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지도자들은 어떻게 건강을 유지했을까?

- 영조·덩샤오핑·윈스턴 처칠의 사례를 중심으로

  • 입력 2018.11.06 11:03
  • 수정 2019.04.02 17:43
  • 기자명 황종택(녹명문화연구원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엠디저널]식욕, 수면욕, 성욕은 생명체의 기본 욕구이다. 인간 또한 그 범주에 든다.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우주의 삼라만상은 음양으로 이뤄져 있다. 하늘과 땅, 밝고 어두움, 상하좌우, 강하고 부드러움, 길고 짧음, 물과 불, 남자와 여자 등 음양이 잘 조화돼야 만물이 번성하고 화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태극기에도 반영된 ‘주역’에 따르면 건곤(乾坤), 곧 하늘과 땅의 구별이 정해졌다. 서로 상대적인 것이 교감해 팔괘(八卦) 형상이 나타난다. ‘건’의 법칙은 남성 격인 강함과 진취성, 곤의 법칙은 부드러움과 포용을 이룬다. 남성과 여성을 하나의 소우주로 보고 남녀 결합을 대우주인 천지간의 상호작용으로 보았다. 

팔괘의 조합인 64괘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바는 음양이 상승하고 있는 ‘수화기제(水火旣濟)’괘이다. 남녀 결합, 생명창조다. 여자를 위에 놓고 남자를 아래에 둔 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황제내경’에 “생명이 오게 하는 기본 물질을 정(精)이라 한다.(生之來謂之精)”며 “남녀의 정이 결합할 때 깃드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兩精相搏謂之神)”고 밝힌 바와 맥을 같이한다.

식욕·수면욕·성욕 등 적절히 안배해 건강 유지

▲ 영조 어진 (사진제공: 구글)
▲ 영조 어진 (사진제공: 구글)

이처럼 남녀 간 건전한 사랑은 인체의 좋은 진액을 생성해 무병장수에 도움된다. 반면 지나친 결합은 정기(精氣)를 해쳐 단명에 이르게 한다. 물론 인간 수명은 섭생과 기후, 가족력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성(性)의 영향도 적지 않다는 의미다.   

그럼 후궁들이 적잖았던 조선시대 왕들을 포함 세계 지도자들은 섭생을 비롯, 어떻게 건강을 유지했을까. 누구보다 영조(1694∼1776)를 눈여겨보자. 조선 임금 가운데 최장수(82세), 최장기(52년) 재위를 자랑하는 영조. 조선 왕의 평균수명이 47세였으니 2배 가까이 산 셈이다. 영조는 적게 먹는 대신 끼니를 거르지 않고 식사시간을 잘 지킴으로써 장수했다. 검소한 생활을 실천했던 그는 하루 다섯 번의 수라 가운데 낮것상(점심)과 밤참을 들지 않았다. 회의 중에도 식사 때면 수라부터 받을 만큼 규칙적으로 식사했다. 다른 임금에 비해 흰 쌀밥보다는 잡곡밥을 더 좋아했고, 술과 후궁도 멀리했다. 영조는 녹두묵에 고기볶음과 미나리, 김 등을 섞어 무쳐 균형 있는 영양소를 갖춘 탕평채를 즐겼다.

조선시대 환갑을 넘긴 왕은 영조를 포함해 태조(74), 정종(63), 광해군(67), 숙종(60), 고종(67) 등 모두 6명이다. 허약체질인 정종은 숨지기 2년 전까지 날마다 보행격구(땅에 구멍을 파고 공을 집어넣는 경기)를 즐기며 체력을 다졌고, 숙종은 검은콩과 검은깨, 오골계, 흑염소 등 ‘검은 식품’을 좋아했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고종은 맵거나 짠 음식을 멀리하면서 고기보다 채소를 즐겨먹었다.

▲ 덩샤오핑과 가족 (사진제공: 바이두)
▲ 덩샤오핑과 가족 (사진제공: 바이두)

단명 조건에도 긍정적 생각·일에 몰두한 성격

외국 지도자 중 덩샤오핑(1904∼97)을 만나보자. 88세까지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날마다 냉수마찰도 즐겼다. 식사 때마다 땅콩과 해바라기씨를 안주 삼아 마오타이주나 쌀로 빚은 소흥가반주, 보약 술로 불리는 장수장락주, 고량주 등을 마셨다. 말년에도 소일거리를 찾아 즐겼기 때문에 치매가 오지 않았다. 카드놀이의 하나인 브리지게임을 자주 했고, 축구와 배구 생중계는 빼놓지 않고 봤다. 무협소설과 경극 보기, 당구치기도 오래된 취미였다.

서구에선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단명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두루 갖췄지만 91세까지 살았다. 잠들기 전까지 입에 시가를 물었던 흡연, 위스키를 물처럼 마셨다. 또 다혈질 성격 탓에 불끈불끈 화를 잘 냈고 과식하는 버릇 때문에 비만과 혈압에 시달렸다. 그러나 처칠은 오래 살았을 뿐만 아니라 정력적으로 일했다. 

▲ 윈스턴 처칠의 승리의 V자 (사진제공: 구글)
▲ 윈스턴 처칠의 승리의 V자 (사진제공: 구글)

전문가들은 처칠의 자신감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곧 장수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한다. 그는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에 런던이 폐허로 변해가는 데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렸다. 문학과 미술 등 예술활동에 힘써 뇌의 노화를 막을 수도 있었다. 아침 식사 후 꼭 1시간 씩 수면을 취하기도 했다.   

가장 오래된 중국 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은 건강법에 대해 일찍이 이렇게 알려주었다. “(무릇 양생의 도리를 잘 알고 고상한 품성과 덕을 갖추었던) 성인은 항상 사람들을 경계했다. 그리고 사계절의 바르지 못한 기운을 적절한 때에 피하도록 주의시켰다. 편안한 마음에 정신은 체내에 잘 보존돼 있으니 병이 어떻게 들겠는가(夫上古聖人之敎下也 皆謂之虛邪賊風 避之有時 恬憺虛無 精神內守 病安從來).”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