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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 입력 2018.09.18 10:47
  • 기자명 홍지헌(한국의사시인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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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돌아오는 
금요일 저녁 
낯선 식당에 앉아 

10년 쯤 전의 저녁을 떠올리다가 
잠시 먹먹해지고
20년 쯤 전의 저녁을 떠올리다가
다시 풀어지고

토니 로마스, 마켓 오, 빵집 미고
이미 문 닫은 정든 장소들 생각나고
 
기민함일까 유연함일까 가벼움일까 
수익을 쫓아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자본의 생리를 궁금해 하면서

자본가가 되지 못한 아비로서
과분한 두 아들을 기다리는 
텅 빈 금요일 저녁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은 젊은이들의 시간이다.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의미에서 불금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우리 집 사정은 좀 다르다. 지방 근무를 하는 큰 아들이 KTX로 상경하고, 일산에서 근무하는 둘째가 비번이어서 나올 수 있으면 오랜만에 식구가 모두 모여 저녁을 먹는 가족의 날이 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집에서도 멀지 않고 KTX를 타고 오기도 어렵지 않은 여의도나 김포공항 쇼핑 몰의 낯선 식당에서 기다리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자주 가던 정든 패밀리 레스토랑들이 있었다. 이제는 유행이 지난 탓인지, 다국적기업의 영업 전략상 큰 장점을 상실한 탓인지 그 중에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 큰 아이는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추억을 느낄 만 한 장소를 만들어 놓으면 자꾸 망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외국계열의 브랜드로 프랜차이즈 영업을 하던 식당들이 수익률 제고를 달성하지 못하여 퇴출되는 자본의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내와 함께 식당에 앉아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온갖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 십 여 년 전 자신의 진로를 정하기 위해 애쓰던 시절의 애처로운 모습도 떠오르고, 이삼 십 여 년 전 어린 시절 그저 행복에 겨운 귀엽던 모습도 떠오르고, 결혼을 시켜야할 텐데 하는 장래에 대한 걱정도 함께 하게 된다. 지난 시절과 현재와 미래가 모두 근심 걱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분명 삶은 고뇌에 찬 것이 분명하고, 그나마 먼 과거는 미화되어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상태로 가서 정박해야하는지 알려주는 삶의 등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자본의 운용이라든가, 투자처의 물색이라든가, 재테크라든가 하는, 부를 창출하는 쪽으로는 재주가 없어 늘 중산층 언저리에 머물러있는 가장으로서 아들을 대할 때 면목이 없는 면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팽창되고 개발되던 시절에 청장년을 보낸 우리 세대로서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었는데, 잘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뒤늦게 느끼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 빠지게 되는 금요일 저녁은 불금이 아니라 텅 빈 금요일이 되고 말지만 그래도 힘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에게 과분한 두 아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모두 털어놓으면 아내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할 것이다. 아내에게 금요일부터 월요일 아침까지의 시간은, 아들이 가지고 온 밀린 빨래하고 다림질 하고 아들 짐 챙겨주고 새벽 밥 먹여 출근시켜야하는 불타는 주말이 되기 때문이다.  

[엠디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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