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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선 지키는 군인아들, 어머니 그리는 가요 ‘판문점의 달밤’

- 가수 고대원 1954년 데뷔곡 발표, 휴전이듬해 시대상황 맞물려 히트
- 남수련·김용임 등도 노랫말 손질해 취입…‘4·27 남북정상회담’ 계기 눈길

뜸북새 울고 가는 판문점의 달밤아 
내 고향 잊어버린 지 십년은 못 되더냐 
푸른 가슴 피 끓는 장부의 가는 길에
정한수 떠 놓고 빌어주신 어머님은 안녕 하신가 

적진을 노려보는 판문점의 달밤아
내 부모 작별을 한지 어연간 십년 세월
가로막힌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면 
태극기 흔들며 반겨주실 어머님은 안녕 하신가 

적막이 깊어가는 판문점의 달밤아
내 형제 이별을 한지 십년이 지나가도 
일편단심 내 마음 변할 리 없으련만 
기어코 승리를 거두라신 어머님은 안녕 하신가 

[엠디저널]판문점(板門店)이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만남으로 세계적인 관심지역으로 떠올랐다. 그날 오후 두 사람의 회담에서 발표된 ‘판문점 선언(3개 장, 13개 조)’은 지구촌 빅뉴스로 나라안팎에 보도돼 눈길을 끌었다.
이를 계기로 회담장소인 판문점을 소재로 한 노래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남강수가 부른 ‘판문점’, 오기택이 부른 ‘비 내리는 판문점’ 등 몇 곡이 있다. 그 중에서도 추억의 대중가요 ‘판문점의 달밤(유노완 작사, 이봉룡 작곡·편곡, 고대원 노래)’은 지금의 남북상황과 더불어 가슴에 와 닿는다. 노래가 만들어진지 64년 됐지만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불어올 한반도의 봄바람을 예견이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노래 2절에 ‘가로막힌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면∼’이란 대목이 나온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으나 노래 속의 ‘평화’가 현실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음을 말해준다. 
이 노래 마지막 구절에선 1절, 2절, 3절 모두 ‘어머님은 안녕 하신가’로 끝난다. 전선을 지키는 군인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판문점의 달빛 아래 총을 들고 적진을 노려보면서도 고향생각을 하는 젊은 군인들 모습이 떠오른다. 

서울레코드에서 음반 제작
‘판문점의 달밤’은 1954년 음반으로 발표됐다. 서울레코드에서 만든 음반은 휴전 이듬해 시대상황과 맞물려 인기였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후 북진통일의 소리가 한창 높을 때 음반이 나와 ‘남북통일 없는 외세에 따른 휴전은 반대 한다’는 민초들 가슴을 뒤흔든 것이다. 그 바람에 무명가수였던 고대원은 일약 유명가수로 이름을 날렸다. 
고대원의 데뷔곡이기도 한 이 노래가 히트하자 남수련, 김용임 등 다른 가수들도 리메이크해 취입했다. 이들 가수들이 부른 노래에선 일부 가사가 고대원이 부른 것과 약간 다르다. 한국가요반세기작가동지회 창립기념작품 제1집, 2집 음반(A면 다섯 번째)에 실려 있는 것으로 멜로디는 그대로지만 작사가 박남포가 노랫말을 손질한 것이다. 박남포는 작사가 반야월(본명 박창오, 1917∼2012년)의 또 다른 예명(藝名)이다.
1절 첫 소절 ‘뜸북새 울고 가는∼’이 ‘두견새 울고 가는∼’으로, ‘내 고향 잊어버린 지 십년은 못 되더냐 / 푸른 가슴 피 끓는 장부의 가는 길에∼’가 ‘내 고향 떠나 버린 지 손꼽아 몇 몇 해냐 / 푸른 가슴 피 끓는 용사의 가는 길에∼’로 바뀌었다. 2절에서도 ‘내 부모 작별을 한지 어연간 십년 세월 / 가로막힌 이 땅에 평화가 찾아오면∼’이 ‘내 부모 잊어버린 지 몇 몇 해 흘러갔나 / 철의 장막 헤치고 통일이 되는 그날∼’로 표현됐다. 
우리 가요들 중엔 이처럼 6·25전쟁, 남북분단을 노랫말 소재나 작곡 배경으로 삼은 게 많다. ‘가거라 삼팔선(고대원)’, ‘삼팔선의 봄’, ‘휴전선 고갯길(최갑석)’, ‘전선야곡(신세영)’, ‘녹 슬은 기찻길(나훈아)’, ‘전우야 잘 자라(현인)’, ‘전우가 남긴 그 한마디(허성희)’ 등이 그런 노래다. 우리민족의 가슴 아픈 사연, 애환이 짙게 베여있다. 
특히 세계 사람들 눈길이 쏠린 판문점, 38선, 휴전선과 관련된 게 적잖다. 남북분단의 상징으로 통일을 바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듣기에 따라선 구슬프고 애잔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노래 1절의 첫 소절 가사 뜸북새도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뜸북새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름새로 뜸부기과에 속한다. 몸길이 13∼50cm로 길고 날씬하다. 날개와 꼬리는 짧고 다리와 발톱이 긴 한국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요즘엔 잘 보이지 않아 아쉽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로 나가는 동요 ‘오빠 생각’에서도 나온다. ‘뜸 뜸 뜸’하고 우는 수컷의 울음소리가 특징적이다. 

노래소재가 된 판문점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에 속한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상의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다. 회담장을 둘러싼 긴 지름 1㎞, 짧은 지름 800m인 타원형구역으로 한 가운데 휴전선이 있다. 서울 서북쪽 48㎞, 개성 동쪽 10㎞ 지점이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론 개성직할시 판문군 판문리에 해당한다. 이곳은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널문(板門)이란 지명으로 초가집 몇 채만 있던 외딴마을이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 후 UN과 북한 쪽 JSA로 정해졌다. 남쪽에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 북쪽에 ‘판문각’과 ‘통일각’이 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옛 경의선 장단역사, 버려진 기관차 등도 볼 수 있다. 판문점은 영화, 소설의 소재로도 등장했다. 반공영화 ‘판문점(1964년)’, ‘판문점 도끼살인(1976년)’과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등이 개봉됐다. 실향민작가 이호철(1932년 3월 15일∼2016년 9월 18일)은 대표작인 단편소설 ‘판문점(1961년)’을 통해 전후 분단문학의 중심이 됐다. 이호철은 2012년 속편인 중편소설 ‘판문점 2’도 발표했다. 최인훈의 ‘광장(1960년)’에도 판문점은 중요한 모티프(motif, 이야기 소재)로 나온다. 

가수 고대원, 충남 청양태생…‘제2의 남인수’
‘판문점의 달밤’을 부른 가수 고대원은 1930년 10월 28일 충남 청양군 청남면에서 사진관을 하는 집안의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심상보통학교에 다닐 때부터 합창과 독창으로 성악소질을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야간공업학교에 들어가 낮엔 일을 하고 밤에 공부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음악연구소에 다니며 성악공부를 하며 가수 꿈을 키운 ‘의지의 사나이’였다. 가요계엔 1949년 KBS 제2기 전속가수로 데뷔했다. 그의 가요계 생활이 처음부터 잘 풀린 건 아니다. 1950년 6·25전쟁 일주일을 앞두고 예정됐던 첫 음반취입이 전쟁바람에 물거품이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기회가 왔다. 영화배우 허장강이 다리를 놓아줘 수년 간 육군예술인대원(군예대) 생활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방송출연, 음반취입도 했다. 창법이 미성가수 남인수와 닮아 ‘제2의 남인수’로 불렸다. 목소리가 곱고 톤이 약간 높은 편이다. 1962년 남인수가 세상을 떠나자 남인수 노래를 많이 불렀다. 빠르고 경쾌한 곡들로 인기였다. 
고대원은 예명을 주로 쓰는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본명이다. 여기엔 에피소드가 있다. 럭키레코드 전속가수시절 작가 유호 선생에게 “예명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자 “고대원은 높고 크고 멋있는 뜻의 이름”이라며 “본명보다 더 좋은 예명이 없다”고 해 그대로 쓰게 된 것이다. 그는 2008년 8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아들 고석영은 1992년 ‘서울방송(SBS) 가요제’에 입상,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기타연주가이기도 한 고석영은 3인조 남성노래그룹 E.O.S 멤버이기도 했다.
‘판문점의 달밤’을 작곡한 이봉룡(본명 이봉용, 李鳳用)은 1914년 8월 4일 목포에서 태어났다. 가수 이난영(李蘭影)의 오빠다. 목포공립보통학교와 목포상업전수학교를 졸업했으나 별다른 음악교육을 받진 않았다. 이난영이 1933년 가수데뷔 후 목포에서 난영축음기상회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7년 오케(Okeh)레코드에서 가수로 데뷔, 이듬해까지 ‘고향은 부른다’ 등 4곡을 음반으로 발표했다. 그 무렵 매부 김해송(金海松)으로부터 기본적인 음악이론을 배워 드럼연주를 시작했다. 1938년 오케레코드 전속 C.M.C악단에서 드럼연주자로 있었다. 그 무렵 그는 작곡가로도 데뷔했다. 첫 작품은 1938년 10월 발표된 ‘병든 장미’ 이후 1943년까지 ‘아주까리 등불’, ‘고향설’, ‘낙화유수’, ‘목포는 항구다’ 등 인기곡들을 만들었다. 1956년 대한레코드작가협회 부회장, 1958년엔 센츄리레코드 전속작곡가로 일했고 1961년부터는 엘케엘(LKL)레코드를 운영하기도 했다. 1969년 자녀들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음악활동을 접었다. 1986년 잠시 귀국, 여관에서 머물다 1987년 1월 9일 세상을 떠났다.
‘판문점의 달밤’ 노랫말을 쓴 유노완도 한동안 음악활동을 열심히 한 음악인으로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귀향병’, ‘한양 가는 방자’, ‘남북통일’, ‘월야삼경’, ‘청산유수’ 등을 작사했다.

왕성상 편집위원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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