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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문화 공간이 자리 잡은 떠오르는 곳, 베를린

  • 입력 2018.08.30 10:30
  • 기자명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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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지난 6월 말 즈음부터 여행을 테마로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독일 베를린을 시작으로 동유럽을 주제로 새로운 시즌의 방영이 시작되었다. 담당 프로듀서가 여행의 시작 도시를 선정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분단의 역사를 언급했다. 지난 4월 열린 남북정상회담 이후 통일에 대한 이슈가 대중들의 관심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베를린을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의 과거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에 시기적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필자가 처음으로 해외로 나가게 된 것은 2008년 베를린이었다. 그때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로도 몇 십 년이 지난 때였지만 도심 속을 다니며 장벽은 소실되었지만 장벽이 지나갔던 자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에는 장벽의 약간의 부분들이 벽화들과 함께 기념물로 남겨져 있다. 현재는 장벽이 무너지고 거의 3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베를린의 동, 서 지역은 아직 어린 학생의 시선으로 보기에도 그곳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도시의 색깔은 다르게 느껴졌던 기억이다.
 서독 지역 대비 동독 지역의 1인당 GDP 증가 추이와 같은 수치를 통해 볼 수 있듯 동서간 경제 장벽은 낮아졌지만 아직까지도 양측의 사회, 문화적 차이는 여전하다고 하며 미 항공우주국(NASA)가 찍은 베를린의 밤 풍경 사진에 주목했다. 과거 서베를린 지역에는 친환경적인 흰색 형광등을 가로등으로 쓰고 있는 반면, 동베를린 지역에서는 여전히 구식 노란색 나트륨조명 등을 쓰고 있기에 양측의 색깔 차이가 확연해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19세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의 외관, 출처 Top10 Berlin
19세기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의 외관, 출처 Top10 Berlin

그러나 오늘의 베를린은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 아직 곳곳에 파헤쳐진 도로들이 있고, 끝나지 않은 구 동베를린 지역의 재건 공사로 도시의 곳곳에서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아직 런던이나 파리에 비해 유럽의 대도시 같은 우아함이나 세련된 느낌보다는 어수선함을 보이고 있지만 확실하게 요즘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비춰지는 베를린은 내가 보았던 그때와는 다른 느낌,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잔존하는 1.3km의 베를린 장벽을 완벽한 미술품으로 재탄생시킨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가 있다. 슈프레 강(The Spree River)을 따라가다 보면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야외 갤러리로 캔버스 위가 아닌 분단의 역사적 배경 위에 그려진 그림들이 있다. 비록 대부분의 작품들이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과거를 잊지 않고 이념의 갈등과 단절되었던 시간의 틈을 예술로 채우고 있는 것이다. 가볍지만 위트 있는 분위기의 삽화로 베를린의 장벽은 무너졌지만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장벽은 여전히 많다(Es gilt viele Mauern abzubauen)’ 와 같이 역사의 흔적 위에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인종, 종교, 세대 간의 갈등 등의 또 다른 장벽들을 허물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을 팝아트적으로 표현한 벽화이다. 

베를린의 팝아트
베를린의 팝아트

베를린 네오 르네상스에서부터 현재의 도시 시간 예찬
과거 장벽 주변의 폐허 건물들은 이제 도시 재생의 화려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미테(Mitte)지역을 비롯한 프렌츨라우어 베르크(Prenzlauer Berg),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등 과거 냉전의 지역이 이제 예술의 명소로 변화하고 있다. 런던, 도쿄 등 개별 프로젝트로 유명한 도시들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베를린도 활발한 도시 재생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는 곳은 흔치 않다. 젊은 예술인들이 사랑하는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필자가 처음 방문했던 때인 2000년대는 통일이 한참 지난 후였음에도 구제할 수 없는 버려진 땅으로 인식되었던 동베를린에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은 마법사는 예술가와 문화인들이었다. 이들은 전쟁과 분단의 후유증으로 버려진 공간을 스튜디오로 사용하여 독창적인 창작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미술, 디자인, 건축, 사진, 음악 등 예술의 전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며 이 소문을 듣고 전 세계의 트렌디한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호텔 건축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서서히 경제도 성장하게 되었다.

베를린 소재 호텔 오데르베르거
베를린 소재 호텔 오데르베르거

동베를린의 도시 재생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곳들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프렌츨라우어베르크(Prenzlauer Berg)이다. 이곳에 위치한 호텔 오데르베르거(Hotel Oderberger)는 1898년 건축가 루드비히 호프만(Ludwig Hoffmann)이 디자인하고 국민을 위해 독일 전역에 지어졌던 시립 실내 수영장을 현재까지도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호텔이다. 독일의 여느 도시 재생 사업과 같이 역사적인 건물들을 보수하여 현대적인 스타일로 재건축한 공간들이 많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대표적인 장소이다. 
호텔의 외관은 웅장하고 화려하며 거대한 철문을 열면 마치 19세기의 옛 성에 들어서는 기분을 끌어내며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커다란 리셉션에서는 곳곳에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예술가들과 협력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호텔 내 도서관과 복도 및 객실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수영장은 1차 세계대전 때 문을 닫은 후 1990년대에는 예술 작품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이후 4년간의 보수작업을 마친 후 2년 전 럭셔리 호텔수영장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건축물이 만들어질 시기의 우아함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아치형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품는 공간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공연예술의 장소로도 활용되는 수영장, 출처 호텔 오데르베르거 공식 사이트
공연예술의 장소로도 활용되는 수영장, 출처 호텔 오데르베르거 공식 사이트

이곳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수영장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배수 시설을 이용해 물을 빼낸 후 소셜 파티나 다양한 장르의 공연 예술을 위한 이벤트 홀로도 활용된다는 것이다. 
역사와 현대가 잘 어우러진 도심 속에서 새롭게 찾아내어지는 공간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이 장소의 곳곳에서 베를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는 재미는 과거에서 지금의 관람객들에게 전달된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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