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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그리고 그로 인한 전쟁

  • 입력 2018.07.29 11:08
  • 기자명 강지명 (북경 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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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의 빌미가 된 임칙서의 마약 압수 조치, 글래드스턴은 이를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일컬었다.
아편전쟁의 빌미가 된 임칙서의 마약 압수 조치, 글래드스턴은 이를 '가장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일컬었다.

“262표, 영국의 양심의 무게가 고작 이 정도냐!”
이것은 영국 하원이 중국 아편전쟁 선전포고를 271대 262으로 가결시킨 직후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탄식이다.

아편전쟁과 차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론 상관이 많다.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이라고 일컬어지는 아편전쟁의 시발점이 바로 영국과 중국간의 차 무역이기 때문이다.

19세기 이래, 유럽이 중국과 본격적인 통상을 시작한 이래로 중국의 차는 동양의 특산품으로서 유럽의 사치품 시장을 점령하다시피 했다. 영국은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자국의 공업품을 중국에 수출하려 시도했으나, 시계 등의 공업품은 차와 달리 소모성이 아니라 한번 사면 오랜 기간 동안 다시 소비를 할 일이 없고, 방직물과 도자기 등의 공업품은 중국 자체의 비단과 도자기에 비해서 질이 훨씬 떨어져 싸구려 취급을 면할 길이 없었다. 결국 영국과 중국간의 무역 불균형은 커져만 갔고, 결국 영국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 즉 아편을 중국에 팔게 되고, 종국에는 거꾸로 중국 시장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자 당시 청나라 황제 도광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흠차대신(우리나라로 치면 마패를 들고다니는 어사쯤 된다) 임칙서를 파견하여 영국 상인들의 아편을 모조리 바닷속에 던졌고, 영국은 이를 빌미로 더 큰 시장개방을 요구하려 아편전쟁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중국의 설화 속 인물 신농씨가 만민의 행복을 빌며 선물했다던 차가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이 되었다는 것,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러나 수많은 음료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오늘날, 전통적인 차의 채산성은 홀대받기 일쑤다. 채산성을 높이기 위해 찻잎 속에 일반 나뭇잎을 섞는다던지, 향을 위해 화학 약품을 첨가한다던지, 심지어는 찻잎 건조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동차 매연으로 건조시킨다던지 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한때 건강한 식생활의 대명사이며 강대국들이 전쟁까지도 불사하게 만들었던 차, 그러나 이제는 차의 안전성마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현실이다. 그 어느때보다도 풍요롭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먹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 것인가. 

[엠디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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