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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낭만을 노래한 예술가들이 겨울, 거실에서 듣는 예술 속 이야기
  •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 승인 2018.12.22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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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시대, 잠시 멈추고 듣는 평안의 음악

[엠디저널]지난달 어느 토요일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올해 서울에 내린 첫눈이었다. 최근 겨울 날씨에서는 볼 수 없던 꽤 많은 적설량을 기록하였다. 도로와 골목 곳곳에 눈이 쌓이며 어린 아이들이나 가족, 연인들은 공원이나 놀이터로 나와 첫눈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첫눈이라는 설렘도 잠시, 아침 리허설로 향하는 주말 출근길에 때아닌 교통 대란에 울상을 지었다. 이른 아침 변경된 버스 노선으로 사람도, 차도 찾아볼 수 없던 도로 위는 눈발이 흩날리는 소리와 더불어 광활한 시베리아 설원과 자작나무숲, 눈쌓인 도로 옆 하천은 얼어붙은 겨울 바이칼 호수를 연상케 했다.

이러한 풍경을 보며 서양 고전 음악의 근간이 되는 과거 유럽의 음악가들이 광활한 자연이 선사하는 문학과 예술로 우리에게 낭만과 품격의 유산을 남겼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몇 낭만적인 장면들은 겨울은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설원, 가끔씩 나타나는 엄청난 높이의 침엽수림과 얼어붙은 호수 이에 소복이 쌓인 그림으로 이어진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선 흔하게 볼 수 없는 지평선과 그 선을 향해 곤두박질 치는 노을.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은 노을을 따라 붉게 타올랐다가 노을이 사라지면 보랏빛으로 변한다. 보랏빛 하늘 사이로 어둠이 깔리고 무수히 많은 별들은 하늘을 수놓는다. 그 아름다운 광경이 그 겨울 끝없이 긴 밤의 시간에 차창 밖으로 끝도 없이 이어진다. 설원을 달리는 열차와 그 위를 수놓는 밤하늘, 잔잔한 음악에 생전 처음 본 낯선 이들과 밤새 대화를 나누고 술 한잔을 기울이는 장면들속에는 분명 과거 예술가들도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겨울 풍경 하나에서도 표현되는 색채들이 다양하기에 회화나 음악에서 다양한 색채를 표현 해냈던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9세기 예술사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을 가져온 낭만주의는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정신이 발달하고 진보, 번영, 문명 개화의 사상이 고조되고 슈투름운트드랑(Sturm und Drang, 질풍노도)의 격렬한 분위기로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고전주의는 결국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타락으로 이끄는 것이라 하여 미 의식은 고전주의적 규범에서 벗어나서 추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예술운동이었다. 그렇기에 낭만주의예술은 자로 잰듯한 고전적 정형을 깨려고 노력하며 인간의 격정적 감정과 주관을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주된 요소였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이미지 출처 월간조선

자연에 대한 감정과 생각을 담아내다

낭만주의의 질풍노도와 더불어 보여지는 작품이 있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The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이다. 19세기 낭만주의 그림 중 가장 알려진 작품으로 산 정상에 서 있는 주인공 앞에 펼쳐진 안개는 마치 격렬하게 파도치는 바다와 같다. 작가의 마음 상태가 그러했기 때문이었을 지도 혹은 시대가 그것을 요구했을 지도 모른다. 만일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지 않고 작가의 마음 상태 또한 평안했다면 이러한 안개 바다 그림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 속 잔잔한 파도에 멀리 보이는 흰 색의 등대와 작은 돛단배 하나가 조용히 지나가는 모습을 그려냈을 수도 있다. 이 그림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지팡이를 쥔 검은 코트를 입은 방랑자의 모습을 그렸지만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을 가운데에 위치시켰다. 이로써 이 그림은 앞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아닌 풍경화의 장르로 여겨진다.

고독을 형상화하고 절망을 표현하고 심연을 응시하는 한 남자의 신비를 탐험하며 풍경에 지배당하지도, 그렇다고 풍경을 압도하지도 않는 이 그림 속 인물이 낭만주의의 인간형을 잘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모사가 아닌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낭만주의의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을 만들었다.

프리드리히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1818) 이미지출처 Wikipedia.jpg

영원한 겨울 나그네, 슈베르트

 프리드리히의 그림이 그러했듯 음악사에서는 프란츠 슈베르트(F. Schubert 1797-1828)가 ‘예술가곡’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작곡가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예술가곡은 19세기 독일 문화권을 중심으로 발달하였고 문학과 음악의 유기적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부르고 듣는 가요나 팝음악의 뿌리가 시작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짧은 형식 안에서 문학과 음악이 결합하는 가곡은 주관적 감정을 표출하려는 낭만주의 미학관과 연결된다.

슈베르트는 일생 동안 600곡이 넘는 예술가곡(Kunstlied)을 작곡해 ‘가곡의 왕’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명성과 달리 그는 평생 가난과 고독 속을 헤매던 음악의 방랑시인 이었다. 그의 대표작인 <겨울 나그네(Winterreise)>의 주인공처럼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황량한 겨울 벌판을 걸어가는 나그네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일생을 정처없이 떠돌아 다니며 방랑자 특유의 소외감과 상실감, 고뇌, 허무, 회한의 감정을 작품 속에 그려냈다.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의 안착에 따라 물질주의가 점점 팽배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염증은 점점 커져만 갔고 정신적 영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로 되었다. 이상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사고의 전환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진다. 물질 우선의 풍조와 인간의 이성적 능력에 대한 맹신을 경계해야 하는 모습은 지금 우리의 문제와도 닮아있다. 모든 인간관계가 파편화 되어 인격의 총체성이 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 변화의 시대에서 잠시 멈추고 달력을 보며 따뜻한 차를 생각하며 안식의 음악에 귀를 기울여보자.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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