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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의 고뇌와 정신병

  • 입력 2018.03.26 10:05
  • 기자명 문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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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로드 레이톤 작: ‘목욕하는 프쉬케’,1830, 런던, 테이트 갤러리
그림 1. 로드 레이톤 작: ‘목욕하는 프쉬케’,1830, 런던, 테이트 갤러리

[엠디저널]의학용어로 정신병을 Psychosis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쉬케(Psyche)라는 아름다운 처녀의 이름에서 유래된다. 영어의 Psychosis, 독일어의 Psychose는 모두 그리스 어원인 Psyche+osis에서 생긴 말이다. Psyche+osis가 Psychosis(정신병)로 되었지만, 그리스말로 osis는 경과, 특히 병적인 경과를 뜻하는 꼬리말로 쓰인다. 그러므로 「프시코오제」, 또는 「싸이코시스」라는 의학용어는 혼(魂)의 병적상태, 즉 정신병을 가리키는 말로 되었다.

아름다운 처녀 프쉬케와 사랑의 신 에로스(Eros)의 사랑이야기는 기원 2세기경의 로마의 시인 「아풀레이우스」가 쓴 것인데 이 신화는 매우 아름다운 얘기여서 유럽에서는 자고로, 멀리 가버린 남편이나 애인을 찾아 헤매는 여인상을 그리는 대표적 줄거리로 되어있다.

사랑의 신 에로스를 로마에서는 아모우르(Amor), 또는 큐피드(Cupid)라고 부르기 때문에 에로스, 아모우르, 큐피드는 동일어이며, 그 이름을 어찌 부르건 간에 사랑의 남신인 것이다.

옛날에 딸 셋을 둔 임금이 있었다. 세 딸이 모두 예뻤으나 그 중에서도 막내딸 프쉬케는 황홀하리만큼 예뻤으므로 어지간히 예쁜 두 언니도 그녀 앞에서는 추하게 보일 정도였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온 나라에서 모여 들어, 그녀의 미를 찬미하는 바람에 미의 여신인 비너스(아프로디테)의 신전은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쓸쓸하기 그지없게 돼버렸다. 미의 여신이 이런 모욕을 당하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모욕을 느낀 여자의 무기는 오직 복수하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프쉬케의 아름다움과 비너스 여신의 분노를 잘 표현한 그림을 영국의 화가 로드 레이톤(Lord Fredric Leithon, 1830-1896)이 그린 ‘목욕하는 프쉬케(1830)’다. 프쉬케의 아름다운 몸매와 그 뒷면의 검은 휘장 아래의 두 마리의 비둘기가 보이는데, 비둘기는 비너스의 신조(神鳥)인데 비너스의 질투와 분노를 시사하는 것으로 프쉬케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여신은 자기 아들 에로스를 불러서 명령하기를 “네 화살로 프쉬케를 쏘아서, 이 세상에서 가장 못 생긴 남자를 연모하도록 만들어라”고 일렀다. 알다시피 에로스의 화살에 맞은 사람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에로스는 어머니의 분부대로 프쉬케를 쏘러 그녀를 찾아갔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그만 그 황홀한 미모에 홀딱 반해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화살로 자기 가슴을 찌르고 말았다. 그 결과 사랑의 신이 프쉬케를 연모하게 되어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한편 프쉬케의 두 언니들은 행복한 결혼을 해서 왕비가 되었건만 아름다운 프쉬케만은 누구하나 청혼하는 이가 없었다. 그것은 에로스가 사랑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쏘지 않기 때문이다. 노처녀가 되어가는 아름다운 딸을 안타깝게 생각한 아버지는 아폴론 신에게 신탁을 청했는데 그 내린 내용을 보니, 『네 딸에게 예복을 입혀서 바위산 꼭대기에 혼자 두면 누군가가 데리고 갈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몸에 날개가 달린 무서운 뱀이니라』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상사병에 걸린 에로스가 미리 아폴론 신에게 도움을 청해 두었기 때문에 내려진 신탁의 내용이었다.

▲ 그림 2. 부그로 작: ‘프쉬케와 에로스’,1889, 타스마니아, 타스마니아 아트 갤러리
▲ 그림 2. 부그로 작: ‘프쉬케와 에로스’,1889, 타스마니아, 타스마니아 아트 갤러리

신탁의 명령에 따라 프쉬케는 죽음의 신부로서 음산한 치장을 한 채로 산의 정상에 버려졌다. 산위에 홀로 누워있는 프쉬케의 주위에는 어느덧 땅거미가 지더니 이내 어두워져버렸다. 모든 것을 단념했다지만, 눈물만을 흘리면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프쉬케는 별안간 아주 기분 좋은 서풍이 불어옴을 느끼자마자 몸이 가볍게 하늘로 기분 좋게 떠 올라감을 느꼈다. 에로스가 품에 안은 것이다. 이 장면을 그림으로 한 것이 화가 부그로(Adolphe William Bouguereau, 1825-1905)가 그린 ‘프쉬케와 에로스(1889)’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과 더불어 에로스가 프쉬케를 가슴에 안고 하늘로 오르는 장면인데 프쉬케는 탈진된 상태에서 자기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면 황홀해서 무아지경에 빠진 것도 같다. 에로스는 자기의 소원대로 프쉬케를 얻었으니 만족과 기쁨에 찬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다.

프쉬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향기로운 꽃바람이 불어오는 푹신한 풀밭 위에 몸이 눕혀져 있었다. 짙은 화평의 분위기가 가득 차 있어 불안이나 공포는 가신 듯이 사라졌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품었는데, 처음 느껴본 황홀감에 도취되었다 싶더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는 환한 아침이었다. 살펴보니 맑은 시내가 흐르는 꽃동산 위에는 눈부시게 화려한 큰 성이 서 있는데,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제부터는 이 성이 프쉬케님의 집이고 저희들은 모두 당신의 종들입니다”하고는 길을 안내하는 것이었다. 청하는 대로 따라 들어갔더니 성 안에는 호화로운 가구가 찼고 음악이 흘러나오고 식탁에는 산해지미가 차려져 있건만 사람은 볼 수 없었다.

▲ 그림 3. 카노바 작: ‘아모오르와 프쉬케’, 1793, 파리, 루브르 박물관
▲ 그림 3. 카노바 작: ‘아모오르와 프쉬케’, 1793, 파리, 루브르 박물관

밤마다 에로스는 찾아와서 동침하지만, 눈뜨기 전엔 이미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프쉬케는 행복하기만 했다. 이렇게 행복한 두 남녀의 모습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 조각가 카노바(Antonio Canova )의 작품 ‘아모오르와 프쉬케(1793)’이다. 두 남녀가 포옹으로 사랑을 표현했으며 지극히 행복한 정도를 강직된 아모오르의 날개의 높이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한편 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던 언니들이 프쉬케를 찾아왔다가, 동생이 잘 된 것을 보고 시기한 언니들은 “네 남편은 필경 괴물일 테니, 잠자고 있는 틈에 등잔불로 비추어 보아서 괴물이면 단도로 찔러 죽여라”고 충동질하는 바람에 마음 약한 프쉬케는 남편이 절대로 자기 얼굴만은 보지 말아달라고 그렇게도 타이르던 것을 잊어버리고 등잔불을 들고서, 한손에는 단도를 쥔 채 자고 있는 남편을 내려다보니, 괴물이기는커녕 꽃미남 에로스였다. 너무 황홀해서 그만 들고 있던 등잔불의 기름을 쏟았고, 그 뜨거운 기름에 에로스는 몸에 화상을 입었다. 놀라 잠에서 깬 남편은 “어리석은 여인이여, 이제 마지막이로다”라는 말만 남기고 창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이리하여 프쉬케는 남편을 찾아 방랑길로 나선다.

▲ 그림 4. 그림 3의 부분 확대
▲ 그림 4. 그림 3의 부분 확대

프시케는 절망적으로 남편을 찾아다니다가 비너스의 성에 있는 궁중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녀 한명이 그녀를 붙잡아 여신 앞으로 끌고 갔다. 프쉬케를 본 여신은 소리 쳤다. “네가 앞으로 내 며느리가 되려면 이제부터 내가 주는 네 가지 과제를 하여야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죽음만이 너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물음에 프쉬케는 무슨 과제이건 간에 하겠다고 대답하자 여신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하루 사이에 산더미 같이 쌓인 여러 가지 곡물이 섞인 것을 보리, 조, 수수 등의 종류로 나눠 놓을 것’, ‘난폭한 수산양의 황금 털을 깎아올 것’, ‘생명수 샘에 가서 생명수를 받아 올 것’, ‘저승의 왕비 베르세보네에게 가서 미의 상자를 받아 올 것’ 등 도저히 불가능한 시련과제를 내렸다. 그리고 프쉬케는 이 불가능한 과제를 어디선가 전해오는 기적 같은 도움으로 완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말할 수 없이 힘들어 고민 끝에 미칠 지경에 달하건 했다. 물론 프쉬케라는 말이 정신, 혼, 나비 등의 의미로 지니지만 정신병을 Phsycosis라고 하게 된 것은 프쉬케의 미칠 듯한 고뇌에서 유래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