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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잎 향기, 댓잎 이슬 같은 삶

옛 선인들의 삼복더위 여름나기 엿보기

  • 입력 2018.07.11 14:05
  • 수정 2018.07.11 14:06
  • 기자명 황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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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생명체는 휴식이 필요하다. 인간은 더욱 그렇다. 쉬지 않고 일에 치이다 보면 에너지가 바닥난다. 심하면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의 문제가 생긴다. 그 피해는 그대로 가정과 기업, 사회에 미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휴가는 단지 쉬는 게 아니라 활기차게 일하기 위한 자기 정비요, 투자인 것이다. 재충전 기회다.

꼭 여름에만 휴가를 할 건 아니지만, 혹서기인 7월은 본격 휴가가 시작되는 달이다. 아이들 여름방학도 겹친다. 풍경의 일단을 들여다보자. 
“…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내려와 어린 눈동자 속 터져나갈 듯 가득 차고 찬물들은 반짝이는 햇살 수면에 담아 쉼 없이 흘러갔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분교의 풍금소리 쌓이고 미루나무 그늘 아래에서 7월은 더위를 잊은 채 깜박 잠이 들었다.” 정일근 시인의 ‘흑백사진 - 7월’이란 시다. 뭉게구름, 미루나무, 실바람, 물장구, 원두막, 참외, 반딧불이 등은 유년 시절 여름날의 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밀어(蜜語)다.

세속 벗어나 삶의 관조·여유 찾는 기회

그럼 옛 문인달사들의 여름나기는 어떠할까. 시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국 송나라 때 소순흠의 시 <여름날 풍정(夏意)>이다. “별채 정원 깊어 여름 돗자리 시원하고(別院深深夏淸)/ 활짝 핀 석류꽃 빛이 발을 뚫고 들어온다(石榴開遍透簾明)/ 나무 그늘 마당 가득한 한낮(樹陰滿地日當午)/ 꿈에서 깨어나니 때마침 꾀꼬리 소리 들린다(夢覺流鶯時一聲).”

여름날 오후의 나른함, 낮잠을 자고 난 뒤의 한가함, 꽃과 풀과 나무와 꾀꼬리 소리가 더위를 몰아내는 정경이 살포시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처럼 아파트나 회색 빌딩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이런 시를 보면 낯설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중국 한시 가운데 산수전원시의 대표작으로도 꼽히는 <여름날 남쪽 정자에서 신대(辛大:맏이를 지칭)를 그리워하며(夏日南亭懷辛大)>라는 시를 보자.
“산속 석양은 홀연히 서쪽으로 지고, 연못의 달이 차츰 동쪽으로 솟아오르네(山光忽西落 池月漸東上)/ 머리 풀어헤쳐 청량한 저녁바람 쐬고, 창문 열어젖혀 한가롭게 누웠네(散髮乘夕凉 開軒臥閒敞)/ …/ 연잎은 바람결에 향기를 보내고, 댓잎 이슬은 맑은 소리 떨구네(荷風送香氣 竹露滴淸響)/ 이런 생각에 친구가 그리워, 한밤중 꿈속에서까지 생각한다네(感此懷故人 中宵勞夢想).”

맹호연이 은자 생활을 하던 시절 여름밤에 지음(知音), 곧 절친인 신악을 생각하며 지은 오언고시이다. 한여름 찌는 듯한 더위가 가신 밤, 머리를 풀어헤치고 창문도 열어젖힌 채 한가로이 누워 있자니 바람결에 연꽃 향기가 풍겨오고 댓잎에 맺힌 이슬이 떨어지는 청아한 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자신을 알아주던 친구가 그리운 마음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섬세한 감성과 세속을 벗어난 듯한 맑고 깨끗함이 묻어난다. 삶의 관조다.

다시 건강하게 정진위한 내공 다지기

조선후기 청백리의 상징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을 만나보자. 선생은 1804년 어느 여름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전남 강진으로 유배된 지 4년째 되는 해다. 그는 나라걱정, 백성걱정에 번민과 울분을 달래기 위해 음주하던 중 <여름날 술을 마시며(夏日對酒)>라는 시를 썼다. 정치의 폐단, 불합리한 신분제도와 과거제도 등 사회모순을 남김없이 묘사하고 있다. 시의 중간 중간에 “술이나 마시자 백 병 술이 장차는 샘물같이 되리라”라는 구절이 있음을 볼 때 여름날 견디기 힘든 마음의 더위를 술로 달래며 이 시를 지었던 것 같다. 

여름휴가철이다. 휴가의 ‘휴(休)’자는 사람 ‘인(人)’자와 나무 ‘목(木)’자가 합쳐져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는 형상을 그려내고 있다. 자연에서 몸·마음의 여유와 휴식을 찾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산과 계곡, 강과 바다가 주된 휴가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적이고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은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한다. 휴가를 맞아 삶의 여유로움을 찾고, 잊고 지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 회복 시간을 갖는 등 연꽃 향기 같은 마음을 지니고 삼복더위를 나야겠다. 인간과 세상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염세와 퇴폐에 빠지지 않고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며 거리낌 없이 행동했던 옛사람들의 삶에서 배우는 자세도 필요할 성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속박하는 세상의 모든 질곡을 내던지는 시원함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이 여름이 가고 삽상한 초가을 바람 불면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정진하기 위해 내공을 다지는 시간을 갖자.

이 삼복더위 속 휴가철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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