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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순간) 집중을 통한 생각 다스리기Ⅱ

  • 입력 2018.05.13 10:53
  • 수정 2018.05.18 12:10
  • 기자명 전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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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스스로 자기를 보게 하는 치료
나는 미얀마에서 한 달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후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계속 몇 년 간 순간순간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의 본질과 몸과 마음의 관계 등을 포함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몸과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세상의 이치’처럼 나의 이러한 경험도 일반사람이나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환자는 순간순간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환자들이 치료를 통해 자신의 문제도 이해하고, 인생에 대한 통찰도 얻었지만, 그것을 실제 생활에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2003년 미얀마에서 한 달 수행을 하고 귀국하기 전에 미얀마에 있는 쉐우민 수행센터의 우 떼자니아 스님을 찾아가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대답은 ‘환자 스스로 자기를 보게끔 도와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대답을 듣고, 지금까지 물론 정신치료자로서 환자들과 같이 항상 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알게끔 도와주는 일을 해왔지만, 환자 스스로 자기를 보게끔 하는 데 초점이 가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치료의 초점을 환자가 스스로 볼 수 있는데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스님의 말도 나로 하여금 환자 스스로 자신을 관찰하고 자신을 다스리게끔 하는 방법인 ‘생각을 다스리는 법’을 개발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제 이 ‘생각을 다스리는 법’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은 정신입니다. 먼저 몸부터 살펴보면, 몸은 자연현상처럼 그대로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관찰해 보면 몸은 그냥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몸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생명 유지를 위해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입니다. 

손은 그저 그렇게 있습니다. 손으로 밥을 하게 하거나, 남을 돕게 하거나, 남을 때리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발이나 다리도 그냥 있습니다. 도서관에 가게 하거나, 술집에 가게 하거나, 남을 차게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눈도 그냥 있습니다. 남을 사랑스럽게 보게 하거나 째려보게 하는 것도 마음입니다. 위(胃)도 음식이 들어오면 소화를 시킵니다. 나쁜 음식이 들어오면 소화가 안 됩니다. 그에 대해 편안히 받아들일 수도 있고 불안해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마음이 중요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해 보면 우리의 의도 없이는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마음이 우리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어되지 않음 품](양굿따라 니까야 제1권 81~83쪽)에서 붓다는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제어되지 않고, 보호되지 않고, 지켜지지 않고, 단속되지 않아 큰 해로움을 가져오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비구들이여, 제어되지 않고, 보호되지 않고, 지켜지지 않고, 단속되지 않은 마음은 큰 해로움으로 인도한다.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제어되고, 보호되고, 지켜지고, 단속되어 큰 이로움을 가져오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비구들이여, 제어되고, 보호되고, 지켜지고, 단속된 마음은 큰 이로움으로 인도한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마음의 속성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은 여러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내가 볼 때 마음은 크게 두 가지 중요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마음은 언제나 어딘가 가 있는 곳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디 가 있지 않은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도 한 번에 한 곳만을 갑니다. 마치 등대가 밤이 되어 불을 켜면 항상 어딘가를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등대는 한 번에 한 곳을 비춥니다. 등대와 우리 마음의 차이는 등대는 날이 밝아지면 불을 비출 필요가 없어 불을 끄지만 마음은 항상 죽을 때가지 작용을 하면서 어딘가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항상 불이 켜져 있는 등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우리 몸은 등대이고 등대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은 마음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마음은 항상 작용하고, 어딘가 한 곳에 가서 그곳의 영향을 받습니다. 마음이 가 있는 대상을 크게 나누면 건전한 대상과 불건전한 대상입니다. 마음이 가 있는 곳이 건전한 곳이면 우리는 편안하고 행복하고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마음이 가 있는 곳이 불건전한 곳이면 우리는 괴롭고 불행하고 정신이 불건강해집니다.

둘째, 마음이 어떤 대상으로 자꾸 가면 그곳으로 길이 난다는 사실입니다. 
건전한 대상으로든 불건전한 대상으로든 어느 쪽이든 많이 간 쪽으로 자꾸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붓다도 [두 갈래 사유이 경](맛지마 니까야 제1권 394쪽)에서 “비구들이여, 비구가 자주 사유하고 숙고한 것은 무엇이든지 점차 마음의 경향이 된다. 그가 자주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해 사유하고 숙고하면, 그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읜 사유를 버리게 되고,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사유를 계발시켜서, 그의 마음은 감각적 쾌락이 욕망의 사유로 향하게 된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생각을 자꾸 하면 경향이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어떤 것을 여러 번 반복해서 하면, 마음이 그것을 하려고 하는 쪽으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왜 이러한 원리로 움직이나 하는 것은, 나중에 내 경험을 통해 설명하겠습니다. 수행을 해 본 사람들은 마음을 어느 대상으로 자꾸 향하면 길이 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수행의 대상에 집중한다는 것이 힘들지만 자꾸 집중하면 나중에는 쉽게 집중이 되고, 아주 많이 하면 자동으로 집중이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건전한 대상에 마음이 자꾸 가면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불건전한 대상으로 가게 됩니다. 꼭 수행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하는 행동이나 생각을 유심히 관찰하면 이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친한 친구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는데 대학에 실패하여 재수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둑을 두러 기원에 자주 갔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다른 친한 친구와 함께 그 친구를 만나 ‘내일은 꼭 도서관에 가라’고 했고 그 친구도 그러겠다고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 친구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도서관에 간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도착한 곳은 기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기원으로 길이 잘 나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 존재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고, 마음은 두 가지 속성에 따라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결론이 납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속성이 어딘가에는 가 있어야 하고, 또 자꾸 간 쪽으로 길이 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고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 마음을 건전한 대상으로 향하게 하는 길만이 우리가 갈 길입니다. 그 길만이 우리가 원하는 길입니다. 다른 길은 우리가 원하는 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제 건전한 대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불건전한 대상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곳으로 가고, 불건전한 곳으로는 안 갈 수 있습니다. 건전한 대상과 불건전한 대상에 대한 분류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