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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하게 괜찮은 부모
  •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 승인 2018.07.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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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영국의 정신과 학자 위니콧(Winnicott)은 소아정신과 학문에 위대한 공헌을 남긴 사람이다. 이 사람이 만든 어휘 중에 ‘Good Enough Parent’라는 말이 있다. ‘적당하게 괜찮은 부모’라는 말일 것이다. 얼마나 안심시키는 말인가.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라면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이다. 누가 나쁜 부모가 되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부모 노릇 아니겠는가? 아이들은 부모를 칭찬할 줄 모른다. 적어도 18살 이전에는 말이다. 엄마가 일 때문에 지쳐 있거나 아빠와 다투어서 노해 있어도, 이것을 이해할 줄 모른다. 오히려 엄마가 왜 나에게 화를 내느냐고 하면서 더욱 발끈해진다. 왜냐하면 어린 아이일수록 자기 중심적(Ego-Cen-tered 또는 Egotistic)이기 때문이다. 

숙제를 안 해가고 낙제점을 받아와서, 엄마가 매를 들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설명을 알아듣는 것은 ‘이성’의 영역인데, 아이의 ‘감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특히 야단맞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엄마가 매를 들고 때리면서까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귀에 경 읽기’이다. 

어린 시절엔 부모 아픔 몰라
엄마의 깊은 뜻을 알고 사랑의 매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인식’의 능력은 대뇌 전두엽이 어느 정도 발달되어야 가능하다. 피아제(Piaget)의 이론에 의하면 적어도 11~12세 정도 아이의 대뇌에서야 이런 인식 능력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쯤 되어야 원인과 결과를 유추할 줄도 알고, 남의 위치에 자신을 세워보는 능력도 생긴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연령 이전에 아이들에게는 행동과 책임감을 가르치지 않을 수도 없는 게 아닌가.

위니콧의 말 중에 많은 학자들이 중요시 여기는 또 하나의 개념이‘Transi-tional Object’이다. ‘일시적 대상’이라고 번역하면 그대로의 뜻이 전해지는지 궁금하지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갓난아기가 엄마와 같이 잠도 자고, 엄마 젖을 먹으며 자랐다. 이 아이에게 엄마는 온 세상이고, 온 세상은 엄마였다. 그러면서 아이는 자라고, 동생이 생길 수도 있다. 자라난 아이는 어느 날 엄마와 떨어져서 혼자 침대에서 자야 된다. 아니면 새로 생긴 동생이 엄마를 차지하게 된다. 그때 갑자기 세상은 외롭고 허전하게 아이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아이는 어느 날 엄마와 함께 덮던 담요 자락이나 자신의 아기곰 인형을 데리고 잠을 자기 시작한다. 담요나 아기곰 인형은 아이와 세상 사이에서 일시적인 방패 역할을 해준다. 비록 엄마와 떨어져 있더라도 안심을 시켜준다. 무언지 모르지만 일시적 방패가 되어 준다. 

독립심·보살핌 모두 중시
지금은 한국에서 소아정신과 학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한 소아정신과 교수가 70년대에 훌륭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자라는 어린이와 하와이에 살던 가족과 함께 자라는 어린이, 그리고 미국에 이민을 온 지 오래 된 가족의 아이들 중에 ‘일시적 대상’인 아기곰 인형을 갖고서야 자는 아이들의 숫자를 비교한 연구였다.

미국에서의 이민 역사가 오랜 가족일수록, 즉 엄마와 떨어져 자는 시기가 빠른 아이일수록 아기곰 인형을 갖고 잠이 드는 아이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할머니나 가정부 아주머니들이 엄마 대신에 아이를 데리고 자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시적인 방패’가 필요 없었다. 하와이에서도 그 빈도가 조금 증가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선 한국은 지금 미국 사회 못지않게 급격한 사회구조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그러면 한국식으로 부모가 데리고 자면서 의존감을 길러주는 것이 좋은 부모일까?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고생을 한다. 독립심을 일찍 키우는 것이 이곳 서구식 가치관이니까. 부모에게서 떨어지는 것을 일찍 가르치면서도,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아이는 그러기에 행복하다. 그리고 그 아이의 부모는 ‘괜찮은 부모’(Good Enough Parent)이다.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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