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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람으로 표현되는 질병의 전조

  • 입력 2018.12.20 10:35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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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어떤 질병이 발병하기 전에 병이 곧 발병될 것이라는 신호로 나타나는 전구증상(前驅症狀)을 아우라(Aura, 前兆)라고 하는데 이것은 신체적인 질병보다도 정신적인 질환에서 자주 보게 된다. 특히 간질인 경우에는 아우라가 확실한 편이다.

간질은 전형적인 간질경련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대발작(大發作)이라 하고 어중간한 비전형적인 발작만 일으키는 것을 소발작이라 한다. 대발작 형 간질발작을 일으키기 전에는 대개 어떤 증상이 미리 나타나는 것을 의학에서는 아우라라고 한다.

아우라에는 지각성인 것과 운동성인 것이 있는데, 흔히 갑자기 숨이 꽉 막힌다고나, 팔다리가 비틀리고 저리고, 신체가 저절로 꿈틀꿈틀해지며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나, 헛것이 보이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등의 아우라가 많다. 아우라가 나타나면 곧 이어서 환자는 마치 몽둥이가 쓰러지듯이 땅바닥에 넘어져서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아우라 이야기

아우라의 본뜻은 산들바람을 뜻하는 희랍어로 이며 다음과 같은 신화에서 유래되었다.

잘생긴 청년 케팔로스(Cephelus)는 씩씩한 성격으로 사냥을 좋아해 매일같이 산과 들로 나가 사냥을 즐겼는데, 그에게는 프로크리스(Procris)라는 아내가 있었다. 프로크리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요정으로 일하다가 케팔로스와 결혼하였는데, 이때 아르테미스 여신이 준 선물은 여신의 은총을 받아 어떠한 사냥감보다도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냥개와 절대로 과녁을 빗나가는 일이 없이 어떤 목표에도 백발백중하는 창이었다. 프로크리스는 이 두 선물을 남편에게 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만족했다.

케팔로스는 곧잘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했는데, 누구를 데리고 다니지도 않았고, 누구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언제나 혼자서 사냥을 하였는데, 그것은 어느 때건 던지기만 하면 정확하게 사냥감을 꿰뚫는 창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사냥에 싫증이 나면 시원한 물이 흐르는 개울가 나무 그늘에서 즐겨 자곤 했다. 그곳에서 입고 있던 옷을 훨훨 벗어버리고는 풀 위에 누워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혼잣말로 “오라, 감미로운 아우라여! 와서 내 가슴을 쓰다듬어다오, 와서 뜨거운 내 가슴을 식혀다오”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그 옆을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케팔로스의 은근한 목소리를 들었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케팔로스가 어떤 처녀에게 속삭이고 있는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프로크리스에게 달려가 이를 고자질하였다. 사랑은 사람의 귀를 얇게 만드는 법, 프로크리스는 이 말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실신할 정도였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프로크리스는 “그럴 리가 없어요. 내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어요”라고 중얼거렸다.

프로크리스는 마음을 졸이면서도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여느 때처럼 사냥에 나가는 케팔로스 뒤를 몰래 따라갔다. 그리고는 고자질한 사람이 가르쳐준 곳으로 가서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사냥하다 지친 케팔로스는 늘 가던 곳에 가서 풀 위에 몸을 눕히고는 중얼거렸다. “오라, 감미로운 아우라여! 내 가슴을 식혀다오. 그대는 알리라, 내가 그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숲을 좋아하는 것, 홀로 즐겨 이 숲을 헤매는 것은 모두가 그대가 있기 때문이니라”

케팔로스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덤불 속에서 무엇인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였다. 케팔로스는 그것은 틀림없이 들짐승일 것이라 생각하고 소리 나는 쪽을 향해 창을 던졌다. 과녁을 절대로 빗나가는 일이 없는 창은 숲에 숨어있던 프로크리스의 가슴에 명중하였다.

프로크리스가 지르는 비명소리에 깜작 노란 케팔로스는 그 쪽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자기가 던진 창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케팔로스는 가슴에 박힌 창을 뽑고 흐르는 피를 멈추려 애를 썼다. 그러자 프로크리스는 겨우 눈을 뜨고 간신히 말하기를 “저를 사랑한다면 제가 죽고 난 후에도 절대로 아우라와는 결혼하지 말기를 바라요”하고 자기 남편이 아우라라는 여인과 사랑에 빠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케팔로스가 아우라는 현존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좋아 그랬던 것이라 설명하여 두 사람 사이의 오해는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프로크리스는 머지않아 숨을 거두었다.

이러한 내용을 그림으로 잘 표현한 화가들이 있다. 이탈리아의 화가 베르네제(Paoro Veronese 1528~88)가 그린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1580년대)’는 남편이 던진 창에 맞아 둔사 상태에 빠진 프로크리스를 구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 장면을 그렸으며, 같은 주제를 그린 로트나이르(Johann Michael Rottnayr 1654~1730)의 그림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1706)’는 창에 맞은 프로크리스와 케팔로스가 대화로 ‘아우라’가 사람이 아니라 스치는 산들바람이었다는 것을 설명해 프로크리스도 납득이 간다는 표정의 그림이다.

아우라에 대한 또 다른 신화가 있다. 프류기아의 님프 중에 아우라라는 이름의 여자가 있었다는데, 그녀는 프류기아의 여자 페리보이아(Periboia)와 티탄(Titan)신인 레란토스(Lelantos)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이 아우라라는 아가씨는 어찌나 달음박질이 빠른지 그녀를 따라 갈 사람이 없었다.

그림 2. 로트나이르 작: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1706, 비엔나 미술관
그림 2. 로트나이르 작: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1706, 비엔나 미술관

어찌된 셈인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가 그녀에게 반해 버렸다. 주신인 만큼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있는데 오직 그녀를 사모하는 생각뿐이었다. 주신이 그녀를 잡아낚으려고 뛰어가면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 버리곤 해 단거리선수에게 술에 취한 주신이 당할 리가 없다.

원래 디오니소스는 트라키아지방과 마케도니아지방에서는 주로 여성들 사이에 행해지던 광란을 수반하는 종교의식을 주관하던 신이었던 것이 그리스로 수입되어서 여성들의 열광적인 숭배를 받아왔다. 이 디오니소스도 후세로 내려오면서는 주신보다도 연극의 신으로 변모하게 되었고, 디오니소스가 아우라에게 반해서 잡으려고 아무리 쫓아가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가여워서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아우라를 미치게 해버렸다.

광기(狂氣)를 일으킨 아우라를 붙잡은 주신은 욕망을 채웠더니 아우라는 잉태하여 쌍둥이를 낳았는데 실성한 어머니 아우라는 한 아이를 삼켜버렸다. 나머지 아들인 이앗코스는 주신이 다른 여인들의 힘을 얻어 양육을 받았으며, 광기의 아우라는 상가리오스 강에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제우스신은 그녀를 불쌍하게 여겨 그녀를 샘(泉)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질병의 발작을 일으키기 직전에 그 전구증상으로 나타나 것이 곧 발작됨을 알리는 전조는 마치 바람과 같이 빨리 증상을 몰고 온다 해서 아우라를 연상하여, 이런 이름을 붙였는데 특히 정신과 질환 그중에서도 간질의 경우는 아우라가 뚜렷이 나타난다. 간질병 환자의 그림 가운데 발작을 일으키기 전에 전조가 나타나는 것을 산들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으로 표현 한 것이 있는데, 이 그림은 아우라 신화를 현 간질 환자에 결부 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림 3. 작가 불명, ‘간질 발작 전 전조를 산들바람으로 표현한 그림’
그림 3. 작가 불명, ‘간질 발작 전 전조를 산들바람으로 표현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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