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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만난 후의 기쁨

  • 입력 2018.09.15 11:01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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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의사를 보러 병원에 가는 것처럼 힘든 일은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의사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 병원이 내가 몸담고 일하는 직장이라는 것도 큰 혜택이 안 된다. 적어도 내가 환자 노릇을 해야 되는 경우에는….

이번에도 3주일을 끙끙 버티면서 웬만하면 의사를 보지 않고서 지나가려고 노력했다. 나는 의과 대학을 엄연히 졸업하고, 미국 의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내과 수련의 훈련을 받던 원주 기독병원을 떠난 지 30년이 되었고, 미국에 온 후에는 정신과 의사만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웬만하면 자가 진단과 자가 치료-그것이 대부분 참고 견디는 일이지만-로 ‘쓱싹’지낸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지난 3월 LA 마라톤을 뛰는 엄마를 응원하러 왔다가 코스의 삼분의 일을 같이 뛰어준 둘째 딸이 금년 10월에 있을 시카고 마라톤에 나를 초대하였다. 감격하여서 열심히 연습을 하다가 그만 무릎 관절을 다쳤다. 그것이 3~4주일 전 일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대회에서 요구하는 에이즈(AIDS) 치료 기금 모금에만 안간 힘을 썼다. 

‘에이즈 협회’에 1천3백 달러의 자선기금을 모금해 주어야만 참가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비행기 표도 이미 몇 달 전에 사 놓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딸이 처음 출전을 하는 마라톤 행사이다. 자신이 몸담고 일하는 인권협회에서 많은 기부금까지 보조했단다. 직장 동료나 상사들은 물론 친구들 앞에서 같이 뛰자고 나를 초대해 준 딸이 고맙고, 우쭐해지기 까지 했다. 딸은 친구들의 이름을 얼굴에 써 붙이고 달리는 것으로 모금을 한단다. 팔다리에 이름을 써붙이면 액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어쨌든 4월부터 시작한 모금 사업이 이제 완수되어 한숨 놓는 순간에 무릎을 다친 것이다. 주책없이 어느 젊은이를 따라서 14마일을 뛴 후에 발생한 병이다. ‘마음은 원이로되 무릎이 따라주지 못한’셈이다. 쉬어도 보고, 다시 뛰어도 보고, 맨몸 체조도 해 보고…. 그런데 경험자들이 모두 정형외과의를 만나 보라고 했다. 그래서 드디어 정형외과를 찾았다. 마음이 변할까봐 아침 8시 반에 병원에 갔다. 의사가 내 무릎을 앞뒤로, 좌우로, 상하로 움직이며 검진한다. 마음이 갑자기 편해진다. 금방 나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의사 왈, 내가 줄기차게 달린 것은 마치 망치로 마루를 계속 두드려 댄 것 같이 자극이 심해서 관절염 증상이 온 거라고 한다. 따라서 망치로 두드리는 것을 그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지만, 꼭 뛰어야 된다면 소염제를 복용해 보란다. 소염제를 받아들고 병원문을 나왔다.

꼭 15분 걸린 방문으로 이렇게 마음이 가볍고 기쁠 수가 있을까? 무릎 아픈 것은 여전하고, 쉬면서 뛰면서 10월을 기다려야 되는 것은 사실 내가 진단한 것과 똑같은 처방이 아닌가. 그런데도 전문가를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편하게 만드는 것임을 나는 오랫동안 잊었었나보다. 그렇다면 나를 찾아서 오는 많은 환자들도 이렇게 기쁘고, 안심되는 마음으로 내 방을 나갈 수 있을까?

그들이 망설이고, 미루다가 몇 주, 아니면 몇 달 만에 만든 약속을 지키려 마음을 두근거리며 찾아왔을 때, 나는 정말 유쾌하고 기분 좋은 태도로 그들을 맞이했었을까? 그리고 비록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할 때에도, 인간적인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속마음에 귀를 기울였을까? 게다가 많은 환자를 짧은 시간에 보아야 된다는 나 자신의 스트레스 때문에 행여나 피곤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까?

물론 뼈가 상했거나 관절이 부러진 것과 마음의 상처는 다를지도 모른다. 진단이나 치료가 비록 다를 수는 있겠지만, 결국 모든 환자가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몸,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애정이 아닐까. 상한 관절을 통해서, 오랜만에 내가 택한 소중한 나의 직업에 대해 희열과 보람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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