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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인간애와 간의 재생

  • 입력 2018.04.19 13:44
  • 기자명 문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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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코지모 작: ‘프로메테우스 이야기’(1510-11), 뮨헨, 아르테 피나코크
▲ 그림 1. 코지모 작: ‘프로메테우스 이야기’(1510-11), 뮨헨, 아르테 피나코크

[엠디저널]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티탄신족인 이아베토스(Iapetus)와 대양신 오케아노스(Oceanus)의 딸 클리메네(Clymene) 사이에서 출생된 티탄족계의 신이다. 신들 중에서 가장 고결하고 공평한 생각을 하는 신으로 예견을 잘 하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으로 원래 prometheus란 앞을 잘 내다보는 ‘예견자’라는 의미로써 그는 티탄족 신과 올림포스 신들과의 전쟁 때도 올림포스 신들의 승리를 예견하고 제우스신을 도와 자기의 티탄족과 싸워서 올림포스 신들을 승리로 전쟁을 끝마침에 따라 제우스의 호감을 사게 되었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땅의 흙에다 물을 섞어 이를 이겨 신의 형상과 비슷한 인간을 만들고 인간에게 직립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하였다. 그 덕택에 다른 동물들은 고개를 숙이고 네발로 걷는데 사람만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두발로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화가는 코지모(Piero di Cosimo 1462~1521)로서 ‘프로메테우스 이야기(1510~11)’라는 그림이 있다. 그림의 중앙의 단상에는 이미 완성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조각가와 같은 작업을 하면서 다른 인간을 또 만들고 있으며 프로메테우스는 자기의 창조물인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 사람들에게 불을 주어 그 생활에 편리를 도모하였다.

인간이 올림포스의 산에서 신들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가 허용되었던 시대에 프로메테우스는 식사분배를 담당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잡은 소를 분배하는데 있어서 소고기를 둘로 나누는데 한쪽에는 소뼈에다 기름이 섞인 고기를 씌워서 먹음직하게 보이게 하고, 한쪽에는 소의 밥주머니에다 살코기와 내장을 넣었다. 원래 신들은 내장 따위는 먹지 않는다는 속성을 잘 알기 때문에 한 짓이었다.

그리고는 제우스에게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를 물었다. 제우스는 내막도 모르고 뼈가 든 소고기 쪽을 택했다. 그러자 맛있는 소고기와 내장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미워하게 되었으며, 화풀이로 사람들이 사용하든 불(火)을 몰수하여 사람들은 불을 사용할 수 없게 하였다.

▲ 그림 2. 코시에스 작: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 그림 2. 코시에스 작: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불이 없는 생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가엾이 여긴 프로메테우스는 레무노스 섬의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몰래 훔쳐서 사람들에게 주었다. 이 장면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 화가 코시에스(Jan Cossies 1600 ~71)가 그린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준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는 대발 노발하여 헤파이스토스에게 미녀 판도라(Pandora)를 만들게 하여 지상으로 보내 인간들에게 재난을 안겨 주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은 제우스는 대홍수를 나게 하여 인류를 멸망시키려 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프로메테우스는 미리 배를 만들게 하여 두 사람만은 살아 남게 하였다.

그래서 제우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도 불사신이기 때문에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그를 잡아다 항상 심한 눈보라가 치는 카우카소스 산 산정에다 쇠사슬로 결박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해놓고 큰 독수리로 하여금 그의 간을 쪼아 먹게 하였다. 즉 낮에 독수리가 와서 간을 쪼아 먹고 가면 밤사이에 간이 재생되어 원상태로 되면 다음날 또 독수리가 와서 간을 먹는 것이 반복되어 프로메테우스를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형벌에 처하였다.

▲그림 3. 모로 작: ‘프로메테우스’(1868), 파리, 구스타브 모로 미술관
▲그림 3. 모로 작: ‘프로메테우스’(1868), 파리, 구스타브 모로 미술관

프랑스의 화가 모로(Gustave Maureau 1826~1898)는 ‘프로메테우스(1868)’라는 주제의 그림에서 결박되어 저항하거나 피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독수리가 다가와 그의 간을 쪼아 먹고 있다. 그의 표정으로 보아 매일같이 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체념한 듯이 보이고 독수리는 당연한 듯이 천연스럽게 간을 먹고 있다. 한편 프로메테우스는 자기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한탄하는 듯이 보이기는 하나 결코 인간에 대한 자기 처사를 후회하는 것 같지는 않는 듯이 보인다.

▲ 그림 4. 루벤스 작: ‘쇠사슬에 묶여 있는 프로테우스’(1610-11), 펜실베이아, 필라델피아 미술관
▲ 그림 4. 루벤스 작: ‘쇠사슬에 묶여 있는 프로테우스’(1610-11), 펜실베이아, 필라델피아 미술관

이 장면을 좀 더 박진감 있게 표현한 것이 화가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10)가 그린 ‘쇠사슬에 묶여 있는 프로테우스(1610~11)’이다. 이 그림의 독수리는 사납게도 프로메테우스의 얼굴을 발톱으로 누르고 날개를 펴면서 즐거운 듯이 간을 파먹고 있는데, 이 그림의 프로메테우스의 고통은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여기서 새겨 보아야 할 문제는 사람의 간을 낮에 독수리가 파먹으면 밤에는 사람의 간이 재생된다는 대목이다. 신화를 만든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쓴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제우스가 전지전능하여 사람의 간은 재생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처형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화 속의 이야기는 허구처럼 보이나 실제로 사람의 간은 재생된다.

이에 대한 것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사람의 조직세포는 그 재생능력에 따라 세 종류로 구분된다. 우선 불안전세포(不安全細胞 labile cells)군이라 하여 파괴와 재생이 생리적으로 항상 이루어지는 세포군이 있는데 주로 몸의 외부나 내부를 덥고 있는 상피세포(上皮細胞) 등이 이에 속하는데 우리 몸에 때를 밀어도 계속해서 때가 끼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안전세포(安全細胞 stable cells)군이라 해서 사춘기를 지나면 증식력이 없어지지만 적당한 자극이 가하여지면 핵분열을 일으켜 증식이 일어나며 손상된 세포의 보충이 가능한 세포로서 예를 들면 간, 췌, 타액선, 골아세포(骨芽細胞) 등이 이에 속한다. 즉 어른이 되면 증식력이 떨어지지만 어떤 자극이 가해지면, 예를 들어 프로메테우스의 경우와 같이 독수리가 간을 쪼아서 간에 손상이 가해지는 경우는 이때까지 증식이 정지되어 있던 간세포에 증식력이 다시 부활되어 간이 원형대로 회복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구세포(永久細胞 permanent cells)군이라 해서 이 군에 속하는 세포는 일단 출생 후에는 재생능력이 없어지는 것으로, 따라서 이 군에 속하는 세포는 한번 망가지면 그것으로 끝이며 재생은 전연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신경세포 등이 이 군에 속하게 된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에게 독수리로 하여금 간을 쪼아 먹게 한 형벌을 내렸다는 것은, 즉 낮에 독수리로 하여금 간을 먹게 하면 밤사이에 간이 재생되어 다시금 독수리가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옛사람들이 이를 알고 이런 신화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외형으로 보면 신화이기 때문에 간을 먹게 하는 처형은 허구성이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 이는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것이다. 물론 간이 하룻밤 사이에 완전하게 복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근래에 와서는 아들의 간의 일부를 병든 아버지에게 떼어주는 것과 같은 효성어린 기사가 보도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산정에 결박되어 독수리로부터 수난을 당하던 프로메테우스가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쏘아 떨어뜨리고 쇠사슬을 끊어줌으로써 프로메테우스는 해방이 된다. 헤라클레스가 누구인가, 바로 제우스의 아들이 아닌가. 헤라클레스가 독단적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시켜서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만일 독단적으로 한 것이라면 후에 제우스에게 보고하여 이를 납득시켰을 것이고 아니면 제우스가 은밀히 지시하여 프로메테우스를 살려낸 것일 것이다.

또 일설에는 헤라클레스를 영광된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취하여진 처사라고 하는 이도 있다. 비록 프로메테우스가 고통스러운 처형에서는 벗어났지만 신이 일단 내린 벌로써의 책고는 면할 수 없기 때문에 프로메테우스에게는 그를 결박했던 쇠사슬의 일부와 바위를 깎아 만든 형벌의 상징으로써의 반지를 만들어 끼게 하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