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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도와주는 법

  • 입력 2018.12.18 14:38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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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자살에 대해 ‘사는 것이 오죽 괴로우면 죽으려고 하겠나?’하고 쉽게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제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닙니다. 오래 전에 상담했던 30대 여자 환자는“선생님, 왜 죽으려고 하는지 아세요. 괴로워서 죽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떤 생각에 골똘히 빠진 상태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죽음을 바라고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되어 죽으려고 했어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 그래요”라고 상태가 좀 회복되면서 저에게 심경을 털어놓았습니다. 실제 다른 환자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서 자신이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자살을 결행합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여류 작가로서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한 사람의 책을 읽어보니, 죽기 전에 쓴 글에 나타난 심리는 매우 복잡하고 순리나 상식에서는 너무도 동떨어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환자 중에 치료를 하는 도중이건 치료를 하지 않는 기간이건 자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 경우에도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는데, 그 사람은 남자 대학생으로 상담은 학교 상담실에서 하고, 나에게는 불면증과 불안 증세 때문에 약만 타가는 환자였습니다.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약을 타가던 환자가 어느 날부턴가 오질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몇 달 후에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 학생, 즉 자기 아들이 자살을 했다고 하면서 자기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죽겠다고 해서 “그럴것 같으면 나가서 죽어라”고 했는데 그 길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로서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말을 했겠나 하고 동정이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살 의도가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말 한마디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말을 어머니의 의도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편향되고 왜곡된 심리상태에서 받아들여 나름대로 해석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쪽으로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자살의 심리학

자살을 왜 하게 되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사회학적 견지에서 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분석학적 견지에서 본 원인론입니다. 사회학적인 견지에서 많은 연구를 한 대표적인 학자인 에밀 뒤르켐 (Emile Durkheim, 1858~1917)은 개인이 소속해 있는 사회집단에서 개인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주지 않기 때문에 자살이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개인이 사회 집단과의 결속이 끊어지면서 생기는 사회심리적 고립현상이 현대사회에서의 자살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정신분석에서는 자살을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 공격성의 결과로 봤습니다. 정신분석에 따르면, 한 인간이 사랑과 미움의 상반된 감정을 갖고 대하던 어떤 것을 잃고 나면 사랑하던 감정은 영구히 그 상실된 것에 붙어서 애도·추모하는 마음으로 남지만 증오하던 마음은 그것에서 떨어져 나와 방향을 돌려 자기 자신에게 와서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공격성이 자신에게로 방향전환을 한 상태가 우울증입니다. 그래서‘나는 가치 없는 놈이다’, ‘ 나 같은 놈은 죽어야 한다’라고 하는데 이런 것이 심해지면 ‘내가 나를 죽이는’자살을 하게 됩니다.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자살기도자의 경우 정신질환자일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사춘기 학생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정상적인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전직 대통령을 포함하여 유명 연예인, 재벌 총수를 지낸 사람 등 많은 사람이 자살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하루 30~40여 명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1위를 차지하여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 국가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계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자살과 자살 지도자를 합쳐 이들 중 최소 1/3이상이 조울정신병, 갱년기 우울증, 정신분열증, 우울신경증, 뇌동맥경화증, 만성알코올 중독에 걸려 있다고 봅니다. 자살하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치료가 될 수 있는 정신 장애를 갖고 있고 자살하는 사람의 대다수가 자살하기 전에 자살 의도를 주위 사람에 게 표현하기 때문에 잘 대처한다면 예방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알아주어야 할 부분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자살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어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상식처럼 떠도는 말인데, 마치 사실처럼 인식되어 있어 자살예방이나 대책에 부정적이고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정신의학 교과서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 첫째가 “정말 자살할 사람은 남에게 그것을 내색하지 않는다”입니다.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연구결과에서 자살할 의향이 있는 사람은 주위에 그런 의사를 알린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가족, 친지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뜻을 비치거나 더러는 직접 대놓고 명확히 예고를 합니다. 우리나라의 한 연구를 보면 74퍼센트가 그런 의사 표시를 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통계는 55~75퍼센트입니다. 따라서“죽는다, 죽는다 하는 사람치고 죽는 사람 못 봤다”라는 말은 전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주위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경우 심각한 말이든 지나가는 말이든 그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할것입니다.

두 번째는“자살하는 사람들은 꼭 죽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결단을 내린 사람들이다”라는 것인데 이것도 틀린 말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죽을 것인지 살 것인지를 분명히 정하지 못한 채 갈등하고 혹시 누군가에 의하여 자기가 구원받고 구조받기를 기대합니다. 내가 봤던 남자 환자는 3층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떨어져 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다가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해 떨어져서 죽지는 않았지만 크게 다쳤다고 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한 번 자살기도를 해 본 사람이거나 자살 위기를 넘긴 사람은 다시는 자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한 연구의 통계에 의하면 전체 자살자의 45퍼센트가 3개월 전쯤 해서 자살 미수가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전체 자살기도자의 15퍼센트는 다시 자살기도를 하는데 그 반수가 1년 이내에 합니다. 전체 자살기도자의 5퍼센트는 자살로 끝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살의도를 표현하는 사람이나 자살기도자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먼저 이들이 매우 힘들고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살 위기를 넘긴 어떤 사람은 자살 위험에 처했을 때의 자신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때의 상태는 우리가 보통 살아가면서 겪는 괴롭고 힘든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정신과 몸이 이상한 상태에 빠져들어 도저히 거기서 빠져나올 것 같지 않고, 절망 그 자체로, 죽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자살할 것만 생각했어요.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태에 변화를 주는 것인데 가장 좋은 것은 전문가와 상담을 하여 안정을 시켜주거나, 잠을 자게 하는 약을 먹거나, 주위에 사람이 있어서 대화를 하는 것이에요. 그럴 때 옆에 아무도 없으면 정말 위험해요.”

우리 몸은 살기를 원합니다. 세포 차원에서 생명 유지를 위해 엄청난 일이 순간순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하게 괴로워서는 우리 생명체를 파괴할 수 없습니다.

자살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과 정신에서 오는, 우리 생명체를 보존하고자 하는 신호를 차단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디에 집착하고 몰두하고 빠져 있어야 합니다. 아주 특수한 상태에 빠져들거나 종교적이거나 이념적인 신념이 굉장히 강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십 수 년 전에 미국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나 여러 명이 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건을 일으킨 학생의 인터뷰를 봤더니“그전에 내가 누구하고라도 대화를 했더라면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라고 했습니다. 그 학생도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후회할 일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자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살의 위험에 놓였을 때를 벗어나서 생각하면 다르게 생각될 수 있는 것이 그때는 자살만이 유일한 길로 여겨집니다. 붓다도 말하였듯이 모든 것은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도 순간순간 변하고 있고 우리 마음도 순간순간 변하고 있습니다. 잘 보면 괴로운 것도 변하고 있고 즐거운 것도 변하고 있습니다. 자살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도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이러한 세상의 이치를 평소에 체득하여 그 어려운 순간을 넘어가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당사자 스스로 안 되면 옆에 있는 사람이 도와야 합니다. 옆에서 도울 때 자살 의도를 비치는 사람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돕는 사람이 너무 두려워하면 자살 의도를 가진 사람이 불안해하고 돕는 사람에 대해서 든든한 느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 자살하고 싶다는 심정을 들어주는 것이 자살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자살이라는 생각을 원천 봉쇄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털어놓음으로써 마음이 가벼워지고, 그 사람이 누군가와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다고 느끼면 마음에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어딘가에 빠져 있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대화의 내용보다도 서로 나누고 있고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중요합니다. 자살 의도를 비치는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진정한 관심입니다. 이미 정신질환이 생긴 경우는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해야합니다. 필요하면 입원도 해야 합니다.

 

마음을 붙잡아주는것

한 여자 대학생은 몇 개월 동안 가지고 있던 자살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물론 상담도 하고 약을 먹은 것도 있었지만, 환자의 표현으로는 아버지의 따뜻한 관심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을 잡아주는 사람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청소년의 경우 부모가 자리 잡고 있지 않습니다. 혼자라고 느낍니다. 자식의 마음속에는 항상 부모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유태인으로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보낸 3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의미치료(意味治療, logotherapy)를 창시한 의사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 1905~1997)은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가끔 “어째서 자살을 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환자들은 자기 인생을 지탱해 주고 있는 인생의 의미를 자각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적응을 잘하는 사람도 지치고 힘들고 화날 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 존재 자체는 자살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과 진정하게 대화를 해 보면 존재하기 위하여 우리 내부에서 활발하게 생명활동을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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