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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 같은 방황, 그 속에 시가 있다한국의사시인회 김승기 회장

역驛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한 세월 그냥 버티다보면
덩달아 뿌리 내려
나무가 될 줄 알았다
기적이 운다
꿈속까지 따라와 서성댄다
세상은 모두 역일 뿐이다
희미한 불빛 아래 
비껴가는 차창을 바라보다가
가파른 속도에 지친 눈길
겨우 기댄다
잎사귀 하나가 
기어이 또 
가지를 놓는다
- 김승기 作 -

[엠디저널]인생은 방황의 연속이다. 가야할 길을 잃기도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헤매기도 한다. 길이 이어지는 곳에서도,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우리는 방황을 한다. 그것은 평생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운명만큼이나 잔인하지만, 그 속에서 시인은 시를 쓴다. 시인에게 방황은 형벌이 아니라 어찌 보면 축복일지 모른다. 
한국의사시인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승기 원장의 시에는 오랜 방황이, 그리고 그 방황의 이유를 찾기 위한 방황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을 억누르는 그 무엇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국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방황의 무게를 잊기 위해 글을 썼다는 김 원장, 그 오랜 습작들은 이제 자신은 물론 타인이 가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가 되었다. 

가면을 벗고 ‘나’로 선다는 것
김승기 원장의 고향은 남양만 방조제가 있는 화성, 그의 유년 시절은 늘 바다와 함께였다. 하지만 굴도 따고, 조개도 잡고, 낚시도 하고, 수영을 즐기던 추억은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가면서 끝이 난다. 1남 3녀의 외아들이었던 김 원장은 집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아버지의 바람대로 의대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부터 김 원장의 방황은 시작된다.
김 원장은 시간만 나면 기차를 탔고, 그가 향한 곳은 언제나 바다였다. 기차 안에서, 그리고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는 언제나 삶이니 죽음이니 하는 알 수 없는 추상적인 명제를 주제로 글을 썼다. 
“늦은 사춘기라고 해야 할까요? 사회나 부모님이 요구하는 것들에 맞춰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회피성 인격성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나를 나쁘게 보는 것 같으면 우울해지고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모든 것에 싫증이 나기도 했고, 이유 없는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마음이 답답하니 공부가 될 리 없고,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런 김 원장의 방황에 정체성을 갖게 한 것은 ‘필내음’이라는 문학동아리에 가입하면서부터다. 
기차 안에서, 길에서, 그리고 바다를 통해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은 ‘페르조나’, 즉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어버리고자 했던 과정이었음을 깨닫고 시라는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었다. 
“내가 바라보는 상과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상을 억지로 맞추려다보니 그것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방황을 하게 된 것이었죠. 결국 저는 방황과 시를 통해 페르조나를 벗어내고 ‘나’라는 것에 서게 된 것입니다.”

또 다시 이어진 방황, 그 속에 희망을 얻다!

의대를 졸업하고 청양으로 공중보건의사로 가게 된 김승기 원장, 그런데 이곳에서 그는 생각지도 못한 방황에 빠지게 된다. 갑자기 고개도 들지 못할 정도로 몸에 마비가 오고, 극도의 피로감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김 원장은 자신의 증상을 ‘루게릭병’으로 의심하고,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몸의 이상보다 ‘죽음의 공포’가 그를 괴롭혔고, 두려운 마음에 병원을 찾을 수도 없었다. 
한참을 지나서 용기를 내 친구가 있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고, 그의 병명은 ‘루게릭병’이 아닌 ‘갑상선항진증’이었다. 두 병의 초기 증상이 서로 비슷하니 그렇게 의심했던 것인데, 그날 김 원장은 친구에게 “왜 이리 늦게 왔냐”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그동안 마셔댔던 술, 차라리 고아였으면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많지나 않았을 거라는 고민에 대한 부끄러움보다도 당장 살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이 생겼다. 
오해에서 비롯된 상황이었지만, 또 그 방황을 통해 김 원장에게는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김 원장은 그 때의 방황을 토대로 그의 첫 번째 시집 ‘전지’를 발간한다. 
“전지는 말 그대로 가지를 자른다는 뜻입니다. 방황은 결국 나를 쳐내는 과정입니다. 공보의 시절 술 먹고 글이나 끄적거리는 것이 전부였던 저의 심리상태를 표현했다고 할까요.”
공중보건의사를 마치며 그의 습작과 같았던 50편의 시를 묶어 100권만 발행했던 ‘전지’에는 젊은 김 원장의 마음이 행간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우울감의 정체는 타인에 대한 사춘기적 시선의 의식
언제나 방황은 존재한다. 정신과 의사가 되고 나서도 김승기 원장은 그 방황을 양분으로 습작을 이어나갔고, 시들도 함께 쌓여갔다. 
“시를 쓰면서 등단을 해볼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당시에는 등단할 수 있는 방법이 신춘문예만 있는 줄 알았죠. 몇 차례 응모를 했지만 낙방하고 말았죠. 그런데 2003년 리토피아라는 문예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거기서 저의 시를 보고 시집을 함께 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김 원장은 2003년 리토피아 문학상을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을 한다. 물론 그 전 1996년 계간 ‘오늘의 문학’의 신인상을 받았으나 본인의 고사로 등단이 무산된 적이 있었다. 
정식 등단 후 김 원장은 그의 두 번째 시집 ‘어떤 우울감의 정체’를 발간한다. 
그리고 그는 ‘우울감의 정체’에 대해 “정신과 의사가 되고 나서도 우울하고 방황했던 것은 타인에 대한 사춘기적 시선의 의식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이어 김 원장은 2006년 ‘세상은 내게 꼭 한 모금씩 모자란다’를 펴내면서 중견 시인으로의 자리를 굳혀갔다. 

시인의 노래, 방황과 허무를 치유하다

「삶이란 글씨를 가만히 풀어 놓으니 ‘사람’이 됩니다.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 그건 우리들 사람이었습니다.
- 중략 - 
  높고 푸른 하늘 아래 희망의 ‘역’을 향해 노래합니다. 세상은 모두 ‘역’일 뿐~」

- 2010년 장사익 정기공연 초대장에서 - 

인연은 언제나 우연을 가장하고 바람처럼 찾아온다. 
2010년 어느 날, 소리꾼 장사익 씨에게 전화가 왔다, 역驛이라는 시가 너무 좋으니 자신이 곡을 붙여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했지만 김승기 원장은 장사익 씨의 간곡한 부탁에 허락을 했다. 그리고 어떻게 그 노래를 알게 되었냐고 물으니 한 일간지의 ‘아침을 여는 시’ 코너에 게재된 작품을 보고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일간지 문화부장이 김 원장의 ‘역驛’을 보고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올렸던 것이다. 
이렇게 김 원장의 시는 일간지 역을 지나 장사익 역에 도착을 해 노래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다. 
이후 ‘역驛’ 이외에도 ‘바닥’, ‘첫사랑’, ‘이어도’를 비롯한 7편의 시가 여러 가수를 통해 노래로 불리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김 원장은 그의 네 번째 시집 ‘역驛’이 출간하게 되었고, 장사익 씨와는 전화로 서로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시인은 자신의 언어에 충실한 사람

“시는 자신의 사상이나 경험을 형상화 시키는 과정이 아닐까요. 시나 예술은 작가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고, 고유의 독특함이라는 자기 자신의 언어를 충실히 전달해야겠지요. 시를 억지로 만드는 것은 습작의 과정에서의 의무감이었겠지만 이제는 오히려 시를 왜 쓰는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2011년 ‘역驛’을 출간한 이후 김승기 원장은 정신과 전문의로 환자들의 경험을 담은 수필집 ‘어른들의 사춘기(2013년)’와 허상과 실체의 괴리에서 오는 허무감을 담은 다섯 번째 시집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2015년)’를 펴내 독자들과 꾸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또한 한국의사시인회 사화집의 공동 저자로 참여하고, 최근에는 ‘왜 우리는 눈물이 나는 걸까?’를 출간했다. 
1992년 30대의 젊은 나이에 영주에 내려와 김신경정신과의원을 개원한 김 원장은 어느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는 시인들 사이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의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시에 대한 부족함을 보상받으려고 의사에 기대어 시인 행세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환자를 대할 때는 의사로, 시를 쓸 때는 시인으로 충실할 따름이죠.”
이제 더 이상 세상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 그 오랜 방황은 그를 성숙한 시인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김 원장의 방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시를 쓴다. 
방황은 시가 되고, 그 시는 누군가에게 치유가 되는 이 혼돈 같은 여정은 앞으로도 김승기 원장에게 끊을 수 없는 숙명처럼 계속 될 것이다. 

신영인 기자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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