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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감동은 우리의 삶 속에 있습니다!

의사시인 김기준 교수의 시로 전하는 진한 감동스토리

  • 입력 2018.08.06 10:42
  • 기자명 엠디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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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시와 문학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의 인생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적 같은 하루하루,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바로 우리의 삶 자체다. 그리고 그것이 시인의 삶이 아름다운 이유다.

 

<비누 두 장>

여리디 여린 당신의 허리춤에 긴 마취 침 놓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신의 눈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손잡아주며

괜찮아요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잖아요

그 순한 눈매에 맺혀 오는 투명한 이슬방울

 

산고의 순간은 이토록 무섭고 외로운데

‘난 그저 초록빛 수술복에 갇힌 마취의사일 뿐일까?’

사각사각 살을 찢는 무정한 가위소리

꼭 잡은 우리 손에 힘 더 들어가고

괜찮아요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잖아요

편히 감는 눈동자 속에 언뜻 스쳐간 엄마의 모습

 

몇 달 후 찾아와서 부끄러운 듯 내어놓은

황토빛 비누 두 장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가 먹다 남은 초유로 만든 비누예요

그때 손잡아 주시던 때

알러지로 고생한다 하셨잖아요

 

혼자 남은 연구실에서 한동안 말을 잊었네

기어코 통곡되어 눈물, 콧물 다 쏟았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더 고맙습니다

-김기준 시집 ‘착하고 아름다운’ 중에서-

 

지난 해 ‘착하고 아름다운’으로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준 의사시인 김기준 교수(연세의대 마취통증의학교실)가 이번에는 그의 두 번째 시집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예의’로 그 울림을 이어간다.

언제나 시인과 의사의 경계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김 교수. 그의 시에는 어려운 단어의 나열도, 그리고 예술가라는 미명하의 허세도 들어 있지 않다. 담담하면서도 소박하게 그저 자신과 또 누군가의 삶을 표현하지만 그 속에는 어떤 미사여구로도 나타낼 수 없는 감동이 담겨 있다. 우리가 왜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모든 사람과 사물에 대해 예의를 지켜야 하는지 알려주는 김기준 교수를 엠디저널이 만났다.

시를 사랑한 바다소년, 의사가 되다

“이번 교내 백일장에는 기준이도 나가보는 게 어때?”

김기준 교수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평소 김 교수의 재능을 눈여겨본 국어선생님이 시작(詩作)을 권했다.

그해 김 교수는 교내는 물론 전국 백일장에서 입선을 했고, 이후 그에게 시와 문학은 그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분신이 된다.

그리고 그 국어선생님은 김 교수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안긴다.

“기준이 시를 보면 초여름에 바람이 생각이 나는구나. 앞으로 좋은 시인이 되겠어.”

그때 김 교수는 ‘내가 글을 쓰게 된다면 반드시 나를 초하(初夏)라 부르겠다’고 다짐한다.

당시 김 교수의 취미는 편지지에 글을 써 자신에게 부치는 것, 편지가 돌아오면 읽어보고, 그것을 태우고, 또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김 교수는 “까까머리 중학생에게 시의 바다는 참으로 넓고 깊었습니다. 그 물속에 잠겨 허우적거리기도 여러 번, 시는 사춘기 어린 마음을 끝이 보이지 않는 저쪽으로 날려 보냈고, 저는 그저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일 뿐, 그렇게 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라고 그 때를 회상한다.

그렇게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김 교수는 입시의 문턱에서 자신이 가져왔던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김해가 고향인 김 교수의 꿈은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이 되는 것, 자신 있게 부산해양대학교를 지원했지만 또래보다도 훨씬 작은 키로 인해 좌절되고야 만다.

바다에 대한 낭만이 가득했던 김 교수는 ‘선장이 될 수 없으면 차라리 내가 배를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부산대학교 조선공학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 학교생활은 꽤 지낼 만 했다. 하지만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운명이라고 했던가, 독 안에서도 피할 수 없는 것이 팔자라는 말처럼 김 교수는 문득 지금의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다.

바다도 좋지만 자신에게 더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김 교수는 무작정 서울행을 택했다. 그리고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연세대 의과대학에 입학을 하게 된다.

“면접을 보러 가는데 학교 안에서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눈에 띄었습니다. 묘한 기분이 들었죠. 면접장에서 제 앞에 있던 친구에게 ‘왜 연대를 왔냐’고 하자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 왔다’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저는 왜 이곳에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그 면접관은 저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고, 저는 ‘윤동주 시인이 좋아서 왔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면접관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요.”

김기준 교수는 연세대 의과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고, 1983년 그는 의사로 가는 첫 발을 내딛게 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나의 시는 그곳에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학교와 제약회사의 장학금, 그리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의대에 입학한 김 교수, 생활비는 기초의학교실 실험실 아르바이트로 마련을 했다.

그리고 본과 2학년에 올라갔을 때 김 교수는 인생에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된다. 당시 병원의 직원으로 있던 3살 연상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

‘좋은 사람,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은 따뜻하고 투명한 햇살같이 늘 나를 응원해주던 그녀를 만나서였다’며 김 교수는 부끄러운 듯 환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의대생의 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한시도 전공서적에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졸업을 하고 전공의를 거쳐 마취과 의사가 된 후에도 늘 그는 수술실을 오가며 바쁜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렀고, 시인이라는 단어가 희미해질 쯤 김 교수에게 중요한 사건이 생긴다.

2014년 김 교수가 예전에 수술실에서 직접 마취를 했던 산모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산모가 김 교수에게 전해 준 것은 비누 두 장이었다.

“예전에 제가 제왕절개 수술을 할 때 선생님께서 제 손을 잡아주셨어요. 너무 무서웠는데, 선생님 덕분에 마음을 안정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이건 제가 초유로 만든 비누에요. 선생님께서 알레르기가 있으셔서 고생이 많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이걸 쓰시면 많이 나아지실 거예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연구실을 나간 산모, 김 교수는 한참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리고 덩그러니 남겨진 방 안에서 그 비누 두 장을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붉혀졌다. 거짓말처럼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멈추지 않는 눈물은 한참 통곡을 하고 나서야 겨우 그칠 수 있었다.

감정을 추스르기도 저에 김 교수는 펜을 들었고, 그 때 나온 시가 바로 ‘비누 두 장’이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감춰져 있던 시에 대한 열정과 감성이 그때를 시작으로 되살아났고, 삶과 죽음이 오고가는 수술실은 무궁무진한 시제의 보고라는 것을 깨달았다.

환자와 의사, 병원과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르게 보였고, ‘나의 시는 수술실에 있다’는 마음으로 글로 옮겨 나갔다.

그렇게 쌓여간 시가 서울시인협회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고, 김 교수는 2016년 시 전문지 ‘월간시’의 추천시인상 당선을 통해 등단을 하게 된다.

 

시는 두려움과 평안, 그리고 겸손을 가르쳐주는 절대자

“시는 공감을 획득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의사에게 시를 쓸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환자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 모두가 좋은 의사가 되지 않을까요. 문학과 의학은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공감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예술은 의사에게 더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김기준 교수의 첫 번째 시집 ‘착하고 아름다운’은 바로 그런 공감의 마음에서 나왔다.

평론가들은 그의 첫 시집을 “마취과 의사로서 생과 사의 경계에 선 환자들에 대해 기도하는 자신의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한 감동적인 시”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번에 발간한 두 번째 시집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예의’에 대해서는 “기도하는 의사로서의 울림과 감동이 한결 깊어졌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착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예의’는 자신이 의사로서, 시인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되고자 하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저에게 시란 두려운 것입니다. 시인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늘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시는 저에게 평안 그 자체입니다. 시를 쓰면서 갈등이 해소되고 아픔을 치유해주기 때문이죠.”

그에게 시는 두려움과 평온을 주는 절대적인 존재다. 그래서 김 교수의 시에는 자만이나 이기의 모습이 없다. 시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절대자이기에 한없이 솔직하고 겸손하게 순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김 교수.

오늘도 김 교수는 삶과 죽음이 오가는 수술실에서 또 다른 사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모두 고스란히 시가 되어 우리에게 또 다른 감동을 전해줄 것을 기대한다. 의사로의 숙명과 시인으로의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은 그에게 거는 우리의 바람은 어찌 보면 가혹한 기대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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