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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시론]상담 권하면 ‘미친 취급’, 화부터 내는 사회

  • 입력 2007.05.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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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 의료계에서는 과(科)명을 바꾸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방사선과는 영상의학과로, 임상병리학과는 진단검사의학과로 이미 개명(改名)되었고 최근에 소아과는 소아청소년과로 개명되었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너무 심해 정신과 학회에서는 오래전부터 개명작업을 추진해오고 있고, 정신과 학회에서는 심지어 개명추진위원회까지 만들어 작업을 벌리고 있으나 신통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거명되는 이름으로 ‘정신생활의학과’ ‘정신건강과’ ‘스트레스의학과’ 등이 거론된 바 있다. 한국 성인 10명 가운데 6명가량이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이 낮은 ‘정신건강 문맹(文盲)’이라고 한다. 또한 정신질환 치료법 등에 대한 오해가 많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이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동아일보와 함께 지난 3월 서울 및 수도권 5개 대학병원의 건강강좌에 참가한 20대 이상 성인 3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정신질환의 종류와 원인, 대처법 등에 대한 10개 문항 가운데 100점 만점에 40점 이하를 받은 응답자가 57.6%나 됐다. 정신질환, 누구나 걸릴 수 있어‘2000년 현재 미국에서 암 다음으로 직간접 비용(질병 부담)이 많은 질환은 무엇인가?’, ‘전 세계에서 직간접 비용이 2000년 현재 4위지만 2020년에는 2위로 올라서리라 예상되는 질병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우울증을 꼽고 있다. 정신질환 가운데 한 가지인 우울증으로 세계인들이 겪을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이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은 ‘특별히 마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걸리며, 한번 걸리면 치료가 힘든 병으로 잘못 알고 있다. 정신질환은 신체질환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흔한(3명 중 1명꼴) 병이며 꾸준히 약물 또는 상담치료를 받으면 예전 상태로 회복 될 수 있다. 지난 달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총기 난사로 32명을 살해해서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던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 조승희 군도 한 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다. 자살과 타살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며 사실 백지 한 장 차이다. 한국은 정신질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려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이 공동 조사해 2005년 발표한 한국인의 질병 부담 보고서에 따르면 우울증(8위)은 상위 10대 질병에 속한다. 보건복지부의 한국인 질병부담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 질병부담 순위(10만 명당 인원수)는 1위 당뇨병(970) / 2위 뇌혈관 질환(937) / 3위 천식(709) / 4위 위 십이지장 궤양(676) / 5위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525) / 6위 간경화(407) / 7위 류머티즘(359) 8위 우울증(331) / 9위 간암(299) / 10위 위암(291)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자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다른 병과 달리 자신의 병을 노출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실제 통계보다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 자살률, OECD국가 중 가장 높아 정부의 2005년도 통계보고에 의하면 유명연예인이 자살한 것을 포함하여, 매일 33명이 자살을 하고 있으며 연간 모두 12,047명의 자살자가 있었다. 그래서 자살이 우리국민의 네 번째 사망원인으로 부상했고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국가 중 제일 높아 10만 명당 25명꼴이다. 지난 세기 동안 세계 1위를 고수했던 헝가리를 추월했고 지난 십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자살은 급증해, 현재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자살 위험이 가장 높은 사람은 우울증 환자로 자살자의 80% 이상이 우울증을 앓으며, 우울증 환자의 15% 정도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울증 환자는 전 국민의 5% 정도이며, 전 국민의 20% 정도는 일생동안 한 번 이상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추정되고 있다. 물론 자살이 모두 정신질환 때문만이 아니고 비정신병리적 자살도 있다. 그래서 자살은 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의지의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40 여 년간 진행된 급격한 사회 경제적 변화에 따르는 사회 안전망의 붕괴와 생명경시 풍조 등이 급격한 자살증가의 또 다른 원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우울증과 자살 사고를 가진 환자가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 개인이 마음이 약해서 생긴 병이니 강하게 마음만 먹으면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며 우울증을 하나의 병으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두통, 요통, 불면증, 식욕부진 혹은 기타 신체적 통증이나 만성적 피로감 등의 신체증상을 가지고 여러 병원을 수차례 들락거리거나 한의원에서 ‘기’가 약해져 있다는 진단을 받아 보약을 장기복용하고 있다가 증상이 악화된 뒤에야 뒤늦게 정신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가끔 경험하는 걱정, 불안, 의욕 저하, 기분 변화 등이 약한 정신질환의 징조일 수 있는데 상담받기를 권하면 대부분 ‘내가 미쳤다는 말이냐’고 화부터 내는 것이 보통이다. 과거 암 환자들이 암에 걸린 사실을 공개하길 꺼렸지만 치료방법이 알려지면서 요즘 암 환자들은 병을 대하는 태도도 개방적으로 바뀌었다. 나병(leprosy)을 한센씨 병으로 고친 뒤 그 병에 대한 두려움도 줄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듯이 정신질환자나 주위 사람들도 정신질환에 대하여 이 같은 자세를 갖지 않는 한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정신질환, 신체질환과 동등한 혜택 필요이번에 한미 FTA(Free trade agreement)의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던 김현종 박사의 사무실 문 앞에는 ‘Life is tough It’s tougher, if you are stupid(인생은 고달프다. 멍청하면 인생은 더 고달파진다)’라는 작은 문구가 걸려있다고 한다. 한미 FTA 체결로 통상 교역만이 아니고 미국의 의료문화와 생활 패턴들도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보험가입등 상거래에서 신체질환과 동등한 혜택을 받도록 하는 Parity Law도 우리나라에서도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정신과에 찾아가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감기에 걸려 병원에 찾아가는 것만큼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알고 있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사회적 편견이나 오해 때문에 정신과를 찾지 않는다면 인생은 더욱 고달퍼지거나 최악의 경우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다고 표현하거나, 찾아온 환자가 정신과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환자로부터 “이젠 누구를 정신병자로 보느냐?”는 핀잔을 들을지라도 정신과에 한번쯤 찾아가 상담해 보도록 권유해보는 것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충실이 이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의무(option)는 아니지만 심한 경우 인생을 자살로 마감할 수도 있는 환자가 찾아온 사람에 대한 의사의 최소한의 배려일 것이다. 정신과 치료도 다른 의미의 FTA(자유로운 또는 융통성이 있는 치료 계약 : Free 또는 Flexible treatment agreement)가 작동되어 적정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