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OPINION 전문가 칼럼 심찬섭
내시경 개발과 발달의 역사 II

[엠디저널]Desormeaux 내시경의 원제품은 파리에 위치한 Rene Descartes 대학의 의학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다른 모델은 비엔나 그리고 로마에 위치한 의학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림 1)

▲그림 1. Desormeaux의 내시경 복제품

Kussmaul’s 내시경
그 당시 첫 식도, 위 내시경 검사는 칼을 삼키는 곡예사를 자세히 관찰하고 얻은 Kussmual의 아이디어로 시도되었다. 칼을 삼키는 곡예사들은 머리와 목이 극도로 확장되면 단단한 튜브가 위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100년이 지난 얼마전 까지만 해도 직업 삼아 칼을 삼키는 곡예사들을 우리나라의 시골장터에 가면 볼 수 있었다. (그림 2)

▲그림 2. 칼을 삼키는 곡예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로마로 거슬러오라간다. "Metamorphoses"신화에 따르면 Apuleius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시장에서 곡예를 선보인 인물로 설명되어 있다. 이 장면은 관중들 사이에서 칼을 삼키는 곡예를 선보이는 모습이다.

비엔나에 위치한 장비 제조사인 Leiter는 칼을 삼키는 곡예사들에게 단단한 고무 막대를 삼켜 위까지 넣는 시범을 선보여 달라고 설득했다. 칼을 삼키는 곡예는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Apuleius는 아테네 Stoa Poikile에서 어떤 남자가 가능한 깊숙이 칼을 삼키고는 돈을 요구하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 하고 있다. 
Kussmaul이 Desormeaux 내시경을 알고난 후, 그의 조수인 Adolf Honsell를 파리로 보내어 내시경에 대해 공부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을 때, Kussmaul은 길이가 47cm에 지름이 1.5cm인 단단하고 곧은 빈 금속 파이프를 만들었다. 주된 문제는 어두운 장기 안을 밝힐 만큼의 빛이 파이프 맨 끝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였다. Freiburg 출신 Fischer가 만든 조명장치는 프랑스 임상의의 조명장치와 매우 유사하였다. 불행하게도, 튜브 속으로 반사된 빛은 너무 약하였다. 처음에는 등유 램프(paraffin lamp)를 사용했지만 석유 램프로 교체했고 최종적으로는 Desormeaux 의 gazogene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 장비들을 이용해도 긴 튜브로 위를 검사할 수 있을 만큼의 빛이 충분하지 않았다. Kussmaul 위내시경은 시야가 점액분비와 위 내용물 때문에 가려져 위점막 부분들만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1868년에 Kussmaul은 짧은 장비(그림 3)로 식도내시경검사를 시행하였고 그 당시 식도암을 진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림 3. Kussmaul 위내시경은 각각 밀폐장치가 장착되어 있다.

Kussmaul과 그의 팀이 이용한 장비들은 그들이 Freiburg 대학을 떠나고 꽤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으며, 30년이 지난 뒤에야 Killian이 조명장치의 결함을 스스로 알아내었다.
1876년에 Kussmaul은 Strasbourg로 이동하였고 그의 조수인 Arnold, Cahn 그리고 Eugen Ponsgen에게 다시 위내시경검사를 시행하자고 제안하였다. Cahn에 의하면 그들이 사용한 식도내시경은 완벽하게 곧은 튜브였다면 1881년부터 1882년까지 생산된 위내시경은 튜브가 살짝 구부려져 있고 그 안에 빛의 방향 조절을 위해 프리즘이 장착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림 4)

▲그림 4. Kussmaul이 경성 위내시경을 삽입하고 있는 모습. 초창기의 검사시간동안 환자는 앉아서, 나중에는 눕혀서 시행하였다.

Kussmaul은 그의 내시경 경험에 대해 결코 출판 또는 게재한적은 없으며 1870년에 Freiburg에 위치한 “Society for nature research”에서 구두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가 발표한 내용들은 의학보고서에 종종 위내시경에 관한 첫 보고서로 인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본문이 아닌 제목만 출판되었다고 한다. Kussmaul은 위내시경검사 시범설명을 할때 칼을 삼키는 곡예사들을 초대하였다고 한다.
빛의 도래는 미래의 내시경 전망을 더욱 넓혔다. 1882년에 Joseph Leiter는 Freiburg에 있는 Kussmaul을 방문해 그가 외과의사인 Mikulicz와 함께 만든 여러 식도, 위내시경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보여드려 의견을 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 후 Leiter는 Mikulicz 내시경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Kussmaul의 가장 큰 공헌은 단단하고 곧은 튜브가 큰 어려움 없이 위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였다는 것이다. Seydl에 의하면, Kussmaul이 정확한 위내시경을 만들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는 오직 식도내시경 검사의 아버지이고, 위내시경의 아버지는 정확한 장비로 위내시경 검사를 이끈 Mikulicz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Kussmaul의 노력에도 처음으로 식도와 위 검사 목적으로 장비를 만든 인물은 Max Nitze와 Joseph Leiter이다. 1879년에 Leiter는 Nitze가 시험한 광학렌즈 바탕으로 식도, 위내시경을 만들었다. 장비는 오른쪽으로 구부려져 있고 유연한 끝부분과 단단한 중심부로 나눠져 있다. 장비의 끝은 랍스터의 꼬리처럼 금속으로 부분적으로 나눠져 있으며 삽입되었을 때 인두에 위치하도록 중심부와 연결 되어있었다. 장비가 오른쪽으로 구부려져 있어 시야가 뚜렷하지 못하였다. 그래서인지 이 장비는 평판이 좋지 않았고 사실상 이용되지 않았다. Kussmaul, Trouve 그리고 Nitze-Leiter의 내시경들 중 실용적인 장비는 없었으며 조명장치도 부실하였다. 조명을 사용하려면 부피가 매우 큰 건전지로 작동시켜야 하며 오래 사용할 땐 중간에 쉬어줘야 하였다. 

Thomas Alva Edison (1847-1931)의 백열등 전구 (Incandescent Lamp)
1879년에 Thomas Alva Edison이 첫 백열등 전구를 발명하였다. 조명장치는 진공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유리전구로 만들어져 있다. 그 후로 얼마 뒤 “Mignon lamp”라는 작은 크기의 전구가 생산되었고 내시경 끝부분에 장착되었다.7 1887년에 Nitze와 Leiter는 각각 백열등 전구가 장착된 방광경을 소개했다. 시간이 지나 Nitze는 Mignon lamp가 장착된 식도경과 위내시경을 제작하였고 Leiter 또한 자기만의 장비들을 생산하였다. 끝부분이 오른쪽으로 구부려져 있는 Nitze-Leiter 내시경은 사용하기 매우 어려웠다. Nitze가 그의 장비를 처음으로 위내시경이라 부르고 그 장비로 사체와 환자들에게 시험해 보았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하였다. 그 후 Nitze는 소화기 내시경에 흥미를 잃고 그의 시간과 정성을 비뇨기학에 쏟았다.  
이때쯤 식도경과 위내시경은 두 길로 나눠졌다. 식도경은 이물질을 제거하거나 협착된 부위를 확장할 때 사용되는 장치, 위내시경은 진단할 때만 사용하는 시각장치로 분류되었다. 그 외 내시경은 다양한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초창기 때는 위내시경은 소화기외과와 소화기내과의 영역이 되었다  

G. Trouve의 Polyscope(The polyscope of Gustave Trouve (1838-1902))  

▲그림 5. 다양한 내시경 치료를 위해 프랑스, 독일 의사들이 주로 사용하였다.

▲그림 6. 이미지를 반사하여 더욱 더 또렷하게 보기 위해 Trouve의 Polyscope의 끝부분에 프리즘이 장착되어 있다.
▲그림 7. Trouve의 Polyscope를 위해 프랑스의 물리학자 Gaston Plante가 고안한 가감저항기와 건전지.

이것들은 매우 크고 무거워 다루기 어려웠지만 빛을 만들어내는 힘이 충분했고 과열되지 않았다. (그림 5, 6, 7)

Mikulicz 위내시경
1881년 10월 29일, 그때 당시 제일 알려지고 명망 있는 학술지인 Centralblatt fu¨r chirurgie에 von Mikulicz가 식도경과 위내시경에 관한 논문을 개재하였다. 이 영향력이 큰 논문에 처음으로 사람에게 위내시경 검사를 한 결과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Mikulicz도 칼을 삼키는 곡예사들을 연구하고 위내시경 시제품을 사체에 시험해보기도 하였다. 1881년 4월 그는 드디어 그의 내시경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시도해 보았다.
Mikulicz는 Nitze-Leiter의 방광경의 원리를 유지했고 내시경 끝에 작은 플래티넘 전구가 장착되어 있어 물을 이용해 냉각시켜야 했다. 
Mikulicz의 위내시경은 길이 65cm에 지름 14mm 이고, Nitze-Leiter의 방광경보다는 부피가 크지만 매우 유사하였다. 이 장비는 절연발전기(insulated current generator)과 연결되어 있다. 내시경에 부착된 세개의 튜브들 중 얇은 튜브는 공기 주입을 위해 그리고 또 다른 튜브는 냉각을 위해 물세척(water irrigation)과 연결되어 있다. 나머지 하나는 조명 장치의 전선에 연결되어 있다. 내시경 끝이 살짝 기울여져 있는 부분에는 공기유입을 위한 구멍과 빛을 제공하는 플래티넘 필라멘트를 보호할 유리 막이 있고 시야를 넓혀줄 조그마한 프리즘이 삽입되어 있었다. 이 장비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1880년에 출판된 Leiter의 “Elektrooptische Instrumente (내시경 기구)”라는 카탈로그에 적혀 있다고 한다. (그림 8)

▲그림 8. 비엔나에서 Leiter가 만든 Mikulicz의 위내시경

내시경 원위부 각은 흉추의 굽은 각도에 적응하여 만들어 졌다. Mikulicz는 완벽하게 곧은 튜브는 분문(cardia)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사체를 공부한 뒤, 그는 끝이 살짝 굽은 튜브가 위, 식도에 삽입하기에 가장 적합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시경을 삽입한 뒤 돌리고, 밀고 당기면서 위의 대부분을 검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내시경으로는 180도로만 돌릴 수 있었다. 그래서 Leiter는 두 개의 장비로 하나는 위의 왼쪽 부분을, 또 다른 하나는 위의 오른쪽 부분을 확인하여 위의 모든 부분을 검사할 수 있도록 쌍둥이 내시경을 만들었다. Mikulicz는 처음에 환자를 앉혀놓고 내시경 검사를 시행하였고 환자는 타액분비가 힘들어져 헛구역질을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후 여러 자세로 검사를 시행하여 알아낸 가장 적합한 자세는 환자를 양와위로 눕히고 내시경이 삽입되기 쉽게끔 목을 최대한 늘리는 자세이다. (그림 9)

▲그림 9. Mikulicz가 내시경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하는 자세. 환자는 양와위 자세로 눕고 목을 최대한 늘리고 있다.

Mikulicz는 검사 전에 위세척을 처방하였다. 물이 차있는 위를 내시경으로 압력을 가하면 위가 팽창되며 환자가 구토하는 증상을 막기 위함이었다. 어쨌든 공기 주입은 환자가 잘 견디어 냈고 검사는 잘 수행하게 되었다. 그는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전신마취는 위험하다고 생각하여 4% 모르핀을 이용해 검사시간 15분 동안 환자를 얕은 진정상태로만 유지시켰다. 식도내시경검사를 실시할 때도 똑같은 처방을 내렸다. Mikulicz는 오직 필요한 것만 연습하여 숙련된 기술을 익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참고문헌
1) Kluge F. Adolf Kussmaul (1822-1902). Einr biographische Skizze. Freiburg, Falk Foundation. 5 Auflage, 1996
2) Killian G. Zur Geschichte der Oesophago und Gastroskopie. Deutsch Zeitschrift fur Chirurgie 1901; 58:499-512
3) Reuter M. A. Geschichte der Endoskopie. Band 1-4, Stuttgart-Zurich, Karl Kramer Verlag, 1998
4) Schindler R. Gastroscopy: the endoscopic study of gastric pathology. (2a edition) New York, Hafner Publishing Company, 1966
5) Kuumaul A. Uber Magenspiegelung. Ber. D. Naturforsch Gesellschaft, Frieburg 1868; 5:112
6) Trouve G. das Polyskop, ein neuer galvanischer Universal-Beleuchtungs und Kauterisations Apparat. Illustr. Viertel Jahrschr der artzl. Polytech (Bern) 1880; 2, no 24, 68-72
7) Leiter J. Elektroendoskopische Instrumente. Wien, W. Braumuller und Sohn, 1880. Drs. H. J. Reuter and M. Reuter, Max-Nitze Museum, 1985
8) Neumann H. A., Hellwig A. Von Schwertschlucker zur Glasfiberoptik. Die Geschichte der Gastroscopie. Munchen, Urban & Vogel, 2001
9) Gottstein G. Gastroskopie. In Abderhalden E. Handbuch der biologischen Arbeitsmethoden. Abt. IV. Teil 6. Verdauungsapparat. Berlin, Urban & Schwarzenberg 1926.
10) Mikulicz J. Uber Gastroskopie und Oesophagoskopie. Centralbl f. Chirurgie 1881; 43:673-676
11) Mikulicz v. J. Uber Gastroskopie. Wien med Presse 1881; 22: 1410, 1439, 1473, 1505, 1537, 1629.
12) Huizenga E. On esophagoscopy and sword swallowing. Ann Otology 1969; 78: 32-39

심찬섭  emd@mdjournal.net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심찬섭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