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OPINION 전문가 칼럼 심찬섭
내시경 개발과 발달의 역사 VII: 광섬유 그리고 광섬유스코프의 등장-2

섬유광학의 발전: Van Heel, O’Brien

[엠디저널]Moller-Hansen 이후 두 과학자들이 섬유광학의 새로운 선구자들이 되었다. 한명은 독일 물리학자이자 광학교수인 Abram Van Heel (1899-1966)1이고 또 다른 한명은 미국의 Brian O’Brien2이다. 그들은 단단히 결합되어있는 광섬유의 마찰로 인한 전반사 손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O’Brien은 로체스터 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분석가로서 일하였고 그 후, American Optical Corporation의 연구책임자로 임명되어 영화관 대형스크린 설계에 온 힘을 쏟았다. Van Heel은 그의 친구인 O’Brien의 제안을 받아들여 Moller-Hansen이 처음 시도해 보았던 광섬유를 굴절률이 낮은 물에 담궈 전반사를 보호하는 발상을 더욱 발전시키려 하였다. 그는 광섬유를 금속으로 코팅처리를 해보았지만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그러나 1952년에 Van Heel은 길이가 약 50cm이고 400개의 광섬유로 이루어진 광섬유다발을 통해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하였다. 1953년 7월, 그는 독일과학저널 “De Ingenieur”에 길이가 20cm이고 지름이 약 0.1cm인 플라스틱섬유를 통한 이미지 전달 방법에 관한 논문을 게재하였다.

Basil Hirschowitz

Basil Hirschowitz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동부의 한 농촌마을에서 태어나 Witzwatersrand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였다. 그에 의하면 대학교에서 Schindler의 내시경으로 시행된 위내시경검사를 처음으로 목격하였다고 한다. 고향을 떠나 영국에서 공부를 이어가던 중 Sir Francis Avery-Jones가 그를 Central Middlesex Hospital에서 받아들였다. 그때 Avery-Jones는 병원에 소화기내과를 구성하였고 훗날 전세계적으로 인정되었다. 이곳에서 Hirschowitz는 첫 내시경 검사를 시행하였다3. 그의 주된 관심사는 위액 분비물이였고 특히 펩시노겐에 관심이 많았다. 그 후, 미국으로 옮겨 Michigan 대학교 소화기내과 교수인 H. Marvin Pollard 밑에서 일하며 공부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여러 임상연구를 실시하였고 영국에서는 그의 가치가 매우 알려졌지만 미국에서는 그러지 못하였다.

그림 1. Larry Curtiss가 유리섬유 발명을 위해 연구하는 모습

내시경에 끝없는 궁금증을 가진 Hirschowitz는 내시경 검사를 시행할 때 그 모습을 모니터에 띄워 볼 수 있게끔 노력하였지만 그때의 부족한 과학 기술로 인해 실패하였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Hopkin과 Kapany를 만나러 런던에 방문하였다4. 이들은 광섬유다발을 통해 이미지를 전달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전달된 이미지가 밝지 않고 이물감이 있어 보였다.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미시간 대학교 Optic Institute에서 일하며 섬유광학 발전에 힘을 쏟았다. Kapany가 미국으로 옮겨왔지만 미국 옵티컬펌 바슈롬으로 이적하면서 안타깝게도 Hirschowitz와 함께 하지 못하였다. 미시간 대학교 Wilbur Peters교수의 추천으로 유망한 의대생인 Larry Curtiss가 Kapany를 대신하여 그와 함께 연구를 이어나갔다. (그림 1) 그리고 그들은 많은 제작사의 도움을 받아 유리섬유를 제작하는데 성공하였고, 이것을 ‘코닝글라스’라고 명명하였다. 하지만 이 유리섬유도 전 광학섬유처럼 빛번짐이 심해 전반사를 방해하여 이미지 손실이 컸다. 많은 시도 끝에 Curtiss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었다2. 그것은 바로 굴절률이 높은 광학섬유를 굴절률이 낮은 유리관에 넣어 융합시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중심은 굴절률이 높아 빛과 이미지는 잘 전달되고 절연처리가 된 겉유리가 빛번짐을 막는 유리섬유가 만들어졌다. Hirschowitz가 말하기를 Curtiss가 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표했을 때 동료 전문가들은 다 비웃었다고 한다5. 하지만 그들은 단념하지 않고 계속 연구를 한 결과, 10m 길이의 유리섬유 제작을 성공하였다고 한다.

▲ 그림 2. Curtiss와 Hirschowitz의 유리섬유

이 연구는 1956년 12월 말에 마무리 되었고 Hirschowitz는 그의 동료인 Peters과 Curtiss와 함께 위내시경에 사용될 유리섬유를 특허 신청하였다. 그리고 1957년 5월 Curtiss는 광섬유를 유리로 절연코팅하는 방법도 특허 신청하였다. 그 해, Hirschowitz는 그의 내시경을 대학 동기들에게 발표하였고 그의 동기인 Keith Henley에 의하면 내시경이 과도하게 자란 지렁이 같다고 묘사하였다. 그는 용기를 내어 그 두꺼운 내시경을 삼켜보았지만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였다고 고백하였다. 며칠 뒤, 그는 위궤양 환자에게 그의 내시경을 사용하여 검사를 진행하였다. 1958년에 광학내시경에 관한 첫 의학보고서가 발행되었고 그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경제적 도움을 준 분들이 언급 되었다고 한다6.(그림 2)  

▲ 그림 3. Hirschowitz의 첫 광학내시경
▲ 그림 4. Hirschowitz가 그의 내시경을 사용하여 검사하는 모습

1961년에 Hirschowitz는 그의 첫 광학내시경을 특허 받았고 1973년에 Curtiss도 광섬유 코팅법을 특허 취득에 성공하였다. (그림 3,4)

Hirschowitz는 여러 제작자에게 광학내시경의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American Cystoscope Maker만 관심을 가졌다. 1960년에 첫 시제품이 제작되었고 1961년부터 ACM 4990 모델로 판매를 시작하였다. 점차 소화기내과에서 그의 광학내시경을 사용하게 되었다. 초반에 관심도 주지 않던 Eder company도 광섬유 원리로 만든 위대장내시경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그림 5) 그가 사용하던 첫 광학내시경은 워싱턴 Smithsonian Institution에 기증되었다.

▲ 그림 5. Hirschowitz가 사용하던 35mm Reflex Exacta 카메라

광학내시경의 발전

첫 광학내시경을 Mark I 이라고 이름 짓고 잇따라 후속 모델들을 Mark II, III, IV로 식별되었다. 마지막으로 Hirschowitz의 위, 십이지장 내시경을 Mark V라고 불렸다. 그 후 1960년 중반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더욱 개선된 광학내시경을 제작하기 위해 힘썼다. 장비의 끝부분은 반연성 내시경과 비슷하게 백열등, 프리즘 그리고 대물렌즈로 구성되어 있었다. 편향각은 약 90도이지만 반연성 내시경보다 시야가 좁았다고 한다. (그림 6,7)

▲ 그림 6. 196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사용된 A.C.M.I 광학내시경

첫 광학내시경의 두께가 약 24마이크론인 광학섬유가 260,000개로 이루어져 있고 전체적인 두께는 약 12mm 정도 되었다. 이 장비는 반연성 내시경처럼 백열램프로 빛을 비추며 검사를 하는데 백열램프가 내시경을 과열시켜 점막을 태우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몇년 뒤, 무열광 램프가 발명되었고 내시경에 백열램프 대신 사용되었다7.

▲ 그림 7. Hirschowitz의 광학내시경의 머리와 끝부분

항상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던 Schindler8는 이번에도 광학내시경에 반기를 들었다. 첫번째로 내시경 삽입을 쉽게하고 조종도 정확하게 하기 위해 내시경의 머리 부분(proximal segment)은 잘 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두번째로는 Storz의 반연성 내시경과 비교해보면 광학내시경의 초점거리가 짧고 시야가 좁아 이미지 전달이 뚜렷하지 않고 흐려진다고 언급하였다. 이 문제들은 금방 해결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 바르셀로나 산파우병원과 다른 병원에 의하면 장비를 세정하는데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장비가 완벽히 방수가 되지 않아 자주 망가졌고 그래서인지 장비의 비싼 가격에 비해 수명은 현저히 짧았다. 그래도 광학내시경은 널리 사용되었고 이 문제들은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다음호에 계속>

참 고 문 헌
1) Van Heel A.C.S. A new method of transporting optical images without aberrations. Nature 1954; 1954; 173: 39.
2) Hecht J. City of Light. The story of fiberoptic. New York,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9.
3) Hirschowitz B.I. A personal history of the fiberscope. Gastroenterology 1970; 76: 864-869.
4) Hirschowitz B.I. History of fiberoptic endoscopy (reply) Gastroenterology 1970; 78: 1123.
5) Le Fanu, J. The Rise and Fall of Modern Medicine. New York, Carroll & Graf, 1999: 195-196.
6) Hirschowitz B.I., Curtiss L.E., Peters C.W., Pollard H.M Demonstration
of a new gastroscope the “fibroscope”. Gastroenterology 1958; 35: 50-53.
7) Elewaut A., Cremer M. The history of gastrointestinal endoscopy-the European perspective. in Classen M., Tytgat, G., Lightdale Ch. Gastroenterological Endoscopy. Stuttgart, Thieme, 2002: 7-30.
8) Schindler R. Gastroscopy. The endoscopic study of gastric pathology.
 2nd edition. New York, Hafner, 1966: Introduction, p.XXXIV.

Reference Book : Vilardell, F. (2006). Rigid Oesophagoscopy.
In Digestive Endoscopy in the Second Millenium From the Lichtleiter to Echoendoscopy. Thieme.

심찬섭  emd@mdjournal.net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심찬섭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