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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머리카락과 배에 차는 복수

  • 입력 2019.01.22 14:19
  • 기자명 문국진(의학한림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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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의학용어에 ‘메두사의 머리(caput medusa)’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간경변(肝硬變) 때에 복수(腹水)가 차서 복벽의 정맥이 성난 듯이 굵게 팽창된 것을 의학에서는 노장(怒脹)되었다고 하며, 바로 복벽의 정맥이 노장된 상태를 메두사의 머리라 한다. 즉 배꼽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노장된 정맥들의 모양이 마치 신화에 나오는 머리카락 모양이 뱀의 모양과 같은 메두사(Medusae) 세 자매, 즉 여괴(女怪)인 고르곤(Gorgon)들의 것과 그 모양이 같다 해서 지어진 용어이다.

신화에 나오는 고르곤들의 얼굴은 지독히도 못생겼고, 이는 돼지 이빨이고 놋쇠같이 거친 손을 가졌으며, 머리카락은 뱀이었다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었던 것 같다. 누구나 이 괴물을 한번 보기만하면 당장에 돌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영어 속어로 고르곤이라 하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추녀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스말로 고르곤이라 하는 낱말은 굳세다는 뜻이고, 메두사를 영어에서는 해파리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고르곤은 세 자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메두사만이 그리스신화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즉 세 자매의 고르곤 중에서 다른 두 자매는 불사신이였으며, 메두사만은 죽을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세 자매는 죽음의 나라 가까운 곳, 즉 세계의 서쪽 끝에 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뱀이고, 어깨에는 황금빛 날개가 달렸고, 그 매서운 눈초리에 한번 걸리기만 하면, 즉 그녀를 본 생물은 모두 돌로 변해버린다. 그래서 그녀들이 사는 동굴가장자리에 사람이나 동물의 형태를 한 화석(化石)들이 많이 널려있는 까닭은 무심코 그녀들을 쳐다본 불행한 생물들은 돌로 변했기 때문이다.

메두사는 본래 아름다운 아가씨였고, 정말로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미녀였다. 그러나 자기 분수를 모르고 여신 아테나와 아름다움을 겨루었기 때문에 여신은 화가 나서 메두사의 아름다움을 박탈하고 그 머리카락을 뱀의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첼리니 작: '페르세우스와 메두사(1545~1554)', 피렌체 란치 미술관
첼리니 작: '페르세우스와 메두사(1545~1554)', 피렌체 란치 미술관

또 일설에는 해신 포세이돈(Poseidon)이 말로 변신해서 메두사를 유혹하여 사랑을 나눈 장소가 바로 아테나(Athena) 신전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신전의 신성 모독죄로 해서 추악한 모양으로 탈바꿈하는 형벌을 내린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얼굴이 괴물로 됨에 그 성품도 포악해져서 그녀가 사는 일대는 황폐화되고 말았다. 이것을 보다 못한 아테나 여신은 영웅 페르세우스(Perseus)로 하여금 그녀들을 퇴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다른 고르곤 자매는 불사신이었기 때문에 죽음의 운명을 가진 메두사만을 죽이기로 작정했다.

페르세우스는 헤르메스에게서 빌린 비행구두와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빌린 거울같이 빛나는 방패와 놋쇠로 만든 낫(鎌)을 갖추어 메두사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만약에 메두사를 직접 보든지 또는 메두사가 먼저 페르세우스를 보든지 한다면 당장에 돌로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페르세우스는 거울같이 빛나는 아테나 여신의 방패를 들고 거울에 비치는 괴물을 향해 괴물에게 자기 모습을 보게 하여 접근해 예리한 낫으로 메두사의 머리를 잘랐다.

상처에서 뿜어 나오는 핏속에서 황금의 칼을 손에 쥔 크류사올과 천마(天馬) 페가서스(Pegasus, 무사이들이 타고 다니던 말)가 탄생되었는데,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자루에다 넣고서는 천마 페가서스를 타고 무사히 돌아와 이 모험을 승리로 인도해 준 아테나 여신에게 메두사의 머리를 바쳤더니, 여신은 메두사가 제 모습을 보고는 돌이 된 메두사의 머리를 자기의 방패 ‘아이기스(Aigis)’에다 장식으로 달았다. 이로서 아이기스는 무적의 방패가 되었는데 그것은 누구나 이 방패를 보면 돌이 되기 때문이었다. 메두사의 머리가 아이기스에 부착되는 순간부터 메두사의 머리는 신적 지위를 부여 받았으며 이것이 후에 아테나 시(市)의 시문(市紋)이 되었다.

이외에도 아테나 시의 심벌인 방패의 모양을 보고 이 신화를 만들어냈다는 설도 있고, 또 메두사라는 낱말은 「널리 영유 한다」는 뜻이어서 「지배하는 여성」을 가리키는 말로 되었다는 설도 있다.

페르세우스에 관한 이야기는 그리스의 고대시인 시모니테스에 의해 전해지고 있는데 시모니테스는 그리스의 고대시인 중에서도 가장 다작한 시인이었으나, 지금 전해지는 것은 몇 개의 단편뿐이다. 그는 찬가(讚歌), 송가(頌歌), 비가(悲歌)를 즐겨 읊었는데, 특히 비가에 우수한 작품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작품 중에서 「다나에의 비탄(悲嘆)」이 가장 뛰어난 작품인데, 여기에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 얘기가 담겨 있다.

메두사를 퇴치한 영웅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와 아르고스(Argos)의 공주 다나에(Danae) 사이에서 태어났다. 신들의 왕 제우스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이 아이가 태어나자, 그의 외조부인 아크리시우스(Acrisius) 왕은 매우 불행해 하였다. 자기가 외손자에 의해 살해될 것이라는 아폴론의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크리시우스 왕은 고민에 빠졌다. 그는 딸과 손자를 눈앞에서 처단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작은 배에 태워 망망대해로 흘려보내도록 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었지만 작은 배는 망망대해를 떠돌다가 우연히 세리포스 섬까지 떠내려갔을 때 뒤티스(Dictys)라는 어부가 그들을 발견하고, 구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페르세우스는 이 작은 섬 세리포스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레비 두르메르 작: ‘성난 머리혈(1897)', 파리 오르세 미술관
레비 두르메르 작: ‘성난 머리혈(1897)', 파리 오르세 미술관

세리포스 섬의 왕인 폴리데테스(Polydectes)는 페르세우스의 어머니 다나에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왕비로 삼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를 거부하자 못된 짓을 하여 페르세우스 모자를 박해하였다.

페르세우스는 어머니를 안전하게 아테나 신전에 모셔두고 난관을 극복할 것을 아테나 여신에게 물었다. 페르세우스를 총애한 아테나 여신은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하여 메두사를 제거하라는 신탁을 주어 결국 이러한 연유로 해서 페르세우스에 의해 메두사는 퇴치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와 내용을 지닌 메두사의 머리는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그 하나가 레비 두르메르(Lucien Levy-Dhurmer 1865~1953)가 그린 ‘성난 머리혈(1897)’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메두사의 머리칼을 흐트러진 풀 속의 실뱀으로 표현하였으며 이맛살을 잡고 사납게 부릅뜨고 한 곳을 응시하는 눈이며, 반쯤 벌리고 닫지 못하는 입 그리고 야수같이 엉켜 쥔 양손에서 메두사의 야수성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추정) 작: '메두사(17세기)', 플로렌스 우피치 미술관
레오나르도 다빈치(추정) 작: '메두사(17세기)', 플로렌스 우피치 미술관

메두사의 뱀 머리카락을 실감 있게 묘사한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메두사(17세기)’가 있으며 또 메두사의 참수 조각으로는 첼리니(Benevnuto Cellini 1500~71)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1545~54)’가 유명하다.

간경변증으로 복수가 많이 차게 되면 배꼽주변의 정맥이 두드러지게 확장되어 굵어지는데 이것은 문맥(門脈)이 심하게 압박되어 간으로 흐를 혈액이 가지 못하고 옆으로 측부혈행로(側副血行路)를 만들어 이를 통해 즉 다른 경로를 통해서 우회하여 혈액이 심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간경변증의 경우는 주로 배꼽주위 정맥의 혈액이 둘레의 체표(體表)에 가까운 정맥으로 흐르게 되어 배꼽을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으로 불거지기 때문에 전형적인 메두사의 머리 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복수(腹水)가 많이 고여서 복벽의 정맥이 굵어지면 마치 메두사의 머리 같다고 해서 이를 ‘메두사의 머리’로 명명한 것은 당대의 명의(名醫) 세제리우스(1643)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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