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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캐럴 대명사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입력 2018.12.21 10:06
  • 수정 2019.02.20 16:39
  • 기자명 왕성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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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 거룩한 밤 /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 아기 잘도 잔다

사진제공: 구글
사진제공: 구글

[엠디저널]2018년이 저물고 있다. 이맘때면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한다. 기독교신자, 가톨릭신자들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성탄절행사를 가지며 세모를 마무리한다. 이때 등장하는 노래가 있다. 캐럴 송(carol song)이다. 요즘은 도심거리에서 들을 수 없지만 10여 년 만해도 12월이면 캐럴이 울려 퍼지고 구세군들 종소리까지 어우러져 연말분위기를 띄웠다. 독창, 합창, 연주로 우리들 곁에 다가온 캐럴 중에서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요제프 모어·Joseph Mohr 작사 / 프란츠 그루버 Frantz Gruber 작곡)’은 단골곡이다. 종교적 노래이긴 해도 어릴 적부터 귀에 익어 대중성 있는 계절노래가 됐다. 8분의 6박자, 안단테(Andante)로 나간다. 안단테는 노래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로 '천천히 걷는 빠르기로'란 뜻이다.

노래 영어표기는 ‘Silent night holy night’

노래제목처럼 멜로디가 조용하고 가사가 가슴에 착 안긴다. 눈 오는 날 밤 이 노래가 들리면 기독교신자가 아니라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럴 때면 이 노래와 더불어 학창시절추억이 떠올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크리스마스 앞뒤로 지구촌에서 가장 많이 불리고 들을 수 있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노래 원제목은 ‘Stille Nacht, heilige Nacht’(영어표기는 ‘Silent night holy night’). 만들어진 곳은 오스트리아 음악도시 잘츠부르크에서 20km쯤 떨어진 오베른도르프(Oberndorf)란 작은 마을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차로 20분쯤 걸리는 동네다.

1800년대 초 이 마을엔 요제프 모어란 가톨릭교회 신부(사제·司祭)와 프란츠 그루버란 교회학교 선생이 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어는 1817~1819년 이 마을의 성 니콜라우스교회에서 신부로 몸담았다. 그루버는 1807~1829년 이웃동네 아른스도르프에서 태어나 그 마을교회가 운영하는 학교 교장으로 니콜라우스교회 오르간반주를 맡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자연히 가까워졌다.

1818년 26살이었던 모어신부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12월 어느 날 “성탄을 맞아 모든 이가 조용히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없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는 그루버선생에게 “성탄전날 밤 모일 마을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루버는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했다. 먼저 모어신부가 밤에 독일말로 노랫말을 지었다. 크리스마스 때 느꼈던 감정을 바탕으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으로 나가는 가사를 만든 것이다. 이어 교회음악가 그루버선생에게 “2명의 솔로, 기타반주를 곁들인 합창에 맞게 곡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가사를 받은 그루버는 교회에 혼자 남아 오르간을 치며 하루 만에 작곡했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건반을 두드렸다”고 회고했다. 밤새 곡을 만든 그는 아침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보도록 했다. 아름다운 곡에 감동한 가족들은 얼싸안았다. 성탄전날의 조용하고 거룩한 뜻을 담은 가사에 딱 어울리는 멜로디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성탄전야미사를 위해 오르간으로 다른 곡을 연주하려 했으나 오르간이 고장 나자 기타로 연주할 수 있는 곡이 필요해 이처럼 갑자기 만들어졌다.

모어신부는 곡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노래는 니콜라우스성당에서 곡을 만든 당일(12월 24일) 저녁미사 때 처음 불렸다. 참석한 신도들 박수가 쏟아졌다. 모어신부는 기타를 치며 테너를, 그루버선생은 베이스를 맡았고 교회합창단이 후렴을 불렀다. 그 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해마다 성탄절 때 이 교회에서 불리며 널리 알려졌다. 특히 어부들에 의해 퍼져나갔고 독일 라이프치히 박람회장에도 알려지면서 유럽대륙으로 파고드는 계기가 됐다. 아울러 성공회 플로리다교구(Episcopal Diocese of Florida)의 프리먼 영 주교(Bishop John Freeman Young)가 노래를 번역, 소개했다. 그렇게 해서 세계에 알려졌고 우리나라에도 소개돼 크리스마스 때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노래는 올해로 200주년을 맞았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130개 나라 말, 193개 버전으로 번역

지금은 130개 나라 말, 193개 버전으로 번역돼 지구촌 어디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유명하다. 오스트리아엔 이 노래 관련사업을 펼치는 ‘고요한 밤 협회’(Stille Nacht Gesellschaft)까지 있다. 1937년 8월 15일엔 노래를 만든 모어신부와 그루버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니콜라우스교회가 ‘고요한 밤 성당(Stille Nacht Kapelle)’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이 노래는 캐럴을 자주 부르는 오스트리아 ‘빈 소년합창단’ 공연을 통해서도 많이 보급됐다. 이 합창단은 세계 캐럴들보다 역사가 길다. 고전캐럴 대부분이 1800년대 작곡됐다면 빈 소년합창단은 1498년 창단됐다. 빈 소년합창단은 캐럴을 중심으로 한 200개 이상의 음반을 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노래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중 그해 크리스마스 때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다큐드라마인 밴드오브브라더스 제6화 ‘바스토뉴(벨기에)’를 보면 그날 숲에서 맞섰던 독일군이 이 캐럴을 부르는 모습이 나온다. 크리스마스이브 때 벨기에 이프르(Ypres)에서의 영국-독일전쟁 중 독일병사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른다. 영국군들이 환호하자 노래가 끝난 뒤 독일군 장교와 영국군 하사가 악수하며 전쟁을 잠시 멈추기로 한다. 이를 ‘크리스마스 정전’이라 한다.

국내에선 2016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 창원광장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때 개사돼 불렸다. 참가자들은 노랫말을 “일곱 시간, 일곱 시간, 그네의 비밀시간, 우주 기운 받아서 청와대에서 뭐 했니, 이~제 말~하 라~ 아~ 이~제 밝~혀라”로 바꿔 합창했다.

캐럴음반 처음 낸 국내 대중가수는 윤심덕

우리나라에서 캐럴음반을 처음 낸 대중가수는 윤심덕이다. 그녀는 1926년 10월 2곡을 취입했다. 이후 캐럴음반은 1934년 12월 가수 ‘요한’에 의해 이어졌다. 1935년 8월엔 가곡 ‘고향생각’, ‘희망의 나라로’ 작곡가 현제명이 부른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음반(콜롬비아레코드)이 나왔다. 1941년엔 클래식음악가 현제명, 김현준, 김자경, 김수정이 혼성4중창으로 부른 ‘첫 번 크리쓰마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이 빅터레코드에서 나왔다. 

캐럴이 본격 보급되긴 1950년께부터다. 그 뒤 크리스마스 대표 국민캐럴로 음악교과서에까지 실렸다. 1960년대엔 록밴드 히파이브가 독특한 캐럴연주음반을 냈다. 전통적 캐럴을 록버전의 사이키델릭 록사운드에 접목한 이 음반은 희귀함과 뛰어난 음악성으로 비싸게 거래된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불황이 거듭되고 디지털음원이 나오면서 캐럴음반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선 개그콘서트 출연개그맨과 갈갈이패밀리, 수다맨 등의 코믹캐럴음반과 꼬마 룰라 등 어린이가수들 캐럴음반이 명맥을 이었다. 그러나 오래 못 갔다. 디지털세상이 열리고 저작권단속 강화로 거리분위기를 띄우던 리어카음반점들이 사라졌고 대중가수가 어쩌다 캐럴음반을 내면 뉴스가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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