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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 환자와 교육

  • 입력 2018.08.16 12:37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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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카밀’이라는 아름다운 프랑스 이름을 가진 11살짜리 여아는 자폐증 환자다. 대화를 나눌 능력이 없고, 누가 한말을 대부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정도다. 그러나 그냥 보기에는 아주 똑똑해 보이는 동양 소녀다. 현재의 양부모가 11년 전에 중국에 가서 입양하러 데려왔다고 한다. 그때가 생후 3개월 되었을 때인데, 여러 가지 기생충에 감염된 상태였단다. 

백인 양어머니는 자세히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2살이 넘을 때까지 카밀은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같이 놀거나 눈을 맞추는 일이 없었단다. 본래 간호사였던 엄마는 아이의 성장 과정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 그녀는 온갖 전문 기관을 찾아다니면서 특수 치료를 해주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러나 가슴 아픈 일들만 연속해서 생겼다. 

자폐아들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교에 보냈지만, 선생님들이 별로 일을(?) 하는 것 같지 않아서 여러 번이나 학교를 바꾸었다. 그렇지 않아도 변화에 예민한 것이 자폐증 환자들이다. 여러 번 학교를 바꾸었으니 점점 적응이 어려워진다는 짐작이 든다.  

게다가 이 엄마는 그 동안 자신이 여러 명의 변호사를 고용하여서 이곳저곳에 고소를 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나열했다. “그런데, 엄마는 학교 때문에 울분에 차 있지만, 그 모습을 보는 어린아이는 엄마가 자신 때문에 화가 났거나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에 화가 났을 거라고 느끼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셨나요?”하고 물었다. 이 엄마는 그런 것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단다. 

자신은 아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계속 ‘최고의 학교’를 찾았을 뿐이란다. 그러다 보니 지난 2년간은 집에서 본인이 아이를 가르치는 ‘홈 스쿨링’(Home Schooling)을 하고 있단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직업을 유지하기는커녕 요즈음은 등에 디스크까지 생겨서 심한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이때에 나는 걱정스런 표정의 얼굴로 엄마를 쳐다보면서 퇴행 현상을 보이는 카밀을 발견했다. “이것 보세요! 지금 엄마가 아픈 표정을 하니까 금방 카밀의 태도가 변했지요? 카밀은 엄마가 즐겁고 기쁠때에는 본인도 즐거워 하지만, 엄마가 고통받을 때에는 불안해져서 행동이 퇴행하기 쉽습니다.”
엄마의 표정이 갑자기 변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처럼 카밀을 사랑해주지 않는 선생들에게 어떻게 카밀을 맡길 수 있어요? 게다가 카밀은 한 달전에 월경을 시작해서 더욱 예민해졌는데, 말도 못하는 저 애가 학교에서 어떤 취급을 당할지 걱정이 되어서 도저히 학교에 보낼 수가 없는데….”

“그러나 만일 엄마가 갑자기 교통 사고를 당하거나, 척추 수술을 해야 된다고 가정해봐요. 그 학교가 형편없는지 아닌지 카밀에게도 경험할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떨까요? 비록 다른 아이들과 성장 속도가 다르고, 대화의 능력이 없지만, 카밀 자신에게 친구나 선생님을 만날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에는 힘들어도 차츰 배울수도 있을텐데….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카밀은 청소년이 되는 과정도 익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기회가 없다면 카밀은 영원히 엄마나 가족 외에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믿지 않겠습니까?”

양엄마는 더욱 더 신경질이 나는 듯했다. 그 아픈 마음만큼 그녀는 자신의 양녀를 사랑하는 것이리라. 엄마가 화난 얼굴이 될 때마다 카밀은 엄마의 입술에 입맞춤을 한다. 엄마를 위로하려는 몸짓인 듯하다. 더 이상 누가 누구를 위해서 속상해 하는지 경계가 불분명해진다. 

이성적인 사고의 능력이 발달되지 않은 카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공동생활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학교에 보낼 수는 없을까? 자신만이 최상의 교육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양엄마의 사랑은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가 폭력일까?

“홈(Home)! 홈(Home)!”을 외치는 소녀의 표정에서 나 자신의 혼란이 반사되어 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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