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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장면’ 시청도 자제해야

미묘한 정신건강

  • 입력 2018.11.16 11:07
  • 수정 2019.02.19 16:49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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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요즘 내가 살고 있는 LA는 온통 주위가 불바다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TV화면을 통해서 나무들이 쓰러지고 집들이 타는 장면들을 본다. 신문에는 어린 꼬마가 자신의 타다 남은 침대머리 철판을 손에 들고서 잿더미 속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다. 

불길과 멀리 떨어져 있고 어른인 내가 이토록 마음이 불안한데 불 가운데에 싸여있는 숲속의 집 가족들 마음은 얼마나 초조할까 상상해본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힘들어 질 것이다. 입 속이 마르고 식욕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근육이 긴장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당기게 되면 등이 아파진다. 

또 두통도 오게 된다. 개체가 위험을 느끼는 순간에 두뇌의 근저부에서 ‘싸우기 아니면 달리기’(Fight or F-light Reaction)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수만 년 전에 우리의 조상이었던 양서 동물때부터 있었던 원초적 보호 반응 때문이다. 이것은 자율 신경계의 역할이므로 우리가 임의로 조절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런 ‘스트레스 반응’이 심할 때에는 가능하면 그 원인을 피해야 한다. 어른이건 아이건 너무나 오랜 시간동안 TV 화면의 불타는 장면을 보고 있지 말자.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게다가 한국에서 숱한 난리를 겪었던 노인들에게는 너무나 심한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 날 수도 있다. 이것을 ‘외상후 스트레스 증세’(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 부른다. 즉 과거에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만한 심한 외상을 입었거나, 남이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경우에 그 유사한 사건이 있을 때면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나서 괴롭히는 증세이다.

그래서 6.25 전쟁을 겪었던 분들은 불길을 보면 죽은 가족들의 얼굴이 되살아 날 수 있다. 이런 분들은 겉으로는 냉정하고 상관을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지만 혈압이나 맥박을 재어보면 상당히 증가되어 있는 수가 많다. 장기가 흥분되어 있는 상태(High Arousal State)이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인 경우도 마찬가지로, 과거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기억이나 심하게 지진으로 놀라고 파괴되었던 기억들이 다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마치 어느 날 벌레에게 한방 물리게 되면 과거에 곤충에게 물렸던 모든 자국들이 모두 근질근질하게 되살아나듯이, 그래서 우리 몸은 실제 물린 것보다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러야 될 때도 있다. 

아이들에게 너무 심한 충격이 오면 어른들과는 달리 반응한다. 우선 부모의 반응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부모는 이들에게 하나님보다도 더욱 믿을만한 절대자들이기 때문이다(비록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지만 이 점은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침착하게 사건을 처리하고 응급조치를 하는 경우에는 아이들은 우선 안심한다. 비록 집에 불이 나고 자신의 물건들이 모두 없어지더라도 부모의 뒤를 따른다. 그러나 만일 부모가 불안하고 초조한 경우에는 자녀들에게 솔직히 얘기하는 것이 좋다. 부모 자신도 어쩔 수 없지만 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위로의 말과 함께…

만약에 부모 자신이 무척 괴롭고 도움이 필요하면 그것도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귀신처럼’ 부모의 심리 상태를 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기대해야 하니까. 그런데 부모가 ‘아무렇지도 않아!’라든가, ‘너는 알 필요가 없어!’라고 숨긴다면 자녀들은 자신의 감정을 신용할 수가 없게 된다. 또한 자신이 불안해지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숨기려 할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따라 하기 때문이다. 

다음주에는 불이 사그라질 것이다. 이번에 마음의 외상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본대로 재연을 할 수도 있다. 아이들 특유의 ‘문제 해결’ 방법이기 때문이다. 교통사고로 혼이 났던 아이는 그 이후에 항상 장난감 자동차로 서로 부딪치는 ‘사고 놀이’ 를 재연한다. 일종의 ‘문제 해결’을 위한 무의식 몸짓이다. 되풀이함으로써 덜 무서워지려는… 특히 7세부터 9세 사이의 남자 아이들은 부신에서 남성 호르몬이 일시적으로 많이 분비되는 때이다. 이때에는 아이들이 눈을 깜빡이는 현상이 높고 또 불이나 폭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때이다. 행여나 이들이 불장난을 하는지도 유의해서 지켜봐야 할 것이다.

우선 주위의 이웃이나 지역 사회에 희생자가 있는지를 살피자. 그리고 그들을 돕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이자. 아니면 자녀들도 함께 돕도록 하자. 불이라는 파괴 앞에서도 인간의 애정은 살아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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