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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검은색 

  • 입력 2018.08.21 10:13
  • 기자명 홍지헌(한국의사시인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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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바지와 자켓을 찾아 입고
대학동창 부친상에 갔다 
바지는 윤이 나고 자켓은 빛이 바래 
검기는 검지만 검지만은 않았다

문상객의 조의도 
가족들의 애도도 
검기는 검어도 검지만은 않겠지만

고인 때문에 골프대회에 못 갔다고
친구들과의 여행도 취소했다고 
날린 비용을 아버지한테 받아내야 하는데 
영영 못 받게 되었다고 편히 말하는 상주
마주 앉은 나의 조의도 덩달아 빛을 받아 
입고 간 바지처럼 
반짝이는 검은색이 되었다

- 이윤태 박사 부친상에서

[엠디저널]요즈음은 정말 부고가 많이 온다. 동창회 메일로 거의 매일 한두 통은 오는 것 같다. 물론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둔 나이에 접어들어 자녀의 혼사를 알려오는 청첩장도 많이 받지만, 별다른 부담감이 없이 참석하는 결혼식과는 달리, 조문을 갈 때에는 아무래도 마음이 무겁고 좀 더 정중해야할 것 같아 어두운 색 계통의 양복을 입고 가게 된다.

최근에 다녀온 상가는 대학 동창의 부친상이었다. 예과 다닐 때 그 친구 여동생의 과외를 잠깐 했던 인연도 있고, 내가 개원하고 있는 동네의 종합병원에서 과장으로 일하던 때 자주 만난 인연도 있고 해서 대학 동창 중에서도 가끔 생각나던 친구가 상을 당한 것이다. 지금은 대학병원급 대형 병원의 원로로서 전문의 협의회 의장이라고 했다. 대학으로 말하면 교수협의회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결혼식과 달리 장례식은 예정에 없이 갑자기 발생하므로 주중일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출근할 때부터 문상을 염두에 두고 옷을 챙겨 입어야 한다. 여름 바지 중에서 검은색 바지를 골라 입고, 자켓 중에서 가장 검은색에 가까운 것으로 골라 입었는데 영 색깔이 통일되지 않았다. 그래도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고 가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대로 입고 출근했다.

퇴근길에 장례식장에 도착해 보니 좀 이른 시간인지 문상 온 동기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 함께 졸업한 선배 한 분만 아는 얼굴이었다. 상주는 머리도 벗겨진 중후한 얼굴에 평화로워 보였다. 지난 총동창회 골프대회에도 부친이 아픈 관계로 참가하고 싶었는데 참가비만 내고 가지 못했다고 했고, 환갑 기념으로 동갑내기 동창들과 함께 가기로 한 일본 여행에도 갈 수 없었다고 말하며, 아버지한테 비용을 받아내려 했는데 돌아가셔서 받을 수도 없다고 농담 삼아 편안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부자지간에 대화도 많이 나누고 격이 없이 지낸듯하여 부러웠다. 

부친은 고등학교를 일본에서 다니셨다고 하는데, 말년에 동창생들 만날 겸 일본 여행 다녀오시라고 해도, 비행기 타는 것이 피곤하다고 안가셨다고 알려주었다. 이런 저런 말을 들어보니 상주인 친구는 아들로서 할 도리를 다한 효성 지극한 아들이었고, 고인도 여한 없이, 남은 가족에 대한 걱정 없이 평화롭게 가셨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문상 갔을 때 상을 당한 가족들의 슬픔이 극심한 경우에는 조문객들도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고, 가족들이 너무 덤덤해도 보기에 좋지 않고 의아스러울 수 있다. 내가 입고 간 검은색의 복장이 검은색 계통이면서도 색깔이 다르듯이, 가족들의 추모의 정도 사람마다 결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상객의 조문하는 마음도 상황에 따라 또 상주와의 관계와 친밀감의 정도에 따라 사뭇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문상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고인을 보내는 모습에 조문객의 입장에서도 편하고 보기 좋았다. 굳이 사족을 달아 표현하자면 이번 문상에서의 내 조의는 윤이 나는 내 바지 같이 반짝이는 검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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