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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신화와 귀의 미로

  • 입력 2018.05.25 08:45
  • 기자명 문국진 박사(대한민국의학한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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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迷宮)이란 사람이 들어갈 수는 있되 그 안에 길이 하도 복잡해 나올 수 없는 일종의 감옥을 말한다. 그래서 흔히는 어떤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면 그 사건은 영영 해결될 가망이 없는 경우에 사용되기도 한다. 미궁 또는 미로(迷路)를 그리스말로는 Labyrinthos, 라틴말로는 Labyrinthus, 영어로는 labyrinth 이라한다.

그림1. 신화 속 미궁의 미로를 그린 모형도
그림1. 신화 속 미궁의 미로를 그린 모형도

미궁이라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노타우로스(Minotaurus) 가 살던 집인 라비린트스(Labyrinthus)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미궁은 지중해의 큰 섬인 크레타의 왕이었던 미노스가 명 건축가 다이달로스를 시켜서 만들게 한 것인데, 수많은 방이 있었으며, 그 통로는 복잡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한번 들어만 가면 두 번 다시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없는 무수한 복도로 되어있는 집을 짓게 하였다. 의학에서는 귀, 특히 내이(內耳)의 구조가 매우 복잡한데, 그중에서도 달팽이관을 중심한 구조가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Labyrinthus와 같다고 해서 이 부위를 Labyrinth(미로)라 하는데 이 용어는 이태리 해부학자 Gabriello Fallopio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중해에서 패권을 잡고 있던 크레타 섬의 미노스 대왕의 아들이 아테네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 왕자는 아테네의 왕 아이기우스로부터 그 당시 각지로 돌아다니면서 해를 끼치고 있던 괴물 소를 퇴치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괴물 소를 퇴치하러 갔던 왕자는 그만 쇠뿔에 받혀서 죽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미노스 왕은 격노하여 아테네로 쳐들어가서 점령하고, 몰살을 면하려거든 9년마다 일곱 명의 청년과 일곱 명의 처녀를 공물로 자기에게 바치라는 명령을 했다.
전쟁에 진 아이기우스 왕은 이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9년마다 14명의 젊은이가 크레타로 보내져서, 반신은 소(牛)고 반신은 사람모양을 한 미노타우로스의 성적 노리개의 먹거리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런데 괴물 미노타우로스는 어떤 괴물이며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림2. 로마노 작: '파시파에와 나무로 만든 소', 만투아, 카사 델 텔레마코스
그림2. 로마노 작: '파시파에와 나무로 만든 소', 만투아, 카사 델 텔레마코스

제우스의 피를 받은 미노스 왕은 자기의 지위를 더욱 과시하기 위하여 신들이 자기를 보호하고 있다는 증거물을 내려주시면 사람들에게 자랑하겠다고 해신(海神) 포세이돈에게 간청했다.
포세이돈은 한 마리의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수소(牡牛)를 보내면서 이것을 죽여 자기에게 제사 지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미노스 왕은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소를 죽이기가 아까워 다른 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그 소는 해신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냥 길러왔다. 
화가 난 포세이돈 신은 미노스의 왕비 파시파에로 하여금 음탕한 여자로 변하게 하여 그 소를 사랑하게 되고 그 소와 동침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 소가 너무나 거대하고 사람과는 접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다 못해 파시파에 왕비는 예술가이자 건축가인 다이달로스에게 사랑의 고통에 빠진 자신을 도와 달라고 간청했다. 다이달로스는 그녀를 위해 바퀴 위에 목재로 된 암소 모형을 만들어 붙이고 그 위에 소가죽을 씌웠다. 그리고는 파시파에로 하여금 모형황소의 배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바퀴가 초원 위를 구르게 하자, 황소는 그 모형암소가 진짜인줄알고 쫓아가 올라타고 둘은 짝짓기를 했다. 이 장면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것이 화가 로마노(Giulio Romano 1492~1546)가 그린 ‘파시파에와 나무로 만든 소(1526~28)’로 소에 미친 파시파에가 수소와 교미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소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 결과 파시파에는 임신하고 낳은 것이 상반신은 소이고, 하반신은 사람의 몸뚱이를 한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림3. 도리와 미노타우로스
그림3. 도리와 미노타우로스

미노스 왕은 이 괴물을 죽일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유명한 건축가인 다이달로스에게 라비린트스를 설계하여 만들도록 명령하여 괴물을 그 안에 가두기로 했다. 명령대로 라비린트스를 지었는데 이것은 일종의 감옥 같은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교차되는 통로들, 수백 개의 공간과 방들이 딸린 미궁의 한가운데 있는 공간에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일단 미궁에 들어선 사람은 방향감각을 잃고 더 이상 출구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어 결국은 미노타우로스의 겁탈의 대상이며 밥이 되고 마는데 이러한 장면을 잘 표현한 것이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도리와 미노타우로스(1936)’다.

한편 아테네에서는 방랑생활을 마친 테세우스 왕자가 돌아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마침 공물로 바쳐질 젊은이들이 떠나는 날이었다. 의협심이 강한 테세우스는 자진해서 자기도 그 희생자들 틈에 끼기를 간청했더니, 아버지인 아이기우스 왕은 펄쩍 뛰면서 말렸으나 생각한 바가 있는 테세우스는 아버지에게 “저는 꼭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오겠습니다. 성공하여 돌아올 때에는 배에다 흰 돛을 달고 오겠습니다”라고 간청을 하였다. 왜 그런가하면 공물을 바치러 가는 배는 아테네 시민의 슬픔을 나타내느라 검은 돛을 달았던 까닭이다.
테세우스는 출발하기에 앞서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공물을 바치고 괴물을 정복하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이 사랑의 여신은 크레타에서의 이 중요한 사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다.
테세우스를 포함한 14명의 희생자들은 크레타 섬에 도착하자, 시민들이 줄지어 서 있는 사이를 헤치면서 라비린트스로 끌려갔다. 그런데 구경꾼들 틈에 끼어있던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Ariadne)가 테세우스의 씩씩한 모습에 반해서 왜 그런지 이 청년을 도와서 구해내고 싶어졌다.
그녀는 건축가 다이달로스에게 가서 미궁을 빠져나오는 비결을 알고 와서는 몰래 테세우스를 찾아 “만약 당신이 나를 아테네로 데려가서 결혼해주겠다고 약속한다면 저 미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응하자 왕녀는 어느 공간에 가면 미노타우로스를 발견할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다는 방법까지를 설명해주고 죽일 수 있는 칼도 하나 주었다. 그리고는 큰 뭉치의 실타래를 주면서 한쪽 끝을 미궁입구에 매고서 미궁 속에 들어가는 대로 실을 풀면서 가라고 일러주는 것이었다. 테세우스가 미궁 안으로 들어가자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 후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보자 테세우스는 괴물의 목을 껴안고 억센 주먹으로 두들겨 패고 칼로 찔러서 괴물을 죽이는데 성공하였다.

그림4. '미노타우로스를 정복하는 테세우스' 로마 모자이크
그림4. '미노타우로스를 정복하는 테세우스' 로마 모자이크


 괴물을 퇴치한 뒤에 왕녀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아테네로 돌아오다가 테세우스 일행은 낙소스 섬에 들리기로 했다. 오랜 황해에 피곤해 깊은 잠에 빠진 왕녀를 섬에 둔 채로 테세우스 일행은 섬을 빠져나와 아테네로 향했는데 너무 황급히 서둘러 돌아오느라 배에다 흰 돛을 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검은 돛을 단채로 그대로 돌아왔다. 
아들 테세우스가 돌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기우스 왕은 멀리 돌아오는 배에는 횐 색이 아니라 검은 색의 돛대를 단 배가 오는 것을 보고 실망과 낙심 끝에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하였다는 신화가 있다.
라비린트스에서 힌트를 얻어 의학에서는 사람 귀속 내부의 복잡하게 된 구조를 라비린트로 명명한 것만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미로를 단순화한 형태의 도안으로 만들어 놓고 그 가운데 있는 공간을 목표지점으로 해서 길을 찾아 들어가도록 하는 머리 쓰기 게임을 만들어 미로라는 단어는 세계의 어느 곳에서건 문화적 어휘로 통용되고 있어 오늘날 현대인의 의식 속에 뚜렷한 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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