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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시론]건강정보 보호법? 건강정보 활용법?

  • 입력 2007.01.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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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환자의 진료 내역은 환자 본인이나 법적 대리인의 요청 없이는 공개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진료 기록은 개인의 극비 사항이고 환자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를 믿고 자기의 모든 의학적 비밀을 의사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가정해 보자. 정신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성형외과 등의 진료기록 누출은 연예인이나 정치인과 같은 공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사회에서 그 파급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공인이 아닌 개인도 자신의 진료 내용을 가족에게조차 알리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개인 의료 정보의 제공이나 특정 기관에의 집중은 완벽한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가 이루어진 후에 시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보건복지부는 ‘건강정보 보호 및 관리 운영에 대한 법’을 만들어 국회 통과를 목표로 수차례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법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보호의 개념도 없이 보건복지부 산하에 ‘강정보진흥원을 신설하여 국민의 모든 건강 정보를 한곳으로 통합하려는 의도에서 추진됐다. 결국은 진흥원이라는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내용이었다.

건강 정보를 한곳으로 통합하여 의료 기관들이 공유함으로써 중복 검사를 피하고 의료보험 재정을 보호하다는 명분이나 새로운 법안을 집행하려면 어마어마한 재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현재 환자가 타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겠다고 정보를 요청하면 전부 제공하여 중복 검사를 피하는 것이 의료기관 간의 관행이다.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정보 누출에 의한 문제점이 점차로 증가하는 현 시점에서 민감한 개인의 건강정보를 보호하는 취지의 입법을 서둘러야 할 정부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는 건강정보를 취합, 독점하는 법을 앞장서서 만들려는 시도는 아무래도 찜찜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개정된 세법에 대한 시행령도 재고되어야 한다.

건강정보 보호법을 두고 의료계, 소비자단체 등이 보호보다 활용에 초점을 둔 게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관련 토론회가 열려 관심을 모은바 있다. 의료정보화가 대세라면 보호 법안이 있어야 하겠지만 현재 마련된 안과 같이 정보의 이용에 초점이 맞춰져서는 곤란하다. 즉, 건강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문제는 ‘이 법이 정말 환자들의 질병 이력을 보호하려는 취지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김주한 의협 정보 통신이사(서울의대 교수)는 “최소 수집, 목적 명기, 목적 수행 후 정보 폐기 등 개인정보보호의 기본원칙도 준수하지 않는 보호법은 무늬만 보호법이지 보호보다는 관리·운영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생뚱맞은 법이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이법이 원안 그대로 시행된다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정보의 영구적인 집적’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은 10년 이상 전 국민의 진료데이터를 집적하고 있다.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의 직원들을 통해 개인의 병력, 주소 등이 악용된 바 있어 일정기간이 경과한 후 정보를 폐기하라는 지적이 수차례 제기돼 왔었다. 때문에 김 이사는 “보호법과 진흥법은 각각 분리 입법돼야 하며, 관리·운영을 담당할 ‘건강정보보호진흥원 신설도 백지화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기능이 애매모호한 건강정보보호진흥원의 설립과 이를 통한 위탁업무 등 이 법은 한 마디로 문제가 많은 법이다. 건강정보 이용의 목적은 환자 치료에 있는데 정작 환자들은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법 제정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소비자의 권리가 가장 우선되도록 해야 한다. 개인 정보로 홍역을 겪은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경험을 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한만중 전 대변인은 “각 병원들이 진료정보 유출 위험을 왜 환자들에게 미리 홍보하지 않았냐”고 질타하고 의료계의 대국민 홍보가 지극히 미흡했음을 지적했다.

이 법률안은 이미 입법예고기간을 거쳐 현재 수정작업이 진행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건강정보보호법 통과를 위해 필요하다면 건강정보보호법과 건강정보활용촉진법을 분리 추진할 수도 있다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의료계는 복지부가 분리입법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 지에 대해 믿지 못하는 눈초리다. 이태한 복지부 보건의료정보화추진단장은 지난 12월 12일 ‘건강정보보호법! 약인가? 독인가’ 정책토론회에서 “건강정보보호진흥원을 신설하는 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정말 국민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신설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건강정보는 최대한 보호되어야 하겠지만 이로 인하여 순수한 통계?연구목적의 건강정보 이용마저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각종 의료 정보가 종이 위에 옮겨지는 아날로그 식 의료 환경에서 만들어진 현재의 의료법으로는 전자 의무 기록 등 미래 지향적인 의료 정보 시스템을 충분히 관리할 수 없다. 고가의 비용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민간 의료기관들은 법률안 제정을 통해 실질적인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병원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 병원의 경우엔 전자 의무 기록을 도입하는 데 몇 백억 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추진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률 제정으로 국가 표준을 개발, 민간에 확산한다면 도입비용을 낮추는 것부터 시작해 직접적인 인센티브 지원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계는 “복지부가 원점에서 의료계와 함께 보호법과 정보 활용 촉진법을 별도로 마련해 나간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공언한 대로 정말 추진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가 의문”이라며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보건복지부는 국민 개개인의 건강정보 보호에 관심이 있는 것인지 의료비 절감을 위한 건강정보 활용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지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