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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공연장을 가다 Ⅲ

  • 입력 2018.05.28 14:44
  • 수정 2018.05.28 14:46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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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고 날이 화창한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로맨틱한 여행을 떠나는 꿈을 꾸는 계절이다. 앞서 두차례 다루었던 세계 속 공연장들로 떠나기에 최적의 계절이라 하겠지만 누구나 멀리 여행을 떠날 수는 없기에 우리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영화나 공연 같은 문화 산책의 시간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겠다.

극(劇) 속에 보여지는 극장(劇場)의 의미
개봉 이후 엄청난 수익을 올리며 대표적인 헐리웃 로맨틱 영화로 자리매김한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사업가인 리처드 기어가 거리의 여자인 줄리아 로버츠를 비행기에 태우고 샌프란시스코의 오페라하우스에 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또다른 예로 모차르트의 오페라의 전통을 물려받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촬영한 톰 크루즈의 영화 <미션임파서블 5>에서 오페라하우스 지붕 위에서 와이어 액션을 선보이며 액션 연기를 펼친 그곳은 빈 슈타츠오퍼이다. 이처럼 한국 영화에서는 흔치 않지만 작품 속에서 극장이 주요 공간으로 다뤄지는 이러한 극장 문화는 서양인의 상징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서유럽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는 슈타츠오퍼(Staatsoper)라는 영예로운 표식을 가진 오페라 극장이 있다. 한국어로는 ‘주립 가극장(歌劇場)’ 정도로 해석되고 영어로는 ‘State Opera’로 불리우며 국립인 경우도 있지만 주정부의 지원을 받을 경우에도 이렇게 불린다. 또한 동유럽 국가인 헝가리나 체코에서도 슈타츠오퍼를 찾아볼 수 있다. 이중에서 가장 유명한 극장은 빈 슈타츠오퍼로, 함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요셉 황제에 의해 1869년 궁정 오페라로 개관한 빈 슈타츠오퍼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전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며 20세기 오페라의 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 Strauss)까지 이 공간을 포용하면서 바그너(R. Wagner)를 제외한 독일권 오페라를 상징하는 공연장으로 인정받았다. 

<귀여운 여인> 속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 출처 Film in America
<귀여운 여인> 속 샌프란시스코 오페라하우스. 출처 Film in America


빈과 더불어 중요한 문화유산인 함부르크 슈타츠오퍼(Hamburg Staatsoper)도 주목할 만 하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에서는 같은 시즌에 오페라단과 발레단의 공연이 병행해서 무대에 올려진다. 서구 대부분의 오페라 극장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으로 비슷하게 운용된다. 이처럼 유럽의 주요 공연장 이름에 가극장을 붙이는 것은 대개 오페라단을 중심으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투트가르트, 코펜하겐 등에서는 슈투트가르트 발레(Stuttgart Ballet)나 덴마크 왕립 발레단(The Royal Danish Ballet)처럼 발레단이 전면에 나서는 도시들도 있지만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 횟수로는 발레보다는 오페라가 앞선다.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는 1678년 독일 최초의 상설 오페라단이 발족한 이후 상설 오페라 극장으로 개관했다. 1844년 바그너가 자신의 첫 오페라인 <리엔치(Rienzi)>를 직접 지휘하였으며, 1897년부터는 말러(G. Mahler)가 이 극장의 수석 지휘자로 재임하기도 했다. 이곳은 유럽의 전통 오페라 극장과는 다르게 근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현대의 클래식 음악 시장의 규모가 작아지는 것과는 반대로 대중의 인기와 더불어 사업성을 안고 커지고 있는 뮤지컬은 뉴욕과 런던에서 가장 크게 빛을 발하고 있는데, 함부르크는 런던이나 뉴욕에 이어 제 3의 뮤지컬 도시라고 불리울 만큼 공연 문화에 있어 지금까지도 과거로부터 이어온 자신들만의 역량을 잘 지키고 있는 도시이다.

빈 슈타츠오퍼 내부 모습. apn-photographia
빈 슈타츠오퍼 내부 모습. apn-photographia


이처럼 근대의 극장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의 공간이며 사교의 공간이었고, 대중 담론을 생성하던 담론의 공간이었다. 저녁 식사 후, 또는 신문에서 본 광고를 통해, 혹은 그저 일상적으로 찾는 공간이 극장이었던 것이다. 또한 앞서 등장한 영화에서처럼 남녀의 만남이 가능했던 사교의 공간이 근대 극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공연이나 연주가 끝난 후 배우, 연주자 혹은 공연 등에 대한 비판적 담론과 흥밋거리를 제공해 주는 담론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극장의 이미지는 그 시대의 모습을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음악, 그리고 그 공간
한국 음악에서 근대 극장의 등장은 과거로부터 공연되었던 우리의 전통 연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의 전통 한국 음악에서는 전통적 판소리가 사실적인 창극으로 분화하는 것이 하나의 예가 된다. 창극이란 창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극으로 엄밀한 의미에서는 판소리와 창극은 서로 구별된다. 창자(唱者)와 고수(鼓手), 두 사람이 소리를 중심으로 펼치는 음악 위주의 일인극 형태이지만, 창극은 작품 속의 주인공들을 여러 창자들이 나누어 맡고 대사와 연기·무대장치 등이 보다 사실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 음악에서 이야기하는 극장(劇場)은 말 그대로 극(劇)을 보여주는 공간, 즉 극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마당(場)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근대에 등장한 서구식 극장은 전통적인 공연을 근대적 형태의 공연으로 변화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전통과 근 현대를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을 담당하면서 공연 문화의 원형의 기능을 하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근대 극장이라는 공간은 전통 공연에서 현대 공연으로 전환되는 접점을 담아낸다.
21세기의 시작에서 사이버와 테크노가 유행으로 시작되며 더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정보통신 기술(ICT)의 융합으로 이루어낸 4차 산업혁명이 운위되는 지금, 퓨전이라는 탈-장르(脫genre)의 변화 속에서 현대의 극장은 다용도와 복합화의 다목적 극장으로 통합되어 고유의 상징적 의미를 상실하였고 그 유형적 틀이 분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부터 쌓아온 문화적 가치를 유지하고 전수하기 위해서는 원형에 대한 재생 과정에서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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