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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길’에서 느끼는 연민
  •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 승인 2018.12.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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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내가 낯선 서양 땅에 와서 살고 있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곳이 한 군데 있다면, 바로 공동묘지(Ceme-tery)다. 이 초록 공간에는 울타리가 분명치 않다. 한국의 ‘묘자리’는 큰돈을 주고 산 묘지이든, 공동묘지이든 옆의 무덤과의 경계가 분명하다. 개인주의가 확실하게 나타난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생전에는 서양인들의 개인주의가 유난스러운 것에 비해서 한국에서는 사후에 개인주의가 강한 것 같다. 아니면 자손들의 염원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가끔 찾아보는 ‘장미 언덕(Rose Hill)’이나 ‘숲속 정원(Forest Lawn)’묘지에는 묘비들이 아주 정답게 어깨를 기대고 붙어 있다. 식탁의 메뉴판만한 묘비들에 고인의 이름과 살았던 기간이 쓰여 있다. 그리고 그 위에 가끔 앙증스러운 장난감들이 예쁘게 놓여 있기도 하다. 이것은 밸런타인 데이 같은 특별한 날 이후에 가면 더 자주 보인다. 정성들인 꽃과 장식들을 보면,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이 솔솔 들려오는 것 같다. 아주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들이…

 

죽음은 끝이 아닌 ‘시작’, 묘지에도 확연한 문화차이

누가 죽음을 인생의 끝이라고 하겠는가? 이곳이야말로 생이 다시 시작되고, 또 연연히 이어져 가는 곳이 아닌가! 일요일 새벽이면 늘 눈에 보이는 분들이 있다. 나이가 드신 남자 어른들이다. 먼저 간 마나님을 보러 오신 듯하다. 그들은 유연한 몸짓으로 잔디를 다듬고, 가끔 하늘을 본다. 주위에 온통 그리움이 깃든다. 아마 남들이 많이 오지 않는 시간을 골라서 온 것 같다. 그들의 대화를 방해할 아무 것도 없다. 하다 못해 새소리도 없는 아주 조용한 시간이다.

가끔 검은 정복과 위엄 있는 모자를 쓴 정교도(?), 아니면 다른 종교의 사제들도 눈에 뜨인다. 그들은 자신의 자동차 주위를 돌면서 무언가를 암송한다. 장례 군중이 모이기 전에 기도를 미리 외우는지도 모른다. 행여나 영혼을 보내는 시를 암송하다가 떠듬거려서야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니… 열심히 무언가를 암송하는 그들의 듬직한 모습을 보면 가족들이 마음 놓일 것 같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동서양의 차이는 음식 문화이다. 소주를 따라 놓고 북어포를 놓고, 고인 앞에서 크게 절을 올려야 우리는 마음이 후련했었다. 할 것을 다 한 기분이 들었었다. 게다가 모두가 돌아가면서 술을 따라서 무덤 위에 뿌리면서 ‘식탁’을 나누었었다. 멋모르고 나도 첫해에는 음식을 준비해 갔었다. 아이들은 그냥 모르는척 눈감아 주었다. 그 후부터는 음식이 없어도 괜찮았다.

꽃과, 추억과, 남아있는 사람들의 사랑으로 무덤 주위는 늘 풍성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고시레’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공중에 높이 뿌려대던 음식 조각들은 날아가던 새나, 땅속 곤충들을 위한 우리 조상들의 자비심이었을 것이다. 어린 우리들은 푸른 하늘을 보면서 무언가 던지는 것이 좋았었다. 그러면서 멀리 그려지는 포물선을 응시하는 것은 얼마나 가슴 부푸는 일이었던가!

가끔 낙엽이 지는 산등선으로 뻐꾸기도 날아오르고 있었다. 절이 끝나고 돗자리를 펴면 어른들은 잔디를 가꾸었다. 비스듬히 무덤을 끼고 누울 수도 있었다. 베개가 필요 없는 완벽한 각도에서 말이다. 그러면서 미래의 꿈을 꾸었던 것 같다.

둥글게 솟아있는 작은 산 같은 무덤은, 그러기에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들을 한껏 품어 안을 만큼 넉넉해 보였다. 봉긋한 모양이든 참한 메뉴판 같이 생긴 무덤이든 간에, 내가 앞으로 묻힐 무덤에 대해서 요즈음 생각해본다.

그곳을 찾아 올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아직도 시간이 남아있다면 아름다운 이야기를 더 만들어야겠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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