(井)자 사이에 음을 기록해 넣는 악보로 장단, 박, 악기의 선율, 노래 가사 등을 함께 적어 여러 악기의 악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동양 최초의 유량(有量) 악보 즉, 음의 길이, 즉 리듬을 명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악보이며,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종묘제례악을 비롯해 훈민정음으로 지은 용비어천가를 작곡한

‘여민락’은 세종대왕이 이 악보로 직접 만든 악곡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은 당시 음악에 가장 뛰어난 박연(1378-1458)으로 하여금 궁중음악인 아악을 정비하도록 하였다. 아악은 궁중의식에서 연주되는 음악으로 고려 때부터 궁중에서 사용되었는데 세종 때에는 중국의 당, 송, 원 등 여러 나라의 음악이 섞이면서 그 체계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박연은 악장과 악보 그리고 악기를 일일이 고증하여 아악을 정리했고 이렇게 아악은 조선의 공식 의례 음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세종대왕은 음악을 만들 때에도 그 안에 일반 백성을 배려하는 마음을 담았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여민락(與民樂)이라는 음악으로, 앞서 이야기 했던 여민동락과 같이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항상 백성의 입장에서 불편함을 살펴가며 이를 해소하려고 노력했던 그의 마음이 음의 공명에서까지도 배어있었던 것이다.

여민락은 본래 조선시대 정악 중 최초의 한글 노래인 ‘용비어천가’의 일부를 노래하기위해 만들어졌지만 시대를 거쳐 오며 현재는 가사 없이 관현악곡으로 연주되고 있다. 세종 이후, 여민락은 전승과정을 거치면서 악기 편성과 형식이 다른 몇 곡으로 파생되면서 오늘날 전하고 있는 여민락은 ‘여민락, 여민락 만, 여민락 령, 해령’의 4곡이 있다. 사용되는 악기는 향피리, 대금, 당적, 해금, 가야금, 거문고, 아쟁, 좌고, 장구, 박 등으로 편성되는데 그 선율이 웅대하고 화통해 조선시대 악의 대표적인 곡으로 꼽히고 있다.

관현 합주 편성으로 연주되는 여민락에서 각 악기들의 역할을 짚어 보자면, 현악기인 가야금과 거문고는 대체로 낮은 음역에서, 관악기인 대금과 향피리는 주로 높은 음역에서, 그리고 지속음을 내는 해금과 아쟁은 각각 중간 음역과 낮은 음역에서 음과 음 사이의 공백을 채워 주면서 선율을 진행한다. 그리고 타악기인 장구와 좌고는 박자를 짚어주는 역할을 하고, 박은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여민락은 원래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곡이었지만, 현재는 7장까지만 전해지며 1~3장까지는 한 장단이 20박이고, 속도는 느리지만 가락이 화려한 편이다. 하지만 4~7장까지는 한 장단이 10박으로, 앞서 나온 1장부터 3장에 비해 속도도 빨라지고 가락도 간결해진다. 1장은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한 장단이 어디까지인지 알아채기가 힘들다.

여민락은 궁중음악 중에서도 속도가 느리고 곡의 길이도 매우 긴 편이다. 1장부터 7장까지 전곡을 연주하는 데에 약 90분정도가 소요되는 대곡이다. 느린 음악을 통해서 화평함을 추구했던 선조들의 음악문화를 느끼며 이처럼 새로이 맞이하게 된 2018년 무술년을 맞이하는 마음은 아쉬움보다는 희망과 기쁨으로 지난 해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보완으로 여지를 남기고 마음을 다잡을 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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