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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겠지

  • 입력 2018.06.23 17:01
  • 기자명 홍지헌(한국의사시인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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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 침대가 있고 화장대 있고
거울 앞에 아내가 앉아있고
건넌방에 옷장이 있고 
아들들 침대 있고 침대가 비어있고
거실에 소파가 있고 티브이 있고
빨랫대 있고 빨래가 많이 줄었고
아들 공부방에 책상이 있고 
컴퓨터 있고 컴퓨터가 꺼져있고
서가에 가득 책이 있고
부엌에 전자레인지 있고 냉장고 있고 
수도꼭지 있고 물이 똑똑 떨어지고 
욕실에 샤워 부쓰 있고 변기 있고 
세탁기 있고 세탁기가 웅- 웅- 돌아가고 
그대로 다 있는데 아들들만 없다 
잘들 있겠지

두 아들이 직장 관계로 집을 떠나 있다가 가끔 집으로 오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 벌써 햇수로 4년째가 되었다. 애들이 어렸을 때 수학여행을 가거나 수련회 가서 몇 밤을 자고 올 때도 있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일이었고, 큰 아들이 태어난 1988년부터 지금까지 30년 동안 온 가족이 함께 있는 생활을 하다가 아내와 둘만 있게 되니 집안의 모든 풍경이 그렇게 낯설게 보일 수 없었다. 

아들이 공부하던 방이 비어 있는 것을 보아도, 책상 위 컴퓨터가 꺼져있는 것을 보아도 뭉클했고, 세탁기가 서 있어도 세탁기가 돌아가도 기운이 없어보였고, 빨랫대에 빨래가 조금밖에 없는 것이 눈에 띄어도 아들의 빈자리로 느껴져 허전했고, 욕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괜히 슬프게 느껴졌다. 이런 것들이 정상적인 아빠의 건강한 감정 반응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유난스런 아빠의 감정 때문에 아들들이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는 때늦은 반성을 해보기도 한다.

위 시는 이런 감정이 절정에 달하던 3년 전 2015년 3월에 쓰여졌다. 늘 아들과 연결되어있던 생활 시간표가 갑자기 변화를 맞게 된 그 당시는 허전함과 그리움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아내는 아내대로 친구들과 약속을 만들고, 나는 나대로 아들 없는 생활 시간표가 형성되어 일주일의 리듬이 만들어졌는데, 최근 들어서는 금요일 저녁만 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아들들이 가지고 온 밀린 빨래를 돌리고, 함께 외식을 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주말을 보내다가 월요일이 되어 새벽밥을 먹여 지방으로 출근시키고 나면 아내는 기진맥진 생활 리듬이 깨어져 며칠 후유증을 앓는다. 후유증에서 벗어날 때쯤이면 벌써 금요일이 코앞에 다가온다. 그렇다고 아들이 돌아오는 금요일이 두렵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몇 년 동안 만들어 놓았던 삶의 리듬이 주말마다 헝클어진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머지않아 아들을 결혼시키고 나면 정말로 아내와 둘만의 집이 될 것이니 지금의 과도기적 생활은 빈 둥지 증후군을 대비하는 적응 기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은 주말마다 돌아오는 아들이지만, 결혼시키고 나면 한 발 더 물러서서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아들이 될 텐데 아내와 나는 덤덤할 수 있을까. 작은 이별, 큰 이별, 짧은 이별, 긴 이별, 영원한 이별, 갖가지 이별을 경험하며 흘러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가 보다. [엠디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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