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의료기관은 수사기관의 자료제출 요청에 응할 의무가 있는가?

  • 입력 2018.04.17 10:33
  • 기자명 임원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A의사는 12세인 B를 진료하면서 아버지 C의 상담을 함께 진행하였고, 그 내용을 B의 진료기록에 기재하여 보관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경찰로부터 “C의 B에 대한 폭행 및 성추행 사건 조사를 위하여 B의 진료기록과 C의 상담기록을 제출해 달라”는 업무협조 공문을 받았다. B의 진료기록과 C의 상담기록, A의사는 환자의 동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자료를 경찰서에 제출해야 의무가 있을까.

의료기관의 자문을 하다보면, 위 사례와 같이 수사기관으로부터 환자의 진료기록 제출을 요청하는 공문을 받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찰, 검찰 뿐만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 보건복지부와 같은 관련 행정청으로부터 조사를 위하여 환자의 진료기록을 제공하라는 협조공문을 받으면 누구라도 ‘국가가 하는 일인데 협조해야 하나, 협조 안하면 나중에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의료법 제21조는 환자 본인이 자신의 진료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권리와 의료인으로 하여금 환자 개인의 진료정보를 엄격히 보호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3자에 대한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발급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나, 법령이 정한 일정 범위의 자가 환자의 동의를 얻은 경우, 공익 목적 실현을 위한 급여심사, 압수수색 영장 등 구체적으로 명시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특히 동항 제6호에 따라 법원의 명령, 압수수색 영장 이외에 보관자의 “임의제출”이 가능한바, 수사기관은 이를 근거로 의료기관이 환자의 진료기록을 임의제출 하도록 업무협조 요청 공문을 송부하여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료인은 수사기관으로부터 일반적인 공문형태의 수사 협조 요청을 받더라도 그 요청에 응할 의무는 없다. 환자의 동의 없는 제3자에 대한 진료기록 사본 발급은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인데, 예외 사유 중 하나인 ‘보관자의 임의제출’은 말 그대로 보관자의 의지에 의한 제출이기 때문이다. 즉, 진료기록 사본 제공에 따르는 공익과 사익의 이익형량을 의료인 스스로 판단하여 공익을 위해 임의로 진료기록 사본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해당 환자의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될 우려가 있는지를 검토하여야 하고, 수사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만 제출하는 등 환자의 건강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내역은 되도록 제출하지 아니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위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동의 없이 진료기록 사본을 임의로 제출하는 경우, 처벌 및 의사 자격정지 처분 등 법적 위험을 부담할 수 있으므로 의료기관은 되도록 의료법 상 당사자의 동의 원칙을 준수하여 진료기록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위 사례에서 A의사는 원칙적으로 C의 동의 없이 C의 상담기록이나 B의 진료기록을 제출할 의무는 없다 할 것이다.

□ 한편, 일반적으로 행위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미성년자인 B가 동의하면, A의사는 B의 진료기록을 제3자인 경찰 또는 B에게 사본발급이 가능할까.

답은 ‘B의 동의만 있어도 진료기록의 열람 및 사본 발급이 가능하다.’이다. 의료법 및 동법 시행규칙에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 발급’을 미성년자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예외적 법률행위로 규정된 바는 없지만, 최근 보건복지부가 ‘14세 미만 미성년자도 의사능력이 있으면 단독 발급이 가능하다.’고 유권해석의 내용을 변경한 것에 근거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의사능력이란, ‘자신의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정상적인 인식력과 예기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의미한다. 의사능력은 구체적 법률행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는데, 본인의 진료기록을 열람하거나 사본을 발급받는 행위는 미성년자의 정신 능력으로도 합리적 판단 하에 단독으로 할 수 있는 법률행위로 해석한 것이다. 위 사례에서 B는 신분증(학생증, 여권 등) 또는 가족관계증명서 및 주민등록등초본 등으로 본인임이 확인되면, 보호자인 C의 동의가 없더라도 A로부터 자신의 진료기록을 열람 또는 발급받거나, 경찰에 자신의 진료기록을 제출하도록 A에게 동의해줄 수도 있다.
 
진료기록은 환자의 건강상태, 신체적 특징, 병력 등 민감정보가 포함되어 있어 진료기록이 유출되는 경우 환자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와 더불어 2차적 피해가 가능하다. 의료법이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발급을 위한 요건을 엄격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한 목적은 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진료기록의 작성 및 보관자인 의료인은 환자뿐만 아니라 의료인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법령에 명시된 예외 사유 이외에는 진료기록을 유출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 수사기관은 법령 상 예외적 사유 외에는 의료기관에 진료기록 제공 요청을 자제함이 타당할 것이나, 의료인으로서도 공익을 위하여 진료기록 제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임의로 제출해야 할 경우 또는 진료기록 대신 환자에 대한 질의에 답변이 필요할 경우, 그 내용에 따라서는 환자의 정보가 노출되어 의료법이 규정한 의료인의 비밀유지 및 진료기록 열람 조항에 위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법률전문가와의 상담을 거쳐서 매우 신중하게 답변을 결정함이 적절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