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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용기 주는 치유의 대중가요 ‘일어나’

김광석 작사·작곡·노래… 1994년 6월 발표한 4집 음반에 실려 히트

  • 입력 2019.01.23 10:32
  • 기자명 왕성상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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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 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숫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끝이 없는 날들 속에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매일 흔들리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 살아있는걸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 가고

햇살이 비추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버리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엠디저널]새해가 밝았다. 연초가 되면 희망찬 마음으로 꿈을 꾸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많다. 어려움을 겪었거나 힘든 삶을 산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새해는 잘 될 거야. 다시 일어서야지!”, “그냥 있을 수 없어. 한 번 해봐야지”하는 ‘백절불굴의 오뚝이정신’을 다짐하는 것이다.

김광석이 작사·작곡, 노래한 ‘일어나’는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이들에게 힘을 북돋우는 노래다. 격려·응원·용기·치유의 대중가요다. 4분의 4박자 비긴(beguine)풍으로 나간다. 비긴은 짝수박자의 비교적 빠른 템포로 1930년대 유럽에 소개됐다. ‘일어나’는 가사가 좀 길어 노래시간(4분30초)도 다른 곡들보다 더 걸린다.

김광석의 4집 음반은 생전 마지막 작품

이 노래는 1994년 6월 발표한 김광석의 4번째 음반(킹레코드 제작)에 담겼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회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서른 즈음에’ 등 9곡과 함께 앞면 첫 번째로 실렸다. 포크계열 노래들이 담긴 이 음반은 창작곡앨범으로 김광석이 살았을 때 낸 마지막 작품이다. LP음반, CD, 카세트테이프로 동시 발매돼 히트했다. 음반엔 힘겨운 삶에 끊임없이 고민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김광석의 자의식이 뚜렷하게 녹아있다.

김광석은 1995년 한 방송사의 슈퍼콘서트무대에서 ‘일어나’를 부르면서 노래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한동안 뭔가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을 때에요. 뭐, 정말 그만 살까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럴 때 어차피 그래도 살아가는 거 좀 재밋거리 찾고 살아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 하면서 만든 노랩니다. ‘일어나’ 불러드리면서 물러가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4집 음반의 노래들은 김광석 창작곡만 있지 않다. 그와 친했던 여러 음악친구들이 곡을 줬고 녹음에도 동참했다. 조동익은 음반편곡과 베이스를, 김광석이 몸담았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약칭 노찾사)’이 코러스를 맡았다.

‘일어나’는 에피소드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식행사장에서 이 노래를 불러 눈길을 모았다. 2018년 2월 28일 오전 취임 뒤 처음 대구를 찾은 문 대통령은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국가기념일 지정 뒤 열린 정부주관 첫 ‘2·28 민주운동기념식’ 때 대구출신 김광석의 히트곡 ‘일어나’를 합창했다. 야구장에서도 ‘일어나’가 울러 퍼졌다. 2016년 정규시즌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의 첫 경기 때였다.

기성 가요계에 진출, 성공한 첫 운동권 가수

‘일어나’ 노래주인공 김광석은 기성 가요계에 진출, 성공한 첫 운동권가수다. 4개의 솔로정규음반, ‘다시 부르기’란 제목의 리메이크음반 2개가 있다. 애환 섞인 음색으로 서민정서를 대변한 그의 노래는 ‘공동경비구역 JSA’, ‘클래식’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OST(삽입곡)로 들어가 세대를 뛰어넘어 깊은 공감을 준다.

김광석은 1984년 가수로 데뷔했다. 노찾사, 노래그룹 동물원의 보컬가수를 맡은 그가 대중에게 알려진 건 1988년 동물원 1집 음반의 ‘거리에서’와 ‘변해가네’를 통해서다. 동물원 2집 음반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혜화동’은 김광석 특유의 순수함을 담은 소리결정체다. 동물원에서 나와 홀로서기를 한 그는 1989년부터 솔로 통기타가수로서도 큰 인기였다. 그해 ‘기다려줘’, ‘너에게’가 실린 솔로음반 1집을 내고 첫 개인콘서트를 갖는 등 음악활동 중 1년간 열애 끝에 1990년 결혼했다. 1991년에 낸 2집 솔로음반은 한동준이 준 ‘사랑했지만’, 김형석의 ‘사랑이라는 이유로’, 김창기의 ‘그날들’ 등이 사랑받으며 김광석은 더욱 대중에게 다가섰다. 1992년 ‘나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이 담긴 3집 음반을 내면서 민중가수출신이란 정체성도 다졌다. 민초들의 슬픔, 한, 고뇌, 행복의 감정을 아프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낸 게 먹혀든 것이다.

특히 1993년 대학로 학전 소극장(대표 김민기)에서 노래생활 10년 결산공연에 들어가 1995년까지 1천회를 펼쳤다. 소극장 공연문화를 뿌리내리게 했고 힙합, 댄스, 발라드에 밀려 꺼져가던 포크송 불씨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수로서 그렇게 잘 나가며 열심히 뛴 그는 1996년 1월 6일 새벽 서울 마포구 서교동 ‘원음빌딩’ 4층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 음악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의 나이 32살 때다. ‘원음(圓音)’은 법정스님으로부터 받은 법명이다. ‘둥근 소리’란 뜻이다. 김광석 팬클럽 명이었고 지금도 김광석 팬페이지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경찰발표에 따르면 김광석은 새벽에 술을 마시던 중 평소 우울증으로 자살한 것으로 발표됐다.

김광석 죽음과 관련, 이상호 영화감독(전 MBC 기자)이 만든 영화가 관심을 모았다. 이 감독의 2번째 작품으로 2016년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상영된 고발다큐멘터리 ‘일어나 김광석’이다. 이듬해 8월 3일 언론시사회를 가진 이 영화는 ‘김광석19960106’이란 부제는 그대로지만 제목은 ‘일어나 김광석’에서 ‘일어나’를 뺐다. 관객들이 ‘일어나’라고 외쳐야지 감독이 그래선 안 된다는 게 이 감독 견해다. 부천영화제 개봉 후 제보가 있어 추가취재부분이 들어가고 영화적으로 미비하고 미숙한 내용을 손질했다. 장면순서도 바뀌었다.

2017년 8월말 개봉된 영화 ‘김광석’을 통해 김광석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혀야한다는 소리가 높아지면서 ‘김광석법’을 만들기 위한 국회움직임이 있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그해 9월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광석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00년 8월 이전 변사자 중 △살해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새 단서가 발견되고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으며 △그 용의자가 살아있는 경우 공소시효에 관계없이 재수사할 수 있게 형사소송법을 고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회견 땐 이 감독, 가수 전인권이 참석해 ‘김광석법’ 추진 지지입장을 밝히고 국민들 관심도 호소했다. 독일의 언더그라운드 힙합그룹 Die Orsons가 2009년 ‘Kim Kwang Seok’이란 노래를 발표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이 곡 가사는 김광석을 찬양·추모하는 내용이다.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 노래비

대구시 대봉동에서 태어난 김광석은 5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다 서울로 이사 갔다. 중학교 때부터 바이올린, 오보에, 플루트를 배우며 악보 보는 법을 익힌 그는 1979년 서울 대광고에 들어가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이어 1982년 명지대 경영학과에 입학, 대학연합동아리 ‘연합메아리’에서 기타를 본격 치기 시작했다. 그는 1985년 1월 입대했으나 큰형이 전에 군대서 사고로 숨져 6개월만 복무했다. 제대 후 서울 안암동 고대 앞에서 카페(‘고리’)를 열었지만 오래 못 갔다. 후배가수와 동료들에게 밥, 술을 공짜로 주는 바람에 얼마 안 돼 접었다.

절망과 희망의 경계에서 서성거렸던 김광석은 갔지만 ‘영원한 청년가객(歌客)’, ‘노래하는 시인’으로서 대중들 마음에 살아있다. 2008년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2010년엔 고향인 대구 대봉동에 ‘김광석 거리’가 생겨 그를 기리는 추모마음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도시철도 경대병원역(3번 출구) 대봉1동 일대에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이 있다. 대봉동 방천시장은 그의 출생지라 김광석 벽화·거리·좌상을 비롯해 김광석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추모콘서트가 열리는 국내가수 들 중 가장 많은 무대가 펼쳐지고 있고 가수·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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