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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맞이 하며 듣는 풍류, 한국음악 영산회상을 듣다
  •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 승인 2019.01.2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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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관현악단 영산회상 연주, 이미지 제공: 국제신문

[엠디저널]아정한 음악이란 뜻으로 쓰인 정악은 향악, 민속음악에 대비되는 아악, 궁중음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근래에 와서는 다시 궁중음악, 종교음악, 민속음악과 구별하여 조선 시대 중인층을 중심으로 발달한 음악, 예컨대 여창가곡, 가사, 여민락, 도드리 등의 음악을 ‘정악’이라 일컫게 되었다. 서양에서는 한 곳의 성당을 짓는데 수 세기의 세월을 거쳐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인 곳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악곡 중 수 백 년의 세월을 거쳐 오늘의 형식을 갖추었다. 이 한국 음악곡 영산회상 음악이 그러하다.

영산회상은 본래 불교음악이다. ‘영산’은 석가여래가 중생을 제도하고 설법하던 영취산을 가리키며 신자들이 그곳에 모여든 것을 ‘영산회’라 했다. 불보살의 자비와 성덕을 찬양한 가사 ‘영산회상 불보살’의 일곱자에 곡을 붙이고 부른 것이 원래의 ‘영산회상’으로 이 곡이 지금의 영산회상의 도입곡 ‘상영산’ 이다. 세시풍속의 절기로 한 해가 저무는 섣달 그믐날이 되면 궁중이나 민가에서 잡귀를 쫓기 위한 ‘나례’라고 하는 의식을 베풀었다. 궁궐에서는 ‘처용무’를 두 번 추게 되는데 두 번째 춤이 개장되면서 영산회상이 연주되고 이에 맞추어 기공들이 ‘영산회상 불보살’의 노래를 일제히 불렀다고 전한다.

이 원래의 영산회상이 수 백 년을 내려오며 점차 세속화되고 변화해온 것이 오늘의 영산회상이다. 불교음악의 종교적 색채가 사라져 버리고 궁중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연주되는 선비들의 음악이 되며 세속화 되었다. 영산회상의 세속화와 함께 ‘노래’는 없어지고 순전한 ‘기악곡’이 되며 변화를 걸쳐왔다. 그 원형의 영산회상에 여러 파생곡들이 작곡, 발굴, 첨가되어 현재 9곡이 한 바탕을 이루는 일대 관현악 모음곡(orchestral suites)이 되었다.

17세기에 편집된 악보집 ‘현금신증가령’(1680)에는 이미 영산회상에서 가사가 사라져 기악곡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고, 19세기까지는 오늘의 영산회상과 모습이 비슷한 9개의 모음곡 체계를 갖추게 되었음이 ‘현금오음통론’(1886) 등 악보문헌에서 밝혀졌다. 9개의 곡명은 ‘상영산’, ‘중영산’, ‘세영산’, ‘가락더리’, ‘삼현도드리’, ‘하현도드리’, ‘영불도드리’, ‘타령’ 그리고 ‘군악’이다.

영산회상의 악기편성과 연주방식에 따른 3가지 분류

1. 거문고가 선율을 주도하는 ‘현악 영산회상’으로 ‘거문고 회상’ 또는 ‘중광지곡(重光之曲; 밝은 빛의 음악)’이라 부르기도 한다. 악기편성은 거문고 외에 가야금, 해금, 양금, 단소, 대금, 세피리, 장고의 실내악 편성으로 한가하고 우아하며 섬세한 곡풍이다.

2. 피리, 대금이 주선율을 이끄는 ‘관악 영산회상’으로 일명 ‘삼현 영산회상’ 또는 ‘표정만방지곡(表正萬方之曲; 올바름을 만방에 드러내는 곡)’이라고도 일컫는다. 피리, 대금, 소금(당적), 장고, 좌고, 해금, 아쟁의 악기편성으로 곡의 형식은 꿋꿋하고 성대한 관악곡의 대표적인 곡으로 궁중의 잔치나 궁중무의 반주, 또는 민간의 풍류로 연주된다.

3. 현악 영산 회상을 완전 4도 아래로 개조한 ‘평조회상’으로 일명 ‘유초신지곡’ 또는 ‘취태평지곡’이라 한다. 편성은 거문고, 가야금, 향피리, 해금, 대금, 당적, 장고, 아쟁, 좌고의 관현합주로 편성된다.

이 중에서 첫번째 ‘거문고 회상’이 영산회상의 여러 곡들 가운데 메인 곡이다. ‘관악영산회상’이나 ‘평조회상’도 거기에 바탕을 둔 것들이다. 영산회상은 편안하고, 복잡한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한가롭고, 머리가 시원할 정도로 단조롭기까지 하다.

영산회상, 이미지 제공 joinusworld

궁중에서만이 아니라 민간 상류층에서도 널리 연주되던 ‘영산회상’

이 곡은 한국적인 전통음악의 준거를 이루게 된다. 가장 한국적인 음색을 내는 한국의 악기(거문고, 가야금 등)에 의해 연주되는 기악 모음곡이다. 영산회상을 들어보면 한국 음악의 특징이라 이르고 있는 모든 요소들을 만날 수 있다.

느리다는 것, 한 없이 길다는 것, 쉼도 매듭도 없이 모음곡 이 이어 간다는 것, 언제 끝이 나는지도 알 수 없으리만큼 같은 가락이 되풀이 된다는 것. 그러면서 서서히 빨라져 간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물결의 흐름이다. 독일의 비교음악학계의 연구에서 음악적 요소의 단순 반복 또는 단순 이조의 축적, 변화하면서 반복되는 박자의 회귀와 점차적으로 가속되는 ‘아첼레란도(accelerando)’를 한국의 전통 기악곡의 특성이라는 견해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불과 한 세기를 경과하는 동안에 서양의 음악이 어느새 우리음악이 되어버렸고 원래의 우리 음악은 남의 음악보다도 더욱 낯선 음악이 되어버렸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은 듣고 이해해도 ‘수재천’이나 ‘여민락’은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 음악 환경은 우리 교육 환경과 미디어 환경에서 18, 19세기 유럽 음악 선호로 정책과 편성이 되어있다. 이제 우리는 몸에 배어 있는 우리 음악의 세계에 눈을 떠야 한다.

가장 오래된 것의 보존은 새로움으로 향한다! 라는 말을 쓰고 싶다. ‘영산회상’의 흐름은 한국 정신 문화의 체계에 한 계단으로 더 올라서도록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음악이다. 아주 느리게, 아주 더디게, 쉼도 매듭도 없이 되풀이되며 가르쳐주는 음악이다.

진혜인(바이올리니스트/영국왕립음악대학교 석사)  emd@mdjourn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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