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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복기박사의 모발강의]모발이식술 시 중요한 Tip(1)

  • 입력 2007.06.01 00:00
  • 기자명 emd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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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발이식술의 역사 모발이식술은 1939년 일본의 의사인 닥터 오쿠다에 의해 처음으로 기술되었다. 그는 화상으로 모발을 잃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뒷머리에서 모근을 포함하고 있는 피부를 떼어다가 탈모 부위에 작은 구멍을 만들고 모발을 옮겨 심었는데 이곳에서 모발이 계속 자라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닥터 오쿠다는 이러한 사실을 일본의 의학 저널에 발표하였으나, 세계 제2차 대전중에 그는 사망하였고 기록 또한 소실되고 말았다. 또 다른 일본 의사인 다무라는 모근을 한 개 내지 두 개를 포함하는 작은 크기로 나누어 음모를 심는 수술을 시행한 바가 있는데 이 방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오늘날 시행하고 있는 모발이식 방법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불행하게도 일본 의사들의 이러한 수술 방법들은 세계 제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모두 소실되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미국의 닥터 오렌트라이히에 의해서 현대의 모발이식술이 발전하게 되었다. 현대의 모발이식술의 방법과 원리는 1950년대에 미국 뉴욕의 닥터 오렌트라이히가 개발하였다. 그는 수술원리와 방법에 대해 1959년도 뉴욕 과학협회 학술지에 발표하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전에 다른 학술지에 세 번이나 게재 신청을 한 바가 있는데 심사위원들이 그의 연구 결과를 믿지 않아 게재를 거절했다는 점이다. 그는 또한 모발이식술을 대머리의 치료를 위해 처음으로 적용하였다. 닥터 오렌트라이히의 연구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발을 이식한 경우 그 모발은 원래 있던 곳의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옆머리와 뒷머리는 탈모가 진행되더라도 영구적으로 남아있게 되는데 이곳에서 모발을 떼어다가 탈모 부위에 이식해 주어도 원래 자기가 있던 곳의 성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므로 새로 나는 모발은 옆머리와 뒷머리가 남아 있는 한 영구적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성질을 공여부우성이라고 하는데 모낭 하나하나마다 다른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며 이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발이식술이 근본적으로 가능한 원리인 것이다. 모발이식술의 초창기에는 탈모부분에 지름이 약 4밀리 정도의 펀치(원형으로 생긴 칼날로 종이에 구멍을 뚫는 기구와 비슷하게 생겨 조직검사용으로 쓰이는 기구)를 사용하여 구멍을 뚫고 뒷머리에서도 역시 펀치를 이용하여 모발 덩어리를 떼어다가 구멍에 심어주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 방법을 펀치이식술이라 불렀다. 보다 더 큰 사이즈로 만들어 이식하기도 했으나 사이즈가 클수록 가운데 부분에는 영양분이 스며들지 못하므로 조직이 괴사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또 이 당시에는 너무 작은 사이즈를 사용할 경우에는 이식되는 모발의 숫자가 너무 적다고 생각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결국 약 4밀리 사이즈가 표준으로 정하게 된 것이다. 이때 한 번의 수술로 이식할 수 있는 모발 덩어리의 개수는 약 20~30개 정도에 불과했다. 펀치이식술이 시행되면서 이 방법은 모발이식술의 표준적인 방법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는데 가장 큰 단점은 모발이 뭉쳐져서 나기 때문에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점점 작은 사이즈의 펀치를 사용하게 되었다. 작은 사이즈는 좀 더 자연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었으나 뒷머리의 공여부에서 모발을 떼어낼 때 모근의 손상이 많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공여부에서 모발을 떼어낼 때 펀치를 사용하지 않고 여러 겹의 수술 칼을 사용하여 기다랗게 절개하는 방법이 고안되었으나 이 방법 역시 모낭의 손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이러한 여러 겹으로 모발을 떼어내는 방법을 사용하여 이것을 작은 크기로 다시 나누어 이식하는 미니이식술과 마이크로이식술이 널리 시행되었는데 이 방법은 단순히 모발을 나누는 크기를 기준으로 분류를 한 것이었다. 이러한 수술 방법은 이식한 모발이 어떻게 자라는 가를 고려한 것이 아니고 이식하는 모발의 크기만을 고려하는 방법이었다. [1R]모낭군 이식술 - (Follicular Unit Hair Transplantation) 흔히 대머리라고도 불리는 남성형 탈모증의 정확한 발생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의 모낭에서 testosterone이 5-alpha-reductase 효소에 의하여 dihydro- testosterone으로 되며 이것에 의하여 모낭 세포의 단백 합성이 지연되어 휴지기 모낭의 비율이 증가하며 나이가 들면서 탈모가 진행되는 것으로서 보아 남성 호르[2R]몬인 안드로겐의 영향과 함께 유전적 소인 및 연령이 발생에 중요한 인자로 생각되고 있다. 그 외 국소혈액 순환장애, 정신적 스트레스, 영양의 불균형, 과다한 지루 등이 남성형 탈모증의 악화요인으로 생각된다. 남성형 탈모증은 질병이라기보다는 노화의 과정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남성형 탈모증을 갖고 있으나 미관상의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매우 많으며, 특히 젊은 남성에게 발생하면 대인 관계 등 사회활동에 지장을 [3R]줄 정도의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줄 수 있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남성형 탈모증의 치료에는 크게 수술적인 치료법과 비수술적인 것으로 나뉜다. 비수술적인 방법에는 corticosteroid, testosterone 등의 국소 혹은 전신요법, 자외선 치료, 국소 모발 강장제, 두피 마사지 등이 행해져 왔으나 모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다만 피네스트리드 복용 및 미녹시딜의 국소 도포만이 남성형 탈모의 치료 효과가 인정되고 있다. 남성형 탈모증의 수술적인 치료는 영구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기에는 scalp reduction, tissue extension이나 expansion을 이용한 수술법 혹은 flap을 이용한 방법과 공여부 우성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자가모발이식술로 나눌 수 있다. 자가모발이식술의 바탕이 된 공여부 우성의 개념은 1950년 Barsky가 음모와 겨드랑이 털을 반흔으로 탈모가 생긴 후두부 두피에 이식한 결과 음모와 겨드랑이 털의 성질을 계속 유지함을 보고한 후 1959년 Orentreich는 체계적인 연구를 실시하여 이 사실을 입증하였다. 즉 뒷머리의 털을 대머리 부위로 이식하면 털이 정상적으로 자라고 대머리 부위의 털은 뒷머리로 이식하면 잔털로 변한다는 것이다. 자가모발이식술은 이미 공여부 우성이 정립되기 이전인 1939년 Okuda가 직경 2~4 mm의 펀치를 이용하여 뒷머리의 두피를 원기둥꼴로 잘라서 탈모된 곳에 옮겨 심으므로써 시작된 펀치이식술로 부터 시작되었고 서양에서는 1959년 Orentreich가 Okuda와 동일한 방법을 처음으로 소개하여 이후 많은 의사들이 펀치를 이용한 표준이식술을 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이식한 머리카락의 모양이 마치 칫솔처럼 부자연스럽고 두피는 자갈밭처럼 울퉁불퉁하게 되는 단점이 나타나기 쉬우며 특히 이러한 현상은 모발이 굵고 검은 사람에게는 두드러져 논에 모를 심어 놓은 것처럼 표시가 확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동양인에게는 사용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단점은 보완하여 이식편의 크기를 줄인 미니이식술은 1970년대부터 서양에 널리 사용되어 왔는데 동양에서는 이보다 앞선 1953년 Fujita가 나환자의 눈썹 재건, 화상 환자의 반흔성 탈모, 음부 무모증 치료에 이 방법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종래의 펀치를 이용한 표준 이식술이나 현재 시행하고 있는 미니이식술은 이식 부위에 구멍을 여러 군데 뚫어 모발을 집단적으로 이식하기 때문에 백인에 비해 모발이 굵고 검으며 밀도가 낮은 동양인에게는 모발선의 부자연스러움이 두드러지고 흉터가 크게 남을 수 있는 단점이 여전히 남아 있다. Hypodermic needle, microblade, 1 mm punch 등을 이용한 마이크로이식술은 포함된 모발의 수만으로는 모낭군 이식술과 별 차이가 없으나 이식편의 크기가 좀 더 크고 분리 시 모근의 위치나 방향 등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려워 모근에 손상을 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육안이나 확대경, 입체현미경 등으로 모근이 군집되어 있는 양상을 직접 확인하면서 분리하여 이식하는 모낭군 이식술에 비해 생착률과 모발선의 자연스러움이 떨어진다. 그러나 모발이 가늘고 밀도가 더욱 높으며 군집양상이 덜 뚜렷한 서양인에게는 여전히 이 방법이 선호되고 있다. 현재 서양에서는 미니이식술을 시술할 경우 앞머리의 모발선을 자연스럽게 해 주기 위한 방법으로 마이크로이식술을 함께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 1996년경에 이르면서 경북대학교병원 모발이식센터 김정철 교수팀에 의해 모낭군 이식술(모낭단위 이식술, bundle hair grafts, follicular unit hair transplantation)이 자리를 잡게 되어 적당한 모발의 밀도를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이마 선을 구축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