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이들이 청취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특히 아들이 즐겨 듣는 ‘KROQ’채널을. 록 음악도 몇 번 듣다보면 생각보다는 덜 거슬린다. 그런데 음악 사이로 진행자들이 툭툭 내뱉는 말들이 가끔은 더 재미있다.
“일본여행을 떠난다면서? 그곳에 아주 재미있는 ‘사람들 미는자’(People Pusher)라는 직업이 있는 것 아니? 전철 안으로 승객들을 밀어 넣어서 더 많이 손님을 태우는 직업이야.”
“와! 그거 신나겠네. 옆에 여자와 맞닿을 수 있으니….”
다른 젊은이의 환호성이다.
낄낄대며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신기하다. 인격이 존중되려면 자신 주변의 공간을 지켜야 하는 투철한 독립심의 와중에서, 이들도 가끔은 밀착을 원하는 걸까?
불현 듯 중·고교 시절 민원 버스 안에서의 고통이 눈앞에 스친다. 흰 교복이 구겨지고, 운동화가 밟히던 것은 참을 만 했다. 그러나 이 아비규환의 순간을 이용해서 여학생들의 몸의 일부를 더듬는 손길이 언제나 있었다. 진저리가 쳐지는 순간들이었다. 나중에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이런 현상이 성도착증의 일종(Frotteurism)으로서, 대부분 15~25세의 젊은 남성들에게서 나타나고 다행히 나이가 들면서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또 한번 놀랐었다.
현재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청소년기 여성 4명 중 한 명이 성적 학대를 당한다고 한다. 아마 한국의 경우 만원 버스나 전철 등을 고려한다면 한국 여성을 반 이상이 성적 학대를 당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라틴계 여성의 경우 삼촌이나 사촌들, 혹은 계부에 의한 성적 학대를 당하는 비율이 여간 높지가 않다. 그런데 이들도 ‘하늘의 뜻’ 또는 ‘운명’을 믿어서인지 고발률이 아주 낮다. 그러니까 성적 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지고, 정신적 고통이 높아지는 사춘기가 되면 많은 문제가 대두된다.
심한 상처에도 자아만 든든하면 극복
어린 경우 부모 이해와 대화가 해결책
준비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성적인 부상(Trauma)을 당했으니 그 상처가 심하게 덧날 수밖에… 정신과에서 ‘충격후 스트레스 증상(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서 월남전에 갔던 병사가 살아 돌아왔다고 치자. 어느 날 문밖에서 자동차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그는 갑자기 전쟁터에서 전우가 맞아 죽은 대포 소리로 오인한다.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오고,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죽은 전우의 피 묻은 시체가 꿈에서건 생시에서건 자주 떠오른다. 속은 이렇게 열이 나는데 가슴은 차가워 오고, 아무도 사랑을 할 수가 없다. 사랑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몸과 마음이 격리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나 가족이 떠나기 시작한다. 직업도 명예도 자신의 존엄성도 잃어버리게 된다.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에 술과 마약에 빠지기 쉽다.
성적 학대를 받은 어린아이들이 모두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씩씩하고 착한 어른으로 되어서 좋은 부모가 되기도 한다. 마치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가 모두 부서지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단하고 영근 사과를 만들어야 한다. 속이 찬 아이나 어른은 부서졌다가도 재생할 힘이 있다. 월남전에서 돌아온 병사가 모두 PTSD 환자가 아니듯이…
9·11사태 이후에 뉴욕시에 있는 아이들이 모두 불안증세로 잠을 못 잔 것은 아니었다. 천성과 후천적 부모의 교육이 모두 영향을 끼쳤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이와 대화를 하자. 아이들은 무언지 모르지만 말이 된다고 느끼면, 안심하고 제 갈 길을 간다. 극심한 전쟁을 겪은 우리들도 지금 잘 살고 있지 않은가!
부모의 사랑과 이해를 통해서 아이들이 제 나름대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면, ‘부상’도 아물 수가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부상의 ‘예방’이고 철저한 ‘고발’로 인한 사후 처리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