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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미워하는 사내아이

  • 입력 2018.08.22 10:24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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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남자 아이가 서너 살이 되면 어찌된 셈인지 동성인 아버지는 경원(敬遠)하고 심하면 미워하며 이성인 어머니를 좋아해서 졸졸 따라 다니는 시기를 맞는다. 이런 시기의 변화를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드(Freud) 박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Oedipus Complex)’라고 명명했다.
이런 개념이 처음 세상에 발표 되었을 때, 그는 설명하기를 이런 시기의 남자아이는 「동성인 아버지는 없었으면 하는 마음과 아버지가 없어진 뒤에는 자기가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같이 생활하기를 바란다」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살부혼모 (殺父婚母)라고 해석하기도 했었다.
이런 개념이 이 세상에 발표되자 세상의 도덕가, 종교가, 교육자들이 크게 반발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프로이드 박사도 자기의 학설표현을 좀 부드럽게 하여 반드시 아버지를 해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아버지의 부재(不在)를 바라는 것이라고 시정했다. 

하여간에 이 개념의 어원은 그리스신화의 오이디푸스(Oedepus) 왕자얘기에서 나왔다. 테베국을 건설한 카드므스의 후손인 라이오스 왕은 아폴론 신의 신탁을 받았더니 “그대는 절대로 남자 아이를 낳지 마라. 만약에 아들을 낳는다면 그 아들은 커서 지 아비를 죽이고 말 것이다”라고 했는데, 라이오스 왕은 그 신탁을 무시하고 부인과 가까이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게 바로 오이디푸스였다.
아들을 낳고 보니 신탁의 예언이 두려워서 아이의 발목에다 핀을 꽂은 다음 하인에게 키타이론 산속에 갖다버리게 하였다. 때마침 그 산을 지나가던 코린토스왕의 하인인 목자가 이 아이를 발견해 왕비에게 갖다 바쳤다. 그런데 아이의 발이 핀으로 찔려서 부어 있었으므로 그 아이의 이름을 오이디푸스라고 지었다. 그리스 말로 발은 포드<Pod>이고, 부은 것을 오이데인(Oedein)이라 하기 때문에 이 두 말을 합쳐서 오이디푸스 즉 「발이 부은 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아이가 자라나자 하루는 친구들과 놀다가 다투었는데, 성이 난 친구는, 너의 부모는 친부모가 아니라 너를 주어다 길렀으니 후레자식이라고 욕을 하는 것이었다. 이 말에 쇼크를 받은 오이디푸스는 그게 사실인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아폴론 신전에 가서 신탁을 받아 보니, 『너는 장차 아비를 죽이고 어미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오이디푸스는 지금까지 자기를 키워준 부모가 아무리 생각해도 양부모가 아니라 친부모만 같고 자기를 이렇게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이고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되다니 너무나 끔찍해서 이 고장에서 없어져 버리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딴 나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다시는 이 나라로 돌아오지 않으려는 마음에서였다.

여러 날에 거쳐 여행을 하던 중에 하루는 산속 좁은 길에서 마주 오는 마차와 마주쳤다. 마차를 타고 가던 오이디푸스 왕자와 마주 오던 마차의 하인과 서로 길을 비키라고 시비가 벌어지자 마주 오던 마차의 하인이 오이디푸스 왕자의 말 한 필을 죽였다. 화가 난 오이디푸스 왕자는 홧김에 상대편 그 하인만이 아니라 마차에 탄 노인마저 죽이고는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죽인 그 노인이라는 사람이 바로 테베국의 왕인 라이오스였는데, 왕이 변장을 하고 나라 구석구석을 민정시찰 하던 중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즉 오이디푸스가 죽인 노인이 바로 자기의 친아버지라는 것을 꿈엔들 알 리 없는 오이디푸스는 얼마 후에 드디어 테베국에 도달했다.

오이디푸스 왕자가 테베국에 도착해 보니 그 나라는 스핑크스(Sphinx)라는 괴물 때문에 국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즉 테베에 가까이 오자 길목을 지키고 있던 괴물 스핑크스는 얼굴은 여자이고, 몸은 사자 모양을 하였는데 길을 막고서는 자기가 내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잡아먹겠다는 것이며, 그러면서, 『아침에는 네 발로 걸으며, 낮에는 두발로, 저녁에는 세 발이 되는 동물이 무엇이냐?』라는 문제를 내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잘 묘사한 그림이 프랑스의 화가 앙그르(Dominique Ingres 1780~1867)가 그린 ‘스핑크스와 수수께끼를 푸는 오이디푸스(1808)’인데 오이디푸스는 심각한 얼굴로 스핑크스로부터 문제를 듣고 이에 답을 하고 있다.

모로 작: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64,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모로 작: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64,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때까지 이 길을 지나가던 행인은 아무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해 괴물에게 잡혀 먹힌 사람이 부지기수여서 테베시민이 받는 괴로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왕자는 즉석에서, “그건 사람이지!”라고 대답해 스핑크스는 그만 무색해져서 스스로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잘 표현한 그림이 프랑스의 화가 모로(Gustave Moreau 1520~98)가 그린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1864)’로써 허를 찔린 스핑크스는 몸이 줄어들 정도로 충격을 받아 오이디푸스의 가슴에 바싹 달라 붙어있으며 결국은 죽음의 길을 택하게 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왕이 죽은 후 테베국은 왕비의 오빠인 크레온이 섭정으로 다스렸는데, 그전부터 그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에게 왕국과 왕비를 주겠다고 공언해왔다. 여기에 영문도 모르고 오이디푸스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오이디푸스는 왕이 되고, 왕비와 결혼하였다.
몇 년 후 테베국에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여 국민들의 죽음이 부지기수로 늘어만 갔다. 걱정이 되는 왕은 아폴론 신전에 사람을 보내 신탁을 받아오게 했더니, 신탁에는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예언이었다. 자기 자신이 바로 그 장본인임을 꿈에도 모르는 오이디푸스 왕은 그 진범을 찾아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던 중에 예언자를 불러서 선왕을 죽인 자를 점치라 하니 예언자가 입을 다물고 대답을 못한다. 왕은 노해서 강제로 입을 열게 하자 예언자는 말하기를 “선왕을 죽인 자는 바로 당신이다”고 마지못해 대답했다.

번 존스 작: <운명의 바퀴>, 1833, 파리, 오르세 미술관
번 존스 작: <운명의 바퀴>, 1833, 파리, 오르세 미술관

오이디푸스는 이것은 왕 자리를 탐내는 처남 크레온의 음모라고 욕하는 참에 왕비가 와서, “선왕은 자기 자식 손에 맞아 죽을 운명이라는 예언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세 갈래 길에서 강도를 만나서 죽은 것이고, 뿐더러 옛날에 낳은 아기는 낳자마자 산에 갖다 버렸으니 당신이 선왕을 죽였을 리 만무하다”고 변명을 해준다.

그런데 얘기 중에 선왕이 세 갈래 길에서 칼에 맞아 죽었다는 말이 튀어나오자 옛날에 자기가 세 갈래 길에서 어떤 노인을 죽인 일이 생각나서 혹시 자기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품게 되고 마침내는 자기가 선왕을 죽이고 모친과 결혼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왕비는 지금의 남편이 바로 자기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궁중 연못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오이디푸스는 자기의 저주 받은 운명을 알게 되자 자기 손으로 자기 눈알을 찔러 장님이 되어 큰 딸의 인도를 받으며 방랑의 길에 올랐다. 이러한 오이디푸스의 희구한 운명을 그림으로 한 것이 영국의 화가 번 존스(Edward Buren Jones 1833~98)가 그린 ‘운명의 바퀴(1833)’로 기구한 오이디푸스의 운명이 마치 차바퀴가 돌듯이 희비가 엇갈리면서 돌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였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초기에 잘 처리하면 인격 발달 과정에서 다음 단계로 원활하게 넘어가지만, 이 시기에 잘 처리하지 못하거나 또는 정신적인 외상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인격 발달이 불완전하여 나중에는 정신병을 일으키게 된다고 프로이드 학파의 학자들은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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