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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의 다리와 상피병

  • 입력 2018.10.23 10:35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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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이라면 단연 헤라클레스(Herakles)를 꼽게 된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치고 있어 그리스 신화가 각국에 보급됨에 따라 이제는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다. 신화에서는 불굴의 용기와 호쾌하고 초인간적으로 활약하는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켜 로마에서는 ‘헤라클레스Hercules’, 영어로도 ‘헤라큘리즈 Hercules’라고 부르는 등 전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다.

의학에서는 상피병(象皮病 Elephantiasis)을 일명 헤라클레스 병, Morbus Herculeus라고 하는데 그것에는 그러할 사유가 있다. 우선 기원전 4세기경의 조각가 리시포스(Lysippos)의 작품 ‘파르네제의 헤라클레스’를 보면 우람한 체격과 근육질인 몸매에 근력 말고도 다른 능력이 얼마든지 있을 것으로 보이고 그의 뼈와 피부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코끼리의 피부처럼 단단하고 강인해 보인다. 그래서 다리가 부어 코끼리 다리 같이 보이는 병을 ‘헤라클레스 병’이라 했던 것이다.

신들은 몸을 이렇게까지 발달시킬 필요가 없는데 왜 그가 이러한 몸을 만들어 힘을 써야 하였는가를 그의 출생에서부터 더듬어 보기로 한다. 페르세우스의 엘렉트리온 왕에게는 아름다운 알크메네라는 딸이 있었다. 이 미녀는 결혼하기로 정한 안피트리온이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가 출타 중이라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우스신이 우연히 이 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짝사랑을 하게 되어 어떻게 해서든지 이 미녀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궁리 끝에 궁여지책으로 제우스는 미녀의 약혼자인 안피트리온의 모습으로 변하여 그날 밤 결혼하여 속임수로 미녀를 품었다.

남의 신부를 속임수로 가로챈 제우스는 재미를 톡톡히 본 대가로 미녀에게 사랑의 씨를 뿌려 임신시켰으니 그 아기가 바로 헤라클레스다. 남편이 바람피워 아기를 낳은 것을 안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갓난아기 헤라클레스를 죽여 버리기 위해 두 마리의 큰 뱀을 보내서 자고 있는 아기를 물어죽이게 했는데, 아기 헤라클레스는 덤벼드는 두 마리의 뱀을 두 손에 한 마리씩 움켜잡아 죽여 버린 것이었다. 

이 소년이 자람에 따라 누가 보아도 신의 핏줄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키가 보통사람보다 뛰어나게 크고, 눈의 광채는 불을 뿜는 듯하였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이 소년은 성질이 거칠고 돌발적인 폭행을 되풀이하는 개구쟁이로 되어 갔다. 

어느 날 하프(harp) 선생이 헤라클레스가 하프를 잘못 탄다고 때리자 분을 참지 못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악기로 선생을 때렸더니 어찌나 기운이 센지 선생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아버지는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헤라클레스를 키타이른 산에 있는 목장으로 보내어 가축을 지키는 일을 시켰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아름다운 여성이 헤라클레스를 찾아왔다. 한 여성은 화려한 옷을 입은 악덕(惡德)과 허영, 어리석음의 여신이었고, 검소한 옷을 입은 여성은 미덕(美德)의 여신이었다. 이 두 여신은 헤라클레스에게 우리 둘 중에서 누구를 사랑하겠는가 물으니 헤라클레스는 검소한 차림을 한 미덕의 여신을 택한다고 대답하자 등 뒤에서 한 마리의 사나운 사자가 나타나 목장의 암소 한 마리를 죽이는 것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이 사자를 잡아 죽이려고 뒤따르다 보니 두 여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이런 경위로 헤라클레스는 안이한 기쁨의 생활을 버리고 스스로 택한 고행의 길로 들어섰다. 

그림 2. 카라치 작: '기로에 선 헤라클레스'(1597), 나폴리, 카포디본테 미술관
그림 2. 카라치 작: '기로에 선 헤라클레스'(1597), 나폴리, 카포디본테 미술관

이 장면을 그림으로 한 것이 스페인의 화가 카라치(Annibale Carracci 1560~1609)의 ‘기로에 선 헤라클레스(1597)’이다. 원래 이 그림은 로마의 파르네제 궁의 카메리노의 천정화이었던 것으로 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있는 헤라클레스는 좌측의 여성은 미덕의 여신이며, 우측은 악덕의 여신이다. 이 이야기는 기원전 420년경에 철학자 프로디코스에 위해 기술된 교훈적인 우화이다.

사자를 찾아 나선 헤라클레스는 키타이론 산을 헤매다가 50명의 아름다운 딸을 거느리고 있는 테스테오스 왕이 사는 골짜기로 들어가서 그 왕궁에서 50명의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차례차례로 재미를 보다가 50일을 허송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놈의 사자를 발견하여 올리브나무 몽둥이로 사자를 때려죽이고 그 가죽을 벗겨서 옷 대신 허리에 두르고 다니게 되었다. 그 후에 헤라클레스는 테베(Thebes)에 쳐들어온 에리기누스 왕의 군대를 무찔러서 테베라는 도시국가를 구해냈다.

어느 날 테베에 가까운 들판에서 헤라클레스의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으며 헤라클레스는 언덕 위에 앉아서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때 난데없이 검은 그림자가 태양을 가리며 멀리서 음산한 소리가 들려오더니(幻聽) 헤라클레스의 머리위에 와서 멈췄다. 그 순간 헤라클레스는 갑자기 비틀거리고 입에서 거품을 뿜으며, 눈을 치뜨고 소리 질러 “적이 쳐들어온다. 알고스의 에우리스페우스가 쳐들어와서 우리를 잡아 노예로 만들려고 한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노예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소리치면서 활에 화살을 먹여 자기 큰 아이를 향해 쏘아 아이의 몸을 꿰뚫었다. 놀라서 달아나는 다른 아들에게 또 활을 쏘아 자기아들 셋과 다른 아이 둘을 죽이고 말았다.

이때 아테나 여신이 달려와 헤라클레스의 머리를 큰 돌로 내리치자 그는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이를 의학적으로 설명한다면 간질 발작을 일으켜서 환시(幻視), 환청(幻聽) 때문에 무고한 아이들을 죽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로 인하여 실의에 빠지게 된 헤라클레스는 자기 죄를 씻기 위하여 에우리스페우스 왕의 노예가 되어 유명한 열두 가지의 위험한 모험을 하게 되는데, 그중 열한 번째의 무용담이, 아트라스 얘기에 나오는 헤스페리데스(Hesperides) 동산의 황금 사과를 따온 얘기이다.

헤라클레스의 행적을 살펴볼 때에, 때때로 머리가 이상해져서 아들을 죽이고 아내인 메가라를 버리고(일설에는 죽였다고 함), 또 친구인 이피토스를 죽였고, 그러다가도 제정신이 들면 자기 행위를 뉘우쳐서 자책감으로 일부러 고행(모험)을 하게 되는 점으로 미루어 간질의 발작임엔 틀림없을 것 같다.

혹시 영웅의 필수조건인 술로 인한 정신병이었을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만약 알코올 중독성 정신병이라면 열두 가지의 모험을 다 수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3년간의 노예생활을 마치고 소아시아의 여왕 온파레스 밑에서 일하다가 여왕과 정을 맺어 아기를 얻었다. 
여기서의 생활도 정상인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자기부인 옷을 입고선 좋아했고, 계집종과 함께 물레질하기를 즐겼다. 그러다가 자가 중독에 걸렸는데, 병으로 썩어가는 자기 몸을 산으로 운반시켜 불타는 장작더미 속으로 뛰어들어 분신자살하고 만다. 그러나 그 영혼은 하늘나라로 올라가 여신 헤베와 결혼했다.

헤라클레스의 피부가 코끼리 피부같이 단단하다해서 상피병을 헤라클레스 병이라고 해왔다. 그러나 상피병은 휠라리아(絲狀菌)의 감염으로 생기는 풍토병으로, 모기에 의해서 감염된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그 환자의 다리가 마치 코끼리 다리처럼 거대하게 부어오르기 때문에 붙은 병명이다. 따라서 정확히 표현하자면 상각병(象脚病)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예부터 상피병이라 해온 것은 헤라클레스의 피부가 코끼리 피부처럼 단단하다는 뜻에서의 헤라클레스 병이라 한 것에 영향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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