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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이 내린 천벌, ‘시필리스’

  • 입력 2018.09.19 11:15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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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매독(梅毒)을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라틴어 모두 시필리스(Syphilis)라고 한다. 그 어원은 그리스 신화의 「시필루스」라는 젊은 양치기 청년에서 시작된다. 시필루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의 제단을 몰래 없애고 그곳에다 자기가 섬기는 양치기의 신의 제단으로 삼았고, 그 때문에 아폴론의 노여움을 사서 저주와 천벌로 병에 걸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병이란 것이 매독이었던 모양인데, 그 당시에는 정확한 병명이 붙었던 것이 아니다. 그 청년의 병의 경과가 천벌로 혹독했기 때문에 그 청년의 이름 ‘시필루스’가 ‘시필리스’라는 병으로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폴론 신은 어떤 신이기에 이런 벌을 내렸는지를 잠시 알아보기로 하자. 아폴론은 제우스의 아들로서 그리스의 여러 신 가운데서도 으뜸 신에 속하며, 그 으뜸 신 가운데서도 태양과 음악과 의술 그리고 궁술을 관장하는 신인데다가 꽃미남이었기 때문에 많은 여성으로부터 프로포즈를 받는 유능한 신이다.
 
특히 아폴론의 활솜씨는 올림포스 최고의 명사수로 ‘신궁’이라는 말을 듣는 솜씨이었다. 그런데 활이라면 빼어놓을 수 없는 신이 에로스(큐피드)다. 에로스는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명에 따라 신이나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화살을 쏘는데, 이 화살에 맞는 신이나 인간은 사랑의 병을 열병처럼 앓아야 하는 것이다. 신궁인 아폴론의 눈에는 조그만 활을 들고 다니는 꼬마 신 에로스가 얼마나 가소롭게 보였던지 에로스에게 어린 것이 활을 쏘아댄다고 면박을 주곤 했다. 화가 난 에로스는 하늘로 날아 올라가 화살이 가득 든 화살 통에서 각기 쓰임새가 다른 화살 두 개를 뽑았다. 하나는 사랑을 목마르게 구하게 만드는 즉 상사병에 걸리게 하는 화살이고, 또 하나는 상대를 지긋지긋하게 여기게 하는, 즉 상대에게 혐오감이 일게 하는 화살이었다.
 
사랑을 목마르게 구하게 하는 사랑의 화살은 아폴론에게, 그리고 미움과 거부의 화살을 다프네라는 데네이오스 강가에 사는 강의 요정에게 쏘았다. 다프네는 강의 신 페네이오스의 딸이었다. 다프네는 댕기 하나로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묶고는 숲 속을 돌아다니면서, 사냥에 능한 처녀였으며 그녀에게는 구혼자가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남성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일밖에 모르는 요정이었다. 그런데다가 에로스의 거부의 화살을 맞았으니 다프네는 어떤 남성이 되었든 간에 처음 눈에 띄는 남성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고, 사랑의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어떤 여성이건 간에 처음 눈에 띄는 여성에게 홀딱 반해 상사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래서 아폴론은 에로스의 화살을 맞고 처음 보는 다프네에게 홀딱 반해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앞일을 헤아리는 예언의 신 아폴론의 예언력도 물거품이 되고 오로지 자신의 욕망이 이루어지기만을 즉 다프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아폴론이 다가가면 다프네는 달아났다. 바람보다 빠르게 달아나기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결사적으로 달려가는 아폴론에게 잡히는 지경에 이르자 다프네는 아버지인 강의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했다. 
“아폴론에 잡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저를 월계수가 되게 하여 주세요.” 이 기도가 끝나자마자 다프네는 월계수로 변했다.

‘아폴론과 다프네(1622-25)’, 베르니니,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
‘아폴론과 다프네(1622-25)’, 베르니니,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

그러자 아폴론은 “내 아내가 될 수 없게 된 그대여, 대신 백성들이 소리 높여 개선의 노래를 부를 때, 그대는 승리자들과 함께할 것이고, 그대의 잎으로 만들어 승리자들의 머리에 씌워 줄 월계관 또한 시들지 않으리라!”라고 하였다. 아폴론이 이런 약속을 하자 월계수는 가지를 앞으로 구부리며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듯이 잎을 흔들었다.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 1598-1680)라는 조각가는 이러한 상황을 ‘아폴론과 다프네(1622-25)’라는 주제로 조각하였는데, 이전 시대의 근엄하고 늘 부동자세로만 취해 자신의 균형 잡힌 몸매만 자랑하던 고전적인 조각과는 달리 인간의 휘몰아치는 감정과 몸의 움직임을 큰 스케일로 묘사해낸 다분히 바로크적인 조각을 하였다. 그 어쩔 수 없는 두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자기 나름대로의 스타일로 잘 표현한 걸작을 만들었다.

아폴론에게 이렇게 슬픈 일이 일어나는 한편에 이런 사정을 모르는 시피루스는 눈치도 없이 아폴론의 제단을 자기네 양치기 신의 제단으로 했으니 아폴론 신의 노여움이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가혹한 천벌을 내렸다는 것이다. 즉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면 시필루스는 죽어서 매독을 남긴 셈이다. 원래 시필루스라는 이름은 수스필리엔(Susphilien)에서 파생된 말로, 돼지나 양을 치는 천한 녀석이라는 의미다. 

매독을 둘러싼 신화는 그렇다 하고 매독의 의학적인 역사를 보면, 1530년, 베로나 태생의 「지로라모 프라가스톨」이 매독을 보고 「시필리스, 일명 프랑스병(Syphilis sive morbus Gallicus)」이라는 의학시(醫學詩)를 발표한 것이 기록으로는 처음이다. 

신화와 같은 경위 시필리스라는 병명은 생겨났지만 의학역사에서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여 선물로 받아온 것이 담배와 매독이라는 것이다. 콜럼버스의 부하들이 아메리카에 상륙해보니 토인들 코에서 연기가 나와 뱃속에 불이 났다고 생각하고 물을 얼굴에 끼얹었더니 불난 것이 아니라 담배라는 것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토인들은 왜 담배를 피웠는가 하면 매독으로 생기는 고통을 달래느라고 피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원들의 유럽귀국과 더불어 매독은 담배연기와 함께 전 유럽에 퍼져 나갔다. 구라파로 쳐들어갔던 몽고족이 왜 멸망 했는가 하면 닥치는 대로 부녀자들을 겁탈해 성행위를 했기 때문에 모두 매독에 걸려서, 그로 말미암아 몽고족은 쇠약해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비너스 탄생(1879)', 부그로, 파리, 오르세 미술관
‘비너스 탄생(1879)', 부그로, 파리, 오르세 미술관

이렇게 매독과 같이 성행위로 번지는 병을 성병이라 하는데 그것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인과 관계를 가진 후에 생긴 병이 성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미의 상징인 venus의 이름을 따서 veneral disease, V. D.라 이름 하였던 것이다.

화가 부그로(A.W. Bouquereau 1825-1905)는 ‘비너스 탄생’이라는 주제의 그림을 그렸는데, 자신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의식해 사람들에게 은근히 몸매를 과시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그림의 비너스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풍만한 육체를 S자형으로 구부려, 보는 사람의 시선을 유혹하는 ‘유혹의 비너스’이다. 즉 에로틱한 관능미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 유혹적인 몸매를 지녔기 때문에 남성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지금도 이 그림이 전시되고 있는 미술관에서는 이 그림 앞에 남성들이 머무는 시간이 제일 길다는 것이다. 

원래 비너스 여신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여러 남신의 눈길을 끌어 본의 아니게 부정(不貞)한 여신이 되었다. 그래서 성행위로 전염되는 병을 비너스의 병이라 해서 VD(veneral disease)라고 하며, 성병 중에서도 시필리스, 매독이 가장 오래된 병이며 또 가장 많은 사람이 감염된 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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