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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중에 경험하는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

  • 입력 2018.11.09 10:49
  • 기자명 전진용(국립정신건강센터 의료지원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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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전경 (사진제공: 청와대)
청와대 전경 (사진제공: 청와대)

[엠디저널]많은 사람들이 흔히 남북한이 똑같은 언어와 한글을 사용하기 때문에 의사소통 상의 어려움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남북이 분단되고 흐른 수십 년의 세월과 정치적/문화적 차이는 남북의 언어로 하여금 큰 차이를 보이게 했으며, 이는 진료실에서도 예외일수 없다.

1. 남북한 의료용어의 차이
남한 의사가 북한 의사에 비해 외래어를 많이 쓴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탈북민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원룸, 셀프서비스와 같이 한국에서 널리 쓰이는 외래어에 대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리곤 한다. 마찬가지로 탈북민을 진료하다보면 가글이나 엑스레이와 같은 비 전문용어인 외래어를 잘 몰라서 탈북민들이 혼란을 겪는 경우도 빈번하다.
우선 영어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의 의학 용어와 순 우리말과 러시아어가 많이 쓰이는 북한의 의학용어는 작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탈북 의사들도 으레 남한의 의사 면허 취득 과정에서 용어의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이러한 차이는 의료인들간의 교류를 통해 추후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또한 항문(남)과 홍문(북), 이빨(남)과 이발(북) 등의 기본적인 명칭도 차이가 있으며, 이 역시도 남북한의 교류를 통해 추후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남북한 상호간에 환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다. 환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다면 잘못 진료를 하거나 아픈 증상에 대해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며, 이는 진료의 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래 표는 진료 현장에서 사용하는 남북한의 용어 차이의 예를 보여주고 있다. 아래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얼핏 보기에는 이해할 수 있지만 자세한 설명이 없다면 이해가 어려운 용어들도 상당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를 좁혀나가는 것이 향후 남북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2. 남북한 증상 표현의 차이
진료에 있어서는 단어 하나도 중요하지만 질병에 대한 표현은 더 중요한 요소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서 진료를 받는데 ‘체했다’는 표현이나 ‘담이 결린다’는 표현을 하면 이를 미국 의사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은 같은 문화권이라 볼 수도 있지만 표현에 있어 언어적/문화적 차이는 단어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1) 문화에 따른 표현 차이
탈북민들의 증상 표현을 통해 살펴보면 증상 표현에 있어서도 언어의 뉘앙스나 문맥의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병 보러 왔다(진료 보러 왔다)’, ‘일 없다(괜찮다)’는 등의 맥락상으로 유추하기 비교적 쉬운 것들도 있지만, ‘눈이 깔꺊嗔構?피진다(눈이 건조하고 충혈 되었다)’등의 표현처럼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 까지,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진료에 있어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문맥상 이해가 가더라도 다시 한 번 자세히 물어보고 환자도 마찬가지로 이에 최대한 협조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래는 문화적 차이를 보이는 증상 표현의 예시이다.

2) 장기나 부위 중심의 표현
탈북민들은 증상을 표현할 때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남한 사람이 일반적으로 ‘배가 아프다’라고 표현한다면, 탈북민들은 ‘간이 아프다’, ‘담낭이 아프다’ 등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면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이들이 생각하는 간이나 담낭이 남측 의료인들이 생각하는 간이나 담낭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이것은 북한 내부에서 내려오는 민간요법이나 양한방이 혼재되어 있는 북한의 복잡한 의료제도 때문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탈북민이 증상을 표현할 때 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신체 검진을 하고 문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3) 질병의 만성화
탈북민을 진료하다보면 자신의 질병이 오래되었고, 만성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이는 최근 열악한 북한 의료의 반영일수도 있고, 심리적 원인의 신체화 증상에 대해 탈북민들이 신체적 증상으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병력 청취 과정에서 이러한 점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4) 과도한 신체 증상 표현
탈북민을 진료하다 보면 과도한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탈북민들은 북측 거주 시절이나 탈북 과정에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그것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빈번해 이를 남북한의 차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북한의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충분한 보건의료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북한 사회가 억압되어 있기에 심리적인 부분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해 이것을 신체적 증상으로 표출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북한 응원단 (사진제공: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북한 응원단 (사진제공: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3. 문화적 차이 극복 방안

1)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
남북한 진료실에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선 생각해야 할 점은 남북한이 다르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70여년의 시간동안 남북한이 떨어져 있으면서 많은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에 환자도 의사도 진료실에서 만나면 이러한 차이를 잊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진료실에서 남북한이 만났을 때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고, 서로 못 알아듣는 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향후 교류를 통해 이러한 점이 극복되어야 하겠지만, 우선은 서로가 다르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탈북민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남한 의사는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남한 환자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설명을 하고, 탈북민은 자신이 못 알아들었을 수 있지만, 문맥상 뜻을 짐작하고 질문을 하지 않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앞서 기술했듯이 남북이 진료실에서 만나면 생각보다 많은 차이가 존재하고 오해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따라서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설명하고 질문하며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2) 남북한의 상호 이해와 참여가 필요하다
상호 이해를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료진은 의료진대로 진료실에서의 남북한 상호 소통에 있어 어려운 점들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의료진들이 향후 같은 실수나 혼란을 반복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탈북민들 역시 자신들의 혼란이나 어려움을 공유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향후 남북한 의료 교류에서 서로가 만났을 때 생길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조금 더 심도 있는 논의가 가능하다. 추후 남북한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남북 의료진들이 만나 남북한 상호 진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화적인 혼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통일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3) 지속적인 교류가 필요하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그 나라 사람들과 의사소통 없이 책으로만 외국어를 배운다면 그 한계는 명확할 것이다. 지속적인 교류 없이 문화적인 차이가 어떻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현실에서 장벽으로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진료실에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탈북민을 많이 진료한 의료진이나, 탈북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시간이 변화함에 따라 그들이 이야기하는 지식도 낡은 지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언어와 문화는 계속 변화하는 것이다. 대화 없이 문헌이나 매체에만 의존해서는 문화적인 이해를 가져올 수 없다.
남북한의 의료진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것은 질병에 대한 공동 대응이나 학술 교류 등 의학적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70년간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차이가 발생한 진료실 내에서의 문화적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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