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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가 가버린 후에는...’

  • 입력 2018.06.22 15:32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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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나의 이웃 친구, 게일은 가끔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서 운다. 유대인인 그녀의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특히 가슴 아파한다. 얼마 전에 아버지는 특별한 원인이 없이 돌아가셨다. 그것도 게일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3개월도 채 안 되었는데...
내 친구가 그토록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아버지가 10년을 넘게 어머니의 ‘치매’를 간호하셨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아버지는 한시도 집을 떠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가 없었단다. 워낙 중병인 어머니의 치매 때문에, 게일과 그 여동생이 며칠이라도 어머니를 돌보겠으니 여행을 다녀오시라고 해도 아버지는 사양하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딸들은 오히려 아버지를 위해서는 안도의 숨을 쉬었단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아내를 간호하는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심신이 어느 정도 회복되리라 믿었던 아버지가 뜻밖에도 죽은 아내를 따라 저 세상으로 홀연히 떠나버리신 것이다. 담당 의사도 원인을 알아내기 어렵다고 하면서 “마음의 상처(Broken Heart) 때문이 아닐까?” 하더란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고달팠겠지만 게일의 아버지는 아마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 순간 삶의 의미를 상실했나 보다. 그토록 여행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위해서 유람선 여객표까지 사놓았던 내 친구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 속에서 또한 아버지도 잃었다.

평소 부부애나 성품이 영향
그러나 모든 부부가 이렇게 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저 세상까지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요즈음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련을 딛고 일어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미시간 대학교의 연구팀이 1980년도부터 1990년 사이에 배우자를 잃고 홀로된 사람 1,532명을 대상으로, 마음 깊은 곳까지 물어보는 심층 인터뷰를 하였다. 장소는 디트로이트 도시 근처이니 서로가 상관관계가 없는 대상자들을 선정한 것 같다.
‘노부부의 변화되는 삶(Changing Lives of Older Couples)’이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 그러니까 10여년의 자료 모집을 한 후에 3년 만에 나온 셈이다. 그리고 결과는 다음과 같다.
본래 가진 인격이나 성품(Personality trait), 그리고 결혼 당시의 부부 관계가 배우자 상실 이후의 살아가는 모습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상실 직후에는 극심한 심리적 충격을 느낀다. 그것은 아무리 지병의기간이 길었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1/4의 경우에는 심한 우울증에 걸린다. 특히 과거에 우울증을 앓았던 경우에는 그 빈도가 높다.
60세가 넘으면서부터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친구, 부모, 또는 친척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가. 마치 아이들이 성장의 단계를 지나는 것 같이, 죽음은 노인들이 지나가야 하는 층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이좋은 부부들은 이 때를 대비해서 많은 것들을 차근 차근 준비해 둘 수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큰 슬픔과 좌절이 찾아온 이후에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재개발하게 된다.

자신을 재개발하는 경우도 
예를 들어서 남편에게 의존을 많이 하던 아내는 홀로 된 이후에는 자신의 독립심을 기르는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야만 생존이 가능해지니까. 그러다 보면 본인 자신이 놀랄 만큼 능력을 개발하게 되고, 남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게 된다.
미국의 국회의원이나 주지사가 무슨 일로 사망을 하면 그 부인이 나머지 임기를 수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늘 궁금하였다. 어떻게 그 큰 슬픔 속에서도 막중한 일들을 해나갈 수 있었을까? 아마 그녀들은 이미 타계한 남편들에게 의존하는 대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재되어 있었던 능력을 발휘하게 되나보다. 그리고 남편이 계획해 놓았던 인생의 꿈을 실현함은 물론, 자신에 대한 재발견도 하게 되나보다.
과거에 많은 정신과 학자들이나 일반인들은 죽음 이후에는 슬픔이나 우울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는 ‘죽음보다 큰 슬픔이 있더라도 인생을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고 우리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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