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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살이 만져진다

  • 입력 2018.03.22 12:51
  • 기자명 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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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2011년 등단 한 후 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다가 주변 분들에게 아침마다 시를 보내 드리는 일을 시작했다. 자주 보낼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 바빠서 시를 게을리 읽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보내는데 어느덧 받는 분이 120분을 넘었다. 그 중에서 인연이 되어 두어 달에 한 번 씩 직접 만나 시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다섯 명이 모여 시도 읽고 식사도하고 술도 마시고 당구도 치는, 그야말로 또래 친구 모임이지만 나는 이 모임을 오인회(五人會)라는 이름의 문학(文學)모임이라고 주장한다.

솔직히 말하면, 문학모임으로 오인(誤認)해 주기를 기대하는 억지스런 마음이 담겨있다. 이번 달 모임을 공지하신 곽 검사님은 한문에도 일가견이 있으신 탓에, 시로써 아름다움을 열어간다 以詩啓美에서 따서 모임 이름을 시계(詩啓)라고 짓고 싶으신 모양이다. 모임 장소인 여의도 중식당 홍보석 예약자를 시계로 했다고 알려온 것이 수상하다. 주부들의 계모임처럼 만나서 수다 떨며 시를 이야기하는 모임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을 것이다. 만나서 정식으로 의논하게 되겠지만 아마도 그렇게 결정되리라 짐작된다. 이렇게 멋진 이름을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남자들만 모이는 자리인 만큼 술 한 잔 하다보면 가족들이, 특히 집사람이 섭섭하게 했던 일들이 화제에 오르곤 하는데,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일전에 위의 시를 가지고 갔었다. 민폐를 끼쳤다는 것을 금방 알았지만 그래도 표현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중노년을 맞은 남자들은 다들 같은 마음 -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맙고 미안한 마음 - 이라는 걸 이심전심으로 느꼈었다.

일류 축구 선수나 발레리나의 발에 박힌 굳은살은, 최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징표이므로 칭송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고, 그런 노력에 대해 적절히 보상받는 것 같다. 반면, 같은 굳은살이라도 가족을 돌보다가 생긴 주부의 굳은살은 희생과 봉사의 의미로 여겨지며 그에 대한 보상은 전혀 보장된 바 없다.

이 시는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에, 그 다음에는 고마운 마음에 쓰였지만 자꾸 읽다보니 에로틱한 면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인회 회원 한 분도 그런 말을 했었다고 기억된다. 잘 자는 사람 발은 왜 만지고 야단이냐고. 너무 티를 낸다고.

시의 주인공인 아내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매우 좋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줄 생각이냐, 허리 아픈 것이 자랑이냐, 왜 그런 것을 쓰는지 이해가 안 된다… 칭찬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거부감을 나타낼 줄이야. 그러나 시가 그렇듯이, 겉으로 드러내는 표현과 속마음으로 깊이 느끼는 것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미련일 수도 고집일 수도 착각일 수도 어리석음일 수도 있지만, ‘이 시를 쓴 내 마음 모를 리가 없지’ 하는 근거 없는 믿음이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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