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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경 개발과 발달의 역사 VIII: 광학내시경과내시경검사기록의역사
  • 심찬섭 (건국대학교병원 췌담도센터장)
  • 승인 2018.12.13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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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학내시경의 발전 

[엠디저널] 1960년부터 일본 기업들이 내시경사업에 뛰어 들었고 중요한 기술 혁신에 기여했다. Kawai1에 의하면 일본에서 처음으로 쓰인 ACMI 위내시경은 Kondo 교수가 자비를 들여 구입했다고 한다. (그림 1,2)

그림 1. ACMI 내시경
그림2. 바르셀로나 산파우병원에서E.Vidal-Colomer교수가 ACMI 내시경으로 검사하는 모습
그림3. Takemoto교수와 그의 의료진들이 주로 사용했던 Machida FGS 위내시경

1964년에 Takagi가 비닐튜브를 씌운 ACMI 위내시경을 사용하여 첫 생체 검사를 시행하였다. Machida corporation에서 근무하는 기술자들은 내시경 제작을 일본에서 처음 시도해보았다. 그들은 고품질 광섬유를 제작하는데 성공하였고 1963년 5만개의 광섬유로 만들어진 FGS type A 내시경이 시중에 공개되었다. 그후 1966년에 Machida는 보다 더 발전된 FGS type B 내시경을 제작하였다. 이것은 내시경 끝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생체검사에 더 편리하게 만들어졌고 Takemoto교수와 그의 의료진들이 주로 사용했다. 그들은 이후로 FGS-K 그리고 C모델 방광경과 FGS 식도경도 개발하여 위암을 진단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그림 3,4) 1967년에는 백열램프 대신 무열광램프를 내시경에 사용해 내부를 더욱 또렷하게 보고 촬영도 할 수 있게끔 발전되었다.

그림4. Machida FGS-B 위내시경 조작법
그림5. 무열광램프를 사용한 올림푸스 GFB-K 위내시경

몇년이 흐르고 Machida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촬영장비 제작회사인 올림푸스로 옮겼다. 올림푸스는 위카메라(gastrocamera)를 개발했고, 1965년 광학내시경에 위카메라를 설치해 몸 내부를 촬영기법으로 더욱 생생하게 볼 수 있게끔 만들었다. 첫 모델은 GFT였고 후속 모델 GFT-A는 내시경 끝 부분이 구부러져 있다. 이 장비는 일본에서 매우 유명해졌다. 또한 올림푸스는 생체검사와 세포검사에 쓰이는 lateral vision을 가진 GFB모델과 frontal vision을 가진 EF 식도경을 제작하였다.(그림5)

올림푸스 기술자들 중 특히 Ichizo Kawahara는 생체검사 촬영에 유리한 lateral vision을 가진 또 다른 내시경을 개발하였다.  A.C.M.I는 정면시야를 가진 위-식도내시경인 Lo Presti Mark 87과 89모델을 제작하였다. 89모델이 87모델보다 끝부분을 움직일 수 있어 더욱 조작하기 편리하였고 흡입력도 좋았다. 반대로 미국에 위치한 Eder와 Kapany가 몸을 담고있는 Bausch and Lomb는 입지를 잃고 내시경 사업에서 물러났다. (그림6)

그림6. 1973년에 Eder company의 Dr. F. Villa가 설계한 위내시경

1963년에 Hirschowitz는 백열램프 대신 무열광램프를 사용한 광학식도경을 만들었다. 이 장비는 다른 장비보다 길었고 전면시야를 가져 대장, 소장, 요도 같이 관상 장기들을 검사하는데 편리하였다. 또한, 검사중 시야를 가리는 이물질이 있을 경우 물로 씻어낼 수 있게끔 내시경에 또 다른 튜브를 추가하였다. Hirschowitz의 내시경은 끝부분이 유연해 다양한 조작법이 가능하고 조작하기 쉬웠다고 한다. 첫 장비는 전면 시야를 가졌고 길이가 75cm로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몇년 뒤, 그 길이가 110cm인 장비가 제작되었고 이것으로 십이지장까지 검사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쯤에 십이지장 궤양이 가장 큰 문제였고 이 장비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971년에 올림푸스가 완벽한 시야와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GIF 모델 내시경을 개발했고 내시경 시장을 점령하였다. (그림7) 그렇게 광학내시경은 현대 내시경의 가장 기본적인 장비가 되었다.

그림7. 조작이 쉽고 십이지장까지 검사 할 수 있는 올림푸스 GIF-K2

초기 광학 위-식도내시경의 위험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초기에는 많은 위험이 존재하고 사고도 일어난다. 물론 광학내시경도 예외는 아니었다. 광학내시경으로 검사를 하면서 가끔 위분문 천공을 초래하였다. Schindler에 의하면 광학내시경이 반연성일경우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하였다. 1969년에 Davis 가 미국에서 광학 위내시경으로 검사하다 식도에 천공이 생긴 증례를 발표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위험성과 사고가 보고되었다. 1966년부터 기록된 통계자료에 의하면 총 395,162회의 검사 중에서 0.033%가 천공이 일어났다. 위천공 보다 식도 천공이 더 많이 일어났고 주로 연세 드신 환자가 더욱 위험하였다. 그리고 천공 환자 8명중 한명은 죽음을 초래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천공 외에도 기관지 흡인 출혈, 심혈관 사고가 드물게 일어났다.

 

그림8. Elsner의 책인 “Die Gastroskopie (1911)”에 삽입된 위궤양 수채화

내시경검사 기록의 역사: 그림 그리고 수채화

내시경이 발명되고 나서 많은 의료진들은 그들이 내시경으로 본 내부를 그림으로 기록하려 했다. 초기에는 흑백으로 기록하였고 1911년에 Elsner가 출판한 내시경 책에 실린 몇몇 위병변 그림들은 컬러로 기록되었다. 1922년에 출판된 Schindler’s Atlas와 1935년에 출판된 Henning의 책에는 여러 컬러 위사진들이 실렸다. 또한 Henning의 논문에는 수채화 그림들도 삽입하였다. 1935년에 출판된 Moutier의 논문에는 Mrs. Claire Escoube가 그린 더욱 우수한 수채화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Gladys McHugh와 Eve Vermonde가 기록한 수채화 그림들은 Schindler의 “Gastroscopy”에 실렸다. (그림 8)

하지만 그 누구도 Mr. R. Alemany를 뛰어 넘지 못하였다. 그의 내시경으로 본 내부를 그린 그림들과 수채화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Dr. HaneryBockus는 Alemany를 찾아가 그의 유명한 책인 “Gastroenterology”의 스페인어 번역본 제작에 참여해달라고 제안하였다. 그 후 Alemany는 필라델피아 출판사인 W. B. Saunders에서 마지막까지 일하였다. (그림 9)

그림9. R. Alemany가 그린 미란성 위염 수채화 (1940)

심찬섭 (건국대학교병원 췌담도센터장)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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